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의 여의주 물고 용마여 날자”… 창단 첫 우승 노리는 용마고 응원전

목동야구장/양승수 기자 2024. 7. 16.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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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기 결승] 용마고 재학생 400여명 상경 응원… “전교생이 합심했다”

“용마산 억센 기운 우리 가슴 속에 어리었고/합포만 푸른 물결 우리 혈관 속에 흐르나니”

16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제79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전주고와 마산용마고의 결승전. 3루쪽 용마고 응원석 쪽에서 이날 응원차 상경한 동문들과 재학생 500여명이 응원을 하고 있다. /양승수 기자

16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제79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조선일보·스포츠조선·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공동 주최) 마산용마고와 전주고 간 결승전. 경기가 열린 목동 야구장에는 열띤 응원을 하는 마산용마고 학생들과 동문들이 함께 부르는 교가가 울려퍼졌다.

이날 용마고 후원회 지원으로 버스 10여대를 타고 상경한 마산용마고 재학생 400여명과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동문 300여명이 용마고의 사상 첫 청룡기 우승을 향한 응원이 펼쳐졌다. 재학생들은 교복을 입고 파란색, 초록색 응원풍선을 치고, 형형색색의 용마고 깃발을 힘차게 휘둘렀다. 용마고 측 3루 관중석에는 “청룡의 여의주 물고 용마여 날자, 날아오르자” “경남의 아들들아 청룡처럼 비상하라” “청룡의 여의주 물고 합포만 푸른바다 마산으로” 등 응원문구가 담긴 플래카드가 걸렸다.

이날 용마고 1학년과 2학년은 전원 참석했고, 3학년은 약 80여명이 참석을 희망해 경기장을 찾았다. 응원하러 온 김제환(3학년)군은 “아침 7시반부터 학교에서 출발해 야구장에 왔다. (권)희재가 꼭 해주리라 믿는다”고 했다. 조원형(3학년)군은 “전교생이 합심해서 용마고 우승을 지켜보기 위해 왔다. 무조건 우승해야한다”고 말했다.

16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제79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전주고와 마산용마고의 결승전. 3루쪽 용마고 응원석 쪽에서 이날 응원차 상경한 용마고 재학생 400여명이 교복을 입고 응원을 하고 있다. /양승수 기자

진민수 용마고 감독은 경기 전 인터뷰에서 “사상 첫 결승을 이뤄냈는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선수들과 함께 우승이라는 목표를 보고 뛰어보겠다. 모두 평소와 같이 침착함을 잘 유지하고 있다. 결승이 아니라 그냥 한 게임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이겨보자고 얘기했다. 시합장에서 하는 거 봐야겠지만, 잘하리라 믿는다”고 했다.

용마고는 1936년 야구부를 창단, 88년 역사를 갖고 있지만 그동안 전국대회 우승이 없었다. 용마고는 사이드암 박동수가 일약했던 청룡기에서 준우승을 했던 1980년을 마지막으로 44년간 청룡기 결승 무대를 밟지 못했다. 박동수는 청룡기 1회전 세광고와 상대해 완봉승, 16강전에서 활약해 파란의 주인공이 됐다. 그러나 결승에 오르기까지 300개가 넘는 공을 던진 박동수는 어깨 통증이 심해지면서 선린상고(현 선린인터넷고)를 만나 0대5로 완패했다.

16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제79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전주고와 마산용마고의 결승전. 마산용마고 선발투수 주태준. /정재근 스포츠조선 기자

이후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마산용마고에도 고교야구 암흑기가 찾아왔다. 꾸준히 지역에서 좋은 선수들이 등장하긴 했지만, 지역연고 프로팀이 없어 부산으로 유출되는 고교선수들이 많았다. 예산 부족, 선수 수급 부족 등 문제 등이 심각했다. 1990년대 후반에는 엔트리를 채우지 못해 지역대회 참여조차도 어려워 공부하러 들어가던 학생을 붙잡아 명단을 채우던 시기도 있었다.

2009년에는 야구부 학생 5명이 동시에 인근 학교로 전학을 가면서 한때 선수가 15명도 되지 않았던 적도 있다. 그러나 2011년 NC가 창단되면서 용마고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5년부터 동문회가 야구 후원회를 만들어 전폭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한 게 이때부터 큰 힘이 됐다. 용마고 동문 1000여명이 십시일반으로 1만원씩 모아 야구부에 지원을 시작했고, 감독 처우 개선, 야구 장학금, 대회 출전비 지원 등으로 이용했다. 2011년에는 기숙사 ‘용비관’이 세워졌다. 후원회의 지원과 지역연고구단의 탄생에 힘입어 우수 선수들을 스카우트 해내며 2014년부터 눈에 띄는 성과가 나왔다. 그러나 번번히 메이저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놓치며 아쉬움을 삼켜야만 했다. 황금사자기에 2014년, 2016년, 2017년, 2019년 4차례나 결승에 올라갔으나 미끄러졌다.

그럼에도 7년 연속 전국대회 4강에 진출했던 용마고는 2020년 당시 서른 다섯인 진민수 코치를 감독으로 부임시키는 강수를 뒀다. 진민수 감독은 2003년 마산용마고 3학년 시절 대통령배 2경기 9타석 연속 출루로 이름을 날린 유격수 출신, 감독으로 부임해 용마고를 누구도 쉽게 보지 못하는 팀으로 만들었다. 한창 젊은 나이에 첫 지휘봉을 잡은 진민수 감독은 초반 부침도 있었다고 한다. 진민수 감독은 “오기 전부터 뛰어난 팀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젊은 나이에 맡게 돼 부담감도 있었다. 선수들은 잘하는데 내가 못하는 게 아닌가 의심도 많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젊고 경험이 부족하다보니 욱할 때도 있었다. 성격이 불 같은 게 있어 다그치기만 한 게 아닌가 싶었다. 올해는 다르다. 너그러울 때는 너그럽게, 혼 내야할 때는 혼도 내면서 선수들과 커뮤니케이션도 더 수월하게 잘 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마산용마고는 경주중에서 데려온 장현석을 필두로 고교 야구 다크호스로 크게 부상했다. 전국대회 우승에 도전했지만, 2023년 이마트배에서 준결승에서 멈췄고, 청룡기 8강 장충고전에선 장현석이 6과 3분의 2이닝 동안 3피안타 4사사구 14탈삼진을 거두며 역투했지만 팀의 2대3 패배를 막지 못했다.

올해는 장현석 같은 에이스도 없었다. 에이스 투수 사이드암 듀오인 3학년 최연수와 김현빈도 부상으로 빠졌다. 최연수는 수술을 받고 유급을 결정했고, 김현빈은 왼쪽 어깨 탈구로 부상을 입고 지난 15일 수술을 받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8강전과 4강전에는 1학년 선수들을 대거 투입했다. 특히 4강전에서는 1학년 좌완 이서율이 등판, 6이닝 3피안타 2사사구 6탈삼진 무실점으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감독과 동갑인 마산용마고 출신 조정훈 투수코치 지도가 먹혔다. 장현석 같은 파이어볼러는 없지만 투수들이 조정훈 코치에게 배운 변화구도 장착했다. 조정훈 투수코치는 3학년 주태준, 1학년 이서율과 성치환 등 다양한 투수들을 기용하면서 효과적으로 이닝을 분담시키며 적절한 투수 기용으로 결승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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