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냥이도 치매에 걸린다…함께 한 추억 오래 간직하고 싶다면?

김지숙 기자 2024. 7. 16.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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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권혁호 수의사의 반려랩
치매에 걸린 개와 고양이는 방향감각 상실, 수면 패턴·사회적인 상호작용 등에 변화를 보인다. 게티이미지뱅크.

말 못하는 작은 가족 반려동물, 어떻게 하면 잘 보살필 수 있을까요.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국내 여러 동물병원에서 멍냥이를 만나온 권혁호 수의사에게 반려동물의 건강, 생활, 영양에 대해 묻습니다. 매주 화요일 오후 2시 권혁호 수의사의 반려랩과 댕기자의 애피랩이 번갈아 연재됩니다. 궁금한 점은 언제든 animalpeople@hani.co.kr로 보내주세요!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Q. 우리 집 강아지는 어느덧 올해로 18살이 되었는데요, 점차 활력도 줄고 하루의 대부분을 자면서 보내는 것 같습니다. 가끔 저를 못 알아보는 것 같기도 하고요. 강아지나 고양이도 치매에 걸리는 걸까요? 주요 증상과 예방법이 궁금합니다.

A. 치매는 서서히 자신을 잃어가며 소중한 기억과 사랑하는 가족까지 잊어버리기 때문에 ‘가장 슬픈 병’이라고 불립니다. 완치 방법이 없고, 서서히 진행하기 때문에 예방이 참 중요합니다. 멍냥이들의 경우, 정식 병명은 개 인지 기능장애(CCD, Canine Cognitive Dysfunction)와 고양이 인지 기능장애(FCD, Feline Cognitive Dysfunction)입니다.

치매의 원인은 몇 가지가 있는데요, 이 가운데 가장 흔하게 알려진 것이 알츠하이머병과 파킨슨병입니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개와 고양이들의 치매 원인·증상은 인간의 알츠하이머병에 가까운 편입니다.

반려동물의 치매는 서서히 나타나고, 증상들 또한 특징적이지 않기 때문에 초기 진단이 까다로운 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알츠하이머병은 독일의 정신과 의사인 알로이스 알츠하이머가 1907년 최초로 보고한 질병입니다. 현재까지도 정확한 발병 기전과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베타 아밀로이드’라고 불리는 작은 단백질이 과도하게 생성돼 뇌에 침착되면서 뇌세포에 유해한 영향을 주고, 뇌세포 골격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타우 단백질’이 세포를 손상시키며 발병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 보면, 치매에 걸린 개와 고양이의 뇌는 뇌실이 비대해져 부종이 발생하고 뇌 신경이 위축된 상태였다고 합니다. 또 사고력과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뇌의 가장 바깥쪽인 피질과 일화적 기억 혹은 단기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와 변연계 등이 손상된 것이 발견됐습니다. 치매에 걸린 동물의 뇌가 알츠하이머에 걸린 사람 환자의 뇌 손상과 상당 부분 일치하는 것이었죠. 따라서 최근에는 인간의 치매를 이해하기 위해 개·고양이를 대상으로 한 치매 연구가 새롭게 조명 받는 추세입니다.

개와 고양이의 치매 증상은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조금 다른 부분도 있습니다. 개의 치매 증상은 주로 방향감각 상실, 사회적인 상호작용 변화(동물과 사람 모두), 수면 주기의 변화, 학습된 행동의 상실, 활동 수준의 변화, 불안 증가 등이 가장 일반적입니다. 특히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낮에 자거나, 원래 익숙하게 지내던 집안에서 방향감각을 잃은 것처럼 물체에 툭툭 부딪히고, 반려인과의 상호작용이 줄어드는 것이 대표적 증상입니다. 또 불안증이 심해지며 허공을 멍하니 보면서 헛짖음을 하기도 합니다.

