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화재로 불거진 리튬배터리 안전…전기차 충전시설은?
화재 위험성 커져…'열폭주'로 진압 어려움
전문가들 "편의보다 안전, 기준 마련해야"
[수원=뉴시스] 이병희 기자 = 경기 화성시 리튬 배터리 공장에서 불이 나 31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기차 충전시설 안전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불이 나면 진화가 어려운 리튬배터리 특성상 안전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경기도와 경기도소방재난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도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12만7098대로, 5년 전인 2019년 5월 8549대보다 14배 이상 늘었다.
도내 충전시설은 2019년 12월 1만871곳보다 9.12배 늘어난 9만9218곳(7월10일 기준)에 달한다. 이 가운데 공동주택인 아파트에 설치된 충전시설은 전체의 67.9%인 6만7405곳으로, 대부분 지하주차장에 충전시설이 설치됐다.
공공건물, 공중이용시설, 공동주택 등에는 환경친화적 자동차(전기차) 충전시설과 전용주차구역을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한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충전시설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이처럼 전기차가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이용자의 편의 향상을 위해 충전 인프라도 확대되고, 이에 따른 화재 위험성도 커지는 실정이다.
최근 5년간 도내 전기차 화재 현황을 보면 2019년 1건, 2020년 3건, 2021년 6건, 2022년 12건, 2023년 21건 등 늘어나는 추세다. 이 가운데 2020년 2건, 2022년 2건, 2023년 4건 등은 충전시설에서 발생했다.
'열폭주'로 위험한 전기차 화재…진압 방법은?
전기차에 활용되는 리튬배터리는 하나의 셀에 불이 나면 도미노처럼 다른 셀로 옮겨붙는 '열폭주'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배터리 온도가 순식간에 최대 1000도 이상으로 치솟으면서 인접 배터리로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지난달 24일 31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 화성시 리튬 배터리 공장 화재의 경우에도 발생 22시간 만에 꺼졌다. 당시 보관 중이던 리튬 배터리 완제품 3만5000여 개가 폭발하면서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화성 화재 이후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리튬배터리 안전 문제가 부각되면서 이른바 '리튬포비아'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전기차의 경우 '열폭주' 현상으로 한번 불이 나면 대형 화재로 이어질 수 있는 데다 대부분의 충전시설이 공공기관이나 공동주택 지하주차장에 위치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실제로 지난 1월12일 오후 9시께 안양시 만안구 버스차고지에서 충전 중이던 전기버스에서 발생한 화재는 8시간여 만에 진화됐다.
지난 8일에도 오후 7시41분께 평택시 포승읍의 한 도로에서 발생한 전기차 단독 교통사고는 배터리 열폭주로 화재 발생 3시간50여 분 만에 불이 꺼졌다. 당시 차량 안에 있던 운전자를 구조했지만 전신 화상을 입어 사망했다.
문제는 리튬배터리 화재 발생 시 화재 진압 방법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국립소방연구원이 낸 '전기자동차 화재대응 가이드'에 따르면 전기자동차화재 대응장비에는 상방향 방사장치, 질식소화덮개, 이동식 소화수조 등이 있다.
상향식 방사장치는 차량 하부 고전압 배터리팩을 신속하게 냉각시키기 위한 전기차 전용 장치다. 전기차 배터리팩 화재 지연 효과가 있지만, 열폭주가 발생되지 않은 모듈은 100도 안팎의 열충격을 받은 상태라 언제든지 열폭주가 발생될 수 있어 재발화 방지 조치가 필요하다.
질식소화덮개의 경우 연기발생을 억제하고 외부 화염을 차단하는 역할을 하지만, 이 역시 열폭주를 제어하거나 막을 수 없어 지속적인 재발화가 발생할 수 있다.
가장 효율적으로 전기차 배터리팩을 냉각할 수 있는 이동식 소화수조는 소화수를 충수한 뒤 고전압 배터리팩을 신속히 냉각시키는 방법이다. 다만 설치 시간이 소요돼 화재진압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어 초기 진압수단으로는 한계가 있다.
진압 방법의 한계…"안전기준 마련 등 대안 필요"
전문가들은 충전구역 선정 시 적용할 안전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가평소방서 연구반은 2022년 펴낸 '전기자동차(EV) 충전구역 안전성 확보를 위한 화재위험성평가와 안전대책에 관한 연구' 논문을 통해 "전기차 고유의 위험성을 통제 제어할 수 없다면 예상되는 문제점을 토대로 충전구역 선정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변화와 안전에 관한 법 제도, 위험요인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또 ▲위험성이 높은 의료시설 등은 지하주차장 충전설치 금지·제한 ▲충전구역 점검표와 메뉴얼 개발 보급 ▲