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독일과 한국, 무중력 지상 실험에서 손잡자”
아산 그린타워 무중력 시험시설과 협력 논의
독일 북부 도시 브레멘은 프랑스 남부 도시 툴루즈와 함께 유럽 우주개발의 심장으로 불린다. 유럽형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인 갈릴레오 위성과 아리안 로켓 같은 유럽 우주개발의 상징물이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우주도시로 불리는 브레멘의 상징은 높이 140m의 탑인 드롭타워(drop tower)이다. 응용우주기술및마이크로중력연구소(ZARM)는 이곳에서 물체를 자유낙하시켜 무중력 환경에서 실험한다.
지난 12일 ZARM 드롭타워 운영서비스 과학운용책임자인 토르벤 쾨네만 박사와 부책임자인 메를레 코르넬리우스 박사가 충남 아산의 드롭타워를 찾았다. 지난 6월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과 아산시는 옛 쓰레기 소각장이던 아산환경과학공원의 전망대인 그린타워에 드롭타워 형태의 무중력 시험시설을 설치했다. 국내에는 강원도 정선 한덕철광의 수직갱도에 무중력 실험을 하는 시설이 있지만 지상에 높은 타워 형태의 시설이 설치된 건 처음이다.
그린타워에 설치된 드롭타워의 높이는 120m로, 시험용기가 낙하하는 4.73초 동안 무중력 상태를 경험한다. 높이로는 미국 오하이오주의 미 항공우주국(NASA) 글렌연구센터와 독일 브레멘대 드롭타워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두 시설과 차이가 있다면 별도로 짓지 않고 쓰레기 소각장의 대형 굴뚝을 실험시설로 개조했다는 점이다. 쾨네만 박사는 “기존 시설에 우주과학 실험시설을 넣은 점은 매우 흥미롭다”며 “그린타워의 시설이 다른 외국 시설보다 더 자주 실험할 수 있는 여건을 갖췄다는 점은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최근 유인 달 탐사와 화성 탐사 계획이 발표되면서 무중력 환경에서 실험은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드롭타워는 과학자와 기업들이 개발한 우주기술을 실제 우주로 나가기 전 검증하는 단계에 사용된다. 항우연은 드롭타워에서 2030~2032년 달 탐사에 쓰일 차세대발사체의 재점화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 기업들은 무중력 환경에서 신소재와 신약도 발굴하고 있다.
두 사람은 항우연 드롭타워와의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21일까지 부산에서 열리는 ‘국제우주연구위원회(COSPAR) 2024′에 참가하기 위해 최근 한국을 찾았다. 이들은 이날 항우연 백승환 선임연구원과 유이상 선임연구원, 시험 시설 구축을 맡은 한양이엔지 관계자들과 함께 그린타워를 둘러봤다. 코르넬리우스 박사는 “항우연의 드롭타워가 무중력을 완벽히 구현할 수 있도록 시설 일부만 보완한다면 같은 시간에 가장 많은 무중력 실험을 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시험 시설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굴뚝 개조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시설”
–아산그린타워의 드롭타워를 둘러본 소감은.
(쾨네만 박사) ”정말 인상 깊은 시설이다. 나는 이 시설이 정상적으로 꾸준히 가동된다면 2년 안에 정말 멋지고 대단한 연구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우리와 함께 동급의 무중력 연구와 미세 중력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된다.”
(코르넬리우스 박사) “둘러보니 매우 흥미로운 시설인 것 같다. 다른 나라와 콘셉트가 다르다는 점이 매우 재미있다. 다른 나라는 자유낙하 실험을 하기 위해 일부러 드롭타워를 지은 것과 달리 기존 구조물에 실험 시설을 구축한 점이 인상이 깊었다.”
–한국 드롭타워는 사실은 어떻게 알았나.
(코르넬리우스) ”지난해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국제우주대회(IAC)에서 유이상 박사를 만났을 때 처음 듣고 알았다. 드롭타워는 전세계적인 협력이 매우 중요하고 그 뒤로도 관심이 있어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대화를 나눴다. 지금도 자주 상의를 하고 있다.”
–ZARM은 다른 나라와 교류가 활발한가.
