'귀에 붕대' 트럼프 뜨자 "싸우자!"…대관식 같던 공화당 전당대회
15일(현지시간) 열린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부활'을 위한 '싸움'의 메시지로 가득 찼다. 사흘 전 펜실베이니아 야외 유세장에서 총격받은 지 사흘 만에 공식 석상에 나타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공화당 대선후보를 공식 확정 지었다.
공화당은 이날 위스콘신주 밀워키 위스콘신주 밀워키 파이서브 포럼에서 전당대회를 열었다. 위스콘신은 미국 내 대표적인 경합지 중 한 곳이다. CNN방송에 따르면 1976년부터 치른 12번의 대선 중 9번의 선거에서 위스콘신에서 승리한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 실제로 2016년 대선 당시엔 트럼프가 이겼고, 2020년 대선에선 조 바이든 대통령이 표를 가져갔다. 공화당이 전당대회 개최지로 위스콘신을 일찌감치 고르고 표심을 선점하기 위해 공들인 배경이다.
공화당 상원의원 중 유일한 흑인이기도 한 팀 스콧(사우스캐롤라이나) 의원은 트럼프를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아 포효하는 '미국의 사자'라고 표현했다. 그는 "신은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한다"며 "악마가 소총을 들고 펜실베이니아에 나타났지만, 미국의 사자가 다시 일어나 으르렁거렸기 때문"이라며 현장의 호응을 끌어냈다. 트럼프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 중 한 명으로 알려진 마조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조지아주)도 "트럼프의 생존에 신의 개입이 있었다"고 말했다.
총격 사건에서 '부활'한 트럼프를 위해 공화당 지지자들은 함께 싸워야 한다는 발언도 나왔다. 사우스다코다 주지사 크리스티 노엠은 "트럼프는 투사다.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강인한 사람"이라며 "사람들은 그의 명예를 공격하고, 탄핵하려 했고, 파산시키려 했으며, 부당하게 그를 기소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또 이번 주 가장 위험한 순간에도 그의 본능은 일어나 싸우는 것이었다"며 지지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이에 현장을 꽉 채운 공화당원은 "파이트(Fight)"를 연호하며 화답했다. AP통신은 사흘 전 트럼프가 암살 시도 후 살아나 무대에서 퇴장 직전 '싸우자'를 외쳤고, 이후 지지자들이 따라 하는 구호가 됐다고 설명했다.
CNN방송은 "공화당 전당대회의 황금시간대에 주로 흑인 의원과 워킹맘, 히스패닉 출신 이민자의 자녀 등이 연단에 섰다"며 "트럼프 캠프가 이번 선거에서 왜 우위를 점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분석했다. 방송은 "트럼프 캠프가 여성과 소수민족 유권자, 교외에 있는 소수 인종 유권자와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노조원, 그리고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하던 '블루칼라'를 주요 타깃으로 표를 모으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통령 지명 후보까지 언급됐던 유명 흑인 정치인 팀 스콧 외에도 존 제임스 의원(미시간), 바이런 도널드슨(플로리다) 등은 "민주당은 흑인 미국인을 위한 정책에 실패했다"며 트럼프 지지를 주장했다. 이들은 "트럼프는 인종, 피부색, 신앙과 관계없이 열심히 일하면 앞서 나갈 수 있는 나라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또 9살 때 페루에서 이민왔다는 바네사 포라, 스스로 히스패닉을 대표한다는 글렌 영킨 주지사(버지니아) 등도 "내가 제대로 일할 수 있고, 합법적인 이민의 길을 열어줄 트럼프를 지지하자"고 발언했다.
특히 이날 전당대회에선 자신이 평생 민주당 당원이었지만, 이번에 트럼프를 찍겠다는 노조원도 연단에 올랐다. 지역노조 '에브리데이 아메리칸' 소속 로버트 바비 바텔스는 "불법 이민자들이 미국인 일자리를 빼앗고, 우리의 임금을 낮추는 것을 허용하는 개방된 국경과 폭력 범죄를 막아달라"며 "나와 우리 지역 노조 민주당 당원들은 11월에 트럼프에게 투표하겠다"고 말했다.
초대형 노조인 전미 트럭운전자노조 '팀스터스'의 션 오브라이언 대표도 공화당 전당대회 연설자로 참석했다. 운수노조 대표가 공화당 전당대회에 참석한 건 121년 역사상 처음이다. 오브라이언은 "최근 몇 년 동안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무조건적인 '충성'은 없다"며 "공화당도 노조의 표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만큼, 나는 전임자와 달리 어떤 하나의 정당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말하기 위해 나왔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양당과 함께 미국 노동자를 위한 실질적인 것을 성취하고자 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새롭고, 시끄럽고, 비판적인 목소리를 듣는 데 두려움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추가 협상의 여지를 남겼다.
트럼프는 이날 저녁 8시59분쯤 행사장 복도에서 처음 드러냈다. 그는 오른손으로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거나, 다친 귀로 군중의 소리가 여전히 들린다는 수신호로 건재함을 증명하며 환호를 이끌어냈다. 행사장 모니터에 귀를 붕대로 감은 트럼프의 얼굴이 나타나자 지지자들과 공화당 정치인들은 일제히 일어나 기립박수로 그를 맞을 준비를 했다.
그는 노래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God Bless the USA)'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레드 카펫을 따라 행사장 중앙 무대로 올라섰다. 무대 위 그린우드는 "미국의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 의심의 여지가 있습니까? 기도는 효과가 있습니다"라며 무대 위 트럼프를 소개하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지자들을 둘러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불끈 쥔 주먹을 들어 올리며 미소를 보였다. 지지자들은 "우리는 트럼프를 원한다(We want Trump)", "싸우자(fight)", "미국(USA)" 등의 구호를 외치며 트럼프를 환대했다. 이어 그는 무대에서 내려와 VIP 좌석으로 이동한 뒤 이날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JD 밴스 상원의원과 악수를 나누고 나란히 앉았다. 그는 이날 별도의 연설을 하지는 않았다.
한편 전당 대회 행사장 주변은 일반인 통행이 제한되는 등 보안 조치가 강화됐다. 연방수사국(FBI), 비밀 경호국(SS) 등은 피격 사건 이후 보안 계획 변경 여부를 검토했으며 경호국은 이날 오전 성명을 통해 "토요일 피격 사건 이후 우리는 계획을 검토하고 강화했다"고 밝혔다.
전당대회 보안 구역 밖에서는 반(反)트럼프 진영의 시위행진이 열렸다. '공화당 전당대회에서의 행진 연합'이 주최하는 이 행사에는 당초 5000여명이 참석할 것으로 전망됐지만, 더운 날씨 등의 이유로 수백여명이 나타난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흑인인권, 성적소수자, 팔레스타인 지지 등 다양한 단체들이 연대해 집회를 열었다고 BBC는 전했다.
김하늬 기자 hone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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