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예능’ 돌싱·동성애는 다 뗐다…이번엔 ‘점술·무속’ 도전
이성의 운명패를 앞에 두고 한 참가자는 대뜸 신점을 친다. “제가 모시는 분들에게 묻는 거”란다. ‘이 사람은 어떨까요’ ‘이 사람한테 이런 느낌을 받는데 맞을까요?’ 잠시 뒤 응답받은 듯 하나의 패를 선택하고는 웃는다. 또 다른 참가자는 “운명인지 아닌지를 보려고” 타로점을 친다. 카드 한장을 뽑은 뒤 뭔가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카드가 상징하는 운명패를 선택한다.
지난달 18일 시작한 ‘신들린 연애’(SBS)는 제목 그대로 신과 함께하는 연애 예능프로그램이다. 참가자 8명이 모두 무속인, 사주 전문가, 타로 마스터 등 점술가로 구성됐다. 지금껏 연애 예능에서 상대를 선택하는 기준은 외모, 스펙, 성격이었는데 이 프로그램에서는 ‘운명’이 추가됐다. 점술에 의지해 운명의 상대를 찾던 이들이 점차 운명과 본능적 끌림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이 관전 포인트다.
김재원 책임피디(CP)는 “미래를 보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이 프로그램은 그 사이에서 겪는 딜레마를 보여준다”며 “미래를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결과를 아는 상태에서) 지금 상대에게서 느끼는 감정은 딜레마일 것”이라고 했다.
출연자들이 자신의 운명을 진짜 ‘신들린’ 듯 잘 맞춰서 1회부터 눈길을 끌었다. 1차 선택에서 모든 참가자가 자신의 운명패라고 나온 상대에게 선택받았다. 한 남성 참가자는 한 여성 참가자를 보자마자 “촬영하다가 울 일이 있을 것 같다”고 했는데, 다음 날 진짜 울 일이 생겼다. 다른 연애 예능이었으면 우연의 일치라고 넘겼겠지만, 참가자들이 점술가들이다 보니 시청자들은 “뭐야, 뭐야”하며 입을 막고 빠져들었다.
연애 예능에서 흔한 요리 장면과 데이트 장면도 점술가들이어서 새로운 재미를 주고 있다. 일어나자마자 무속인이 신점을 치는 오방기로 오늘의 데이트 운을 점치고, 무속인 참가자들끼리 롤러스케이트를 타러 가서는 “잘 못 타서 불안하다”며 “작두 타듯이 타자”는 말로 서로를 응원한다. 여성 무속인 참가자는 잘하는 요리를 묻는 말에 “제사 음식”이라고 답한 장면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신들린 연애’는 점술가들의 연애라는 새로운 기획으로 예상할 수 없는 색다른 서사를 등장시켰다”고 했다.
1994년 ‘사랑의 스튜디오’(MBC)부터 2011년 ‘짝’(SBS), 2017년 ‘하트 시그널’(채널A) 등 연애 예능은 오랫동안 사랑받은 킬러 콘텐츠다. 그러나 2020년 들어 우후죽순 쏟아지면서 비슷한 포맷이 반복돼 식상하다는 비판도 나왔다. 덱스, 신슬기, 오주영 등 연애 예능 출연자들이 결국 배우로 데뷔하고 소셜미디어(SNS)에서 물품을 판매하면서 짝을 찾는다는 취지가 퇴색됐다는 비난도 받았다.
저물어 가던 연애 예능은 전 연인과 새 연인 사이에서 고민하는(2021년 티빙 ‘환승연애’) 등 설정을 달리하고 서사를 삽입하면서 다시 기지개를 켰고, ‘신들린 연애’까지 이른 것이다. 지난 3~6월에는 남매끼리 모인 ‘연애남매’(JTBC)가 방영됐고, 지난달 21일에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웨이브에서 남자들의 연애를 다룬 ‘남의 연애’시즌3도 시작했다. 2021년 시작한 ‘나는 솔로’(SBS PLUS)는 한번도 연애를 해보지 않은 ‘모태 솔로’편, ‘돌싱 특집’편 등 한 프로그램 안에서 여러 설정을 도입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동성을 사랑해서, 무속인이어서 받았던 고통 등 참가자들의 인생사가 함께 등장해 시청자들을 더욱 몰입하게 한다. 연애 예능 연출 경험이 있는 방송사 예능 피디는 “예능이 확대되고 연예인의 겹치기 출연이 늘면서 상대적으로 연애 예능 속 비연예인들의 사연과 신선한 얼굴이 눈길을 끌고 있다”고 했다. 갈등과 대립은 물론 화해까지 여러 감정이 담겨 있어 콘텐츠적 측면에서 재미 요소도 충분하다. 시청률 대비 온라인 바이럴 효과도 크다. ‘신들린 연애’는 “지상파에서 괜찮을까”하는 고민도 있었지만, 방송 2주째인 7월 첫주 인터넷 트렌드 지수인 랭킹파이 화제성 지수에서 ‘나는 솔로’를 제쳤다. 지난 4월 끝난 ‘환승연애’ 시즌3은 방영 당시 티빙 모든 콘텐츠를 통틀어 가장 화제성이 높았다.
연애 예능의 인기는 취업난∙저임금∙비혼주의 등으로 젊은층의 연애가 쉽지 않은 사회 분위기도 연관된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현실에서 연애를 안 하기 때문에 남의 연애를 보며 대리만족할 수 있고,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들의 연애에 시시콜콜 간섭하면서 느끼는 즐거움도 쏠쏠할 것”이라고 했다. 다채로운 연애 스타일을 바라보며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 객관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측면도 있다. ‘환승연애’시즌3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13년 사귀고 헤어진 커플의 심리를 분석하는가 하면, ‘나는 솔로’를 보면서 외모, 스펙보다 결국 ‘코드’가 잘 맞아야 한다는 걸 배우기도 한다.
그러나 ‘객관화’로 포장했지만 결국은 ‘대상화’가 된다는 점에서 연애 예능이 내밀한 사적 감정의 상품화라는 지적이 나온다. ‘나는 솔로’ 가 늘 자극적인 편집으로 논란이 되는 것처럼 제작진이 비연예인을 어떻게 편집하느냐에 따라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다. 윤석진 교수는 “원초적인 인간관계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연애를 대상화하고 구경거리고 삼기보다 자신의 인간관계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는 시청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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