(쾨네만)”ZARM은 미세유체 역학에서 경쟁력이 있다. 1990년대만 해도 ZARM은 대단한 연구성과를 많이 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국제 협력, 개방적인 연구의 필요성이 요구되면서 중국 베이징 드롭타워(116m)와 긴밀하게 교류했다. 또 NASA 글렌연구센터와도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 연구센터는 최초의 자유낙하실험을 했던 곳이고 수년 간 추진 분야에서 연구를 계속해서 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인도공대(IIT) 마드라스가 운용하는 드롭타워와 추진분야 연구팀이 함께 연구를 하고 있다. 우리는 과학적인 협력에서 개방적이다.”
(코르넬리우스)“ZARM 시설은 유럽국가만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사실상 전 세계에 개방하고 있다. 최근 우리는 대만 연구자들과 연구를 함께 했다. 볼리비아와 콜롬비아, 베네주엘라팀도 함께 하고 있다. 유엔 산하 외기권사무국(UNOOSA), 독일항공우주센터(DLR)와 협력하기도 한다.”
–브레멘에 드롭타워를 건설한 배경이 궁금하다.
(코르넬리우스) “사실 초기에는 드롭타워가 아니라 환경 물리학 연구소를 만드는 방안이 추진됐다. 하지만 센터 설립자인 한스 라트 전 ZARM 사무총장이 브레멘의 위성기업인 OHB의 최고경영진을 만난 뒤 미세 중력 시험시설을 짓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브레멘대를 중심으로 많은 기업들이 있었고 이런 우주기업들의 요구를 수용한 결정인 것으로 본다.”
◇세계에서 가장 장시간 무중력 구현
–여러 종류의 우주시험시설이 있는데 왜 드롭타워를 선택했나.
(코르넬리우스)“우주에서 모든 조건을 연구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진공 환경이나 중력이 거의 작용하지 않은 미세 중력 환경 조건을 모두 연구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시험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탑재체 측면에서 미세 중력 환경은 매우 중요하다. 드롭타워는 또 미세 중력 시험 외에도 다른 과학이나 연구에도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주 관련 임무와 관련이 없더라도 중력의 영향을 무시하고 싶을 때 미세 중력 조건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드롭타워의 장점은 무엇인가.
(쾨네만)“우주를 가려면 먼저 지상의 시설에서 실험을 해야 한다. 그런데 레벨이 높은 실험을 하려면 고급 기술이 필요하다. 드롭타워의 경우 매일 실험을 수행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실험이 실패하면 다음날 고쳐서 다시 시험하면 된다. 항공기의 자유 낙하 비행이나 사운딩 로켓으로는 이런 게 불가능하다. 더 높이 올라갈수록 비용도 올라간다. 드롭타워는 사운딩 로켓이나 포물선 비행과 비교해서 비싸지 않다. 우리는 드롭타워가 가장 비용 효율적으로 우주 환경을 제공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지난 2월에 1만번째 낙하시험을 했다. 지금까지 최고 성과는 무엇인가.
(코르넬리우스)”우리는 아래에서 물체를 쏴서 꼭대기에 올린 뒤 자유낙하시키는 방식으로 무중력 시간을 2배로 늘리는 캐터펄트 시스템이다. 아래서 위로 쏘면 5초 올라가고, 다시 5초간 내려오게 하는 장치이다. 엔지니어가 개발했는데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9.3초간 무중력 환경을 유지한다. 프랑스 국립우주연구센터(CNES)와 공동으로 추진한 마이크로스코프 프로젝트에서 개발된 무중력 가속도계도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이 가속도계는 100만분의 1까지 변화를 잡아내는 수준이다. 드롭타워에서 수많은 낙하실험을 통해 미세 중력 상황에서 정확도를 높였고 현재 인공위성을 포함한 주요 우주 임무에서 활용되고 있다.”
◇달, 화성과 유사한 중력도 구현
–브레맨대의 드롭타워가 최고급 시설로 불리는 이유는.
(쾨네만)”브레맨대 시설이 세계 최고라고 하기는 부담스럽다. 하지만 9.3초라는 세계에서 가장 긴 무중력 상황을 제공한다. 일본도 800m 깊이의 수직 갱도에서 10초를 달성한 적이 있다. ZARM의 캐터펄트 시스템과 유사한 수준이다. 하지만 일본 시설은 2010년 운영비 문제로 문을 닫았다.