치매에 걸린 개와 고양이는 방향감각 상실, 수면 패턴·사회적인 상호작용 등에 변화를 보인다. 게티이미지뱅크

고양이들의 치매 증상은 평소보다 울음소리를 많이 내는 과도한 발성, 화장실 실수(화장실이 아닌 집안에 대소변을 봄), 시간에 따른 일상(루틴)을 잃어버리는 것 등이 개와는 조금 다른 치매 증상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수면 주기가 바뀐다든지 공간 안에서 방향 전환에 어려움을 겪는 것, 활동 수준이나 활동량이 변화하는 것, 불안증이 심해지는 것 등은 개와 비슷한 증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평소에는 독립심이 강했던 노령묘가 갑자기 보호자에게 많은 관심과 애정을 요구하는 등 태도가 바뀐다면 인지 기능 이상을 의심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다만 반려동물의 치매는 서서히 나타나고, 증상들 또한 특징적이지 않기 때문에 초기 진단이 까다로운 편입니다. 따라서 나이가 적지 않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보호자라면 치매가 나타날 때 보이는 증상을 수시로 체크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한 반려동물 식품업체에서는 수의사와 보호자가 동물의 인지 기능을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6개의 항목(방향감각 상실, 불안감, 활동성, 배변 실수와 학습·기억력, 사회적 상호작용, 수면 주기)을 기준으로 평가표를 제시하고 있는데요, 이를 참고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혼자서 판단이 어렵거나 인지 기능에 확실히 문제가 생긴 것으로 의심된다면 바로 동물병원을 찾아 수의사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진단을 받는 것이 가장 좋겠지요.

안타깝게도 동물의 치매에는 명확한 치료법이 없습니다. 미국 식약처 승인을 받은 ‘셀레길린’이라는 항우울증 약을 처방하기도 하는데, 치료제라기보다는 증상을 완화하거나 병의 진행속도를 늦추는 약물에 가깝습니다. 치매는 나이가 들면서 발생할 수 있는 퇴행성 질환이기에 병의 진행을 늦추고, 고통은 줄이고, 반려인과 반려동물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중요합니다.

반려견 인지 기능장애(CCD) 자가 진단에 활용할 수 있는 질문지. 네슬레퓨리나 제공

반려동물의 인지 기능 장애를 예방하거나 진행 속도를 늦춰주기 위해서는 동물의 감각기관과 뇌에 다양하고 긍정적인 자극을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난해 오스트레일리아 애들레이드대 연구진의 논문을 보면, 개의 경우 날마다 꾸준히 30분 이상 운동을 시켜주고 다양한 장난감으로 놀아줬을 때 해마의 부피가 증가하는 것이 관찰됐습니다. 해마는 학습과 기억을 담당하는데, 해마 부피의 감소는 인지 기능이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거든요. 지속적으로 정신적 자극을 줄 수 있는 냄새 훈련도 인지 기능 장애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반려견의 경우, 먹이나 간식을 숨긴 뒤 냄새로만 목표물을 찾게 하는 ‘노즈워크’가 대표적이죠.

고양이의 경우, 개와 조금 다른 방법으로 자극을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수직 공간을 마련해서 주변을 관찰할 수 있는 장소를 많이 늘려주고, 사냥 놀이 등을 통해 신체적·정서적 자극을 계속 이끌어 주는 것이죠. 이 밖에도 아직 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적절한 영양 성분을 급여해 줌으로써 치매를 늦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어쨌든 보호자가 멍냥이들의 인지 기능장애를 막기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계속 늘어나는 셈이니 환영할 만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반려동물에게도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요소는 과거의 시간과 기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려인과의 첫 만남, 맛있는 식사, 무서웠던 장소 그리고 수많은 추억들이 바로 그것이죠. 내 반려동물도 언젠가는 나이를 먹고, 언제든 치매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평소에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니 오늘부터라도 우리 멍냥이들을 더 많이 사랑해 주고, 더 열심히 추억을 만들어주시길 당부드릴게요.

권혁호 수의사 hyeokhoeq@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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