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를 이끈 '혁명적 생각'…한국 사상사를 빛낸 59명의 글(종합)
올해 10권으로 시작, 총 30권 펴내…"K-문화 열풍 속 한국의 사상 주목"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조선 왕조의 설계자'로 불리는 삼봉(三峰) 정도전은 "백성은 국가의 근본이며 임금의 하늘"이라고 봤다.
그는 조선 건국 2년 뒤인 1394년 국가를 다스리는 기본을 담은 법제서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에도 이런 내용을 담았고 민(民), 즉 백성을 핵심 가치로 여겼다.
조선 후기 동학을 창시한 수운(水雲) 최제우는 새로운 세상을 바랐다.
출중한 글솜씨에도 재혼한 어머니의 자손이라는 이유로 과거에 나갈 수 없었던 그는 당시 사회를 지배하던 유교 체제를 탈피하는 사상적 대전환, '개벽'을 꿈꾸며 깨달음을 설파했다.
한 시대를 이끌며 큰 울림을 준 59명의 글과 생각을 돌아보는 시리즈 책이 나온다.
정도전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시대적으로는 조선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약 700년 세월을 아우르는 한국 사상가와의 만남이다.
'창비 한국사상선' 시리즈의 간행위원장을 맡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16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한국의 사상을 제대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계간지 '창작과비평'의 명예 편집인이기도 한 백 교수는 "한국 사상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오고 세계적으로도 주목할 만한 영향을 미친 이들을 선정해 조명했다"고 설명했다.
총 30권으로 계획된 시리즈는 2020년 12월 시작됐다.
백낙청 교수와 임형택 성균관대 명예교수, 백민정 가톨릭대 교수 등 10명이 모여 간행위원회를 꾸렸고 5∼6개월간 누구를, 어떻게 다룰지, 순서는 어떻게 할지 등을 놓고 머리를 맞댔다.
백민정 가톨릭대 교수는 "K-문화, K-역사 등이 세계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상황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지적 자원, 즉 한국의 사상이 무엇인지를 주목하고 함께 논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창작과비평' 창간 60주년을 맞는 2026년까지 진행되는 시리즈는 총 59명을 다룬다.
정도전, 이이, 이황, 정약용 등 잘 알려진 역사적 인물부터 조선시대 왕, 여성, 문학가, 정치인, 종교인 등 다양한 인물을 망라했다. 기존의 사상 선집과는 다른 부분이다.
임형택 교수는 "관념 추구라는 측면보다는 인간의 구체적 삶 속에서 구현하거나 실천하는 사상을 중시했다"며 "나혜석의 경우, 선각적 여성의 창조적 실존이라는 부분을 부각했다"고 설명했다.
임 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포함된 것과 관련, "한국 정치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분투한 점, 통일이라는 과제 해결을 위해 행동했던 지성을 평가했다"고 강조했다.
백낙청 교수는 "사상 이론가뿐 아니라 여러 인물을 포함하고 정도전으로 시작해 김대중으로 끝나는 구성은 어떻게 보면 특색이 있고, 논란이 될 수도 있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각 책은 사상가의 생각을 잘 보여주는 글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편저자로 위촉해 지금까지 남아있는 저작 가운데 핵심 저작을 선별해 우리말로 풀었다. 그의 삶과 사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글을 '서문'으로 실었다.
인물의 행적, 국내외 역사적 맥락을 비교할 수 있도록 부록, 연보 등도 담았다.
예를 들어 첫 책인 '정도전' 편은 '조선경국전'·'경제문감'(經濟文鑑) 등을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고려 멸망 전 공양왕(재위 1389∼1392)에게 올린 상소 등을 함께 소개한다.
'정도전'의 편저자인 이익주 서울시립대 교수는 "정도전의 글을 가능한 단어의 뜻에 맞게 그대로 번역하되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손봤다. 글의 의미를 왜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역은 최소한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시대에 따라 국·한문을 혼용한 글은 편저자가 원문을 확인하고 읽기 쉽게 보완했다.
총 59명을 채우기까지 많은 논의가 오갔으나 빠진 사람도 많다.
임형택 교수는 "신사임당, 허균 등이 대표적"이라며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고 중요한 인물이라 하더라도 사상이 담긴 글이 많지 않은 경우에는 논의를 거쳐 부득이하게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창비는 2026년까지 순차적으로 한국사상선 시리즈를 낼 예정이다.
내년 상반기에 나오는 2차분에는 조광조·조식, 이이, 김구·여운형, 한용운·신채호 등이 포함된다.
이익주 교수는 향후 과제로 "각자 맡은 책에서 끝날 게 아니라 인물 순서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동시대 다른 나라 사상가들과는 어떤 관계에 있는지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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