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해줄게" 폰 개통시키더니 64억 챙겼다…'휴대폰깡' 157명 일당 검거
인터넷 광고로 대출 희망자를 모은 뒤 이들 명의로 고가의 휴대전화를 개통해 장물업자와 피싱업체에 단말기와 유심(USIM)을 팔아넘긴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형법상 범죄집단으로 묶인 이들만 140명으로, 단일 사건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는 이른바 '휴대폰깡 범죄조직' 총책 30대 A씨 등 157명을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등 혐의로 검거하고 이 가운데 9명을 구속했다고 16일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A씨 등은 소액대출 희망자들에게 대당 130만~250만원 상당의 최신 휴대전화 단말기를 2~3년 약정으로 개통하게 한 뒤 기종에 따라 40만~100만원을 지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단말기는 장물업자들에게 판매하고 유심은 보이스피싱·도박·리딩방 등 범죄조직에 유통했다.
A씨 등의 휴대폰깡 범행에 명의를 제공한 사람은 2695명으로 이들 명의로 개통된 휴대전화는 총 3767대에 이른다. A씨 등은 단말기와 유심 등을 판매하는 수법으로 64억여원을 가로챈 것으로 밝혀졌다.
소액대출 희망자들은 대부분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저신용자였다. 휴대전화 명의자들의 63%는 약정 할부로 휴대전화를 개통한 뒤 할부금이 연체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A씨가 2019년 11월 자신의 지인이나 구인·구직 광고로 상담원과 개통·관리책(기사) 등을 조직원으로 모은 뒤 범죄단체를 결성한 것으로 봤다. 조직원 중 일부는 정상적인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상담사 등을 구하는 것을 보고 지원했다.
A씨는 범죄조직을 운영하기 전 실제 휴대전화 대리점 등을 운영해 수익 구조 등에 대해 자세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또 행동 지침을 정해 수시로 조직원들을 교육하고 역할을 나눠 조직적으로 범행했다. '손님 1명당 무조건 2대를 개통해라' '수사 기관의 추적에 대비해 특정 메신저를 사용해라' 등 구체적인 행동 강령도 있었다.
경찰은 지난해 4월 발생한 '강남 마약 음료 사건'에 이용된 불법 유심의 개통·유통 과정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휴대폰깡이 이용된 단서를 포착하고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현금·금팔찌·차량 3대·아파트 분양권 등 11억2600만원 상당을 몰수 보전 조치하고 48억5700만원 상당을 추징 보전했다. 경찰이 기소 전 몰수·추징 보전한 금액은 총 59억8300만원 상당이다.
또 범행 과정에서 대출 희망자들의 휴대전화 요금 연체 이력, 개통 가능 대수 등을 파악하기 위해 이동통신사의 전산망을 통해 비정상적인 정보 조회가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통신 3사에 관련 사실을 알린 뒤 제도 개선을 요청했다.
경찰 관계자는 "휴대폰깡은 경제적 사정이 어려워 제도권 금융기관을 통해서는 대출이 곤란한 사람들의 명의를 이용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범죄 수법"이라며 "이렇게 개통된 휴대전화는 각종 범죄에 이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대한 범죄"라고 강조했다.
실제 이 사건 범죄 집단을 통해 유통된 불법 유심 중 172개가 보이스피싱 등 각종 사기 범죄 278건에 이용돼 총 339억원에 이르는 피해를 낸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대출 신청을 위해 연락했는데 휴대전화 개통을 요구한다면 이는 휴대폰깡 범죄에 끌어들일 속셈으로 봐야 한다"며 "각별한 주의를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경찰은 피의자들로부터 유심을 매입해 각종 범죄에 이용한 사례에 대해서도 계속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최지은 기자 choij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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