(코르넬리우스)“ZARM의 드롭타워는 내부를 진공상태로 만들어 사운딩로켓이나 포물선 비행보다 더 양질의 무중력에 가까운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진공 상태에서 실험을 수행하기 때문에 매우 높은 품질의 무중력 환경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진공 상태로 하려면 하루 1시간 반 넘게 공기를 빼야하고 준비를 하는 시간이 3~4시간이 걸려 하루 3차례만 실험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또 다른 장점은 실험을 하는 과학자들에게 언제든 도움을 줄 수 있는 경험이 많은 엔지니어들이 있다는 점이다. 언제든 실험을 통합하고 실험을 공유할 수 있다. 과학자들을 돕는 숙련된 팀이 현장에 있다는 것은 과소평가할 수 없는 부분이다.”
–또 다른 시설인 그래비타워(Gravitower)의 강점은.
(쾨네만)“그래비타워는 16m 높이로 자유 낙하 대신 로프 구동장치로 실험캡슐을 운반하는 슬라이더를 가속시키는 실험시설이다. 슬라이더는 엘리베이터처럼 가속되고 내부에는 자유낙하하는 것 같은 무중력 상태가 된다. 진공이 필요하지 않아서 1시간에 20회 이상 실험을 수행한다. 언제든 달과 화성과 유사한 중력 환경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ZARM이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는 비결은.
(쾨네만)”ZARM은 대학 안에 있지만 주 정부가 소유한 공기업이다. 브레멘 드롭타워 소유자는 브레멘대이지만 우리는 운영하고 유지 관리하는 권한이 있다. 이 아이디어는 1990년에 시작했는데 대학은 연구에 집중하고 우리는 유지 관리와 개발에만 집중하도록 별도의 법인을 두자는 취지다. 과학자들이 다른 데 신경을 쓰지 않도록 기술을 제대로 지원할 회사를 만들자는 것이다. 대학과 분리하면 다른 기관에 개방하기도 쉽고 더 유연해질 수 있었다. 덕분에 대학보다 더 쉽게 독일 항공우주센터(DLR)와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을 수 있었고 다양한 유럽의 학생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캐나다 우주청과 협력할 수 있었다.”
–운영비는 어디서 나오나. 따로 돈을 버나.
(쾨넬만)“우리는 따로 사용료를 받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비영리이다. ESA와 프레임 계약을 맺고 과학자들이 제출한 제안서를 기관이 제안서를 검토하고 우리에게 요청하면 시설을 이용하도록 지원한다.”
◇”한국은 가장 자주 실험할 수 있어”
–그린타워를 보완할 부분이 있다면.
(코르넬리우스)”아산 그린타워는 장점이 많다. 예를 들어 여러번 반복이 필요한 실험에 적합하다. ZARM처럼 하루 3차례 하는 실험장치와는 분명 다른 성과를 얻을 수 있다. 다만 에어백의 충격이 상당히 클 것 같은데 이는 에어백을 최적화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보인다. 무중력 환경에서 실험 대상을 넣을 캡슐 구조도 미세 중력의 품질을 위해 조금 손을 봐야할 것 같다. 하지만 어쩌면 미세 중력 품질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품질이 최고가 아닌 경우에도 훌륭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 정도 높이에서 하루에 많은 실험을 할 수 있는 곳은 전 세계에 거의 없고 충분한 장점이 될 것이다.”
-그린타워가 자리를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쾨넬만)”아산시와 항우연이 이 시설이 계속해서 운영될 수 있도록 개방형 모델을 잘 만들어야 한다. 브레멘의 사례처럼 지방자치단체가 이 시설을 책임지고 운영할 수 있는 기업을 설립해 연구 펀딩기관인 항우연이 이 회사와 계약을 맺고 개방형 연구시설로 만드는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시설을 만들어도 폐쇄적이고 다른 과학자에게 개방이 안 되면 계속 유지하기 쉽지 않다. 더 많은 과학자들과 상호 작용할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해야 한다.”
–ZARM이 항우연과 어떤 협력을 할 수 있나.
(쾨네만)”한국과 공동 연구는 매우 희망적으로 보고 있다. 항우연은 충분한 자질과 조건을 가지고 있다. 양측의 많은 연구자들이 오래 전부터 교류하고 있고 무중력 실험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무중력 환경에서 유체역학을 실험하기 위해 시작했지만 지금은 위성과 추진 기관 연구에서 더 많이 관심을 받고 있다. 우리는 과학적 협력을 우선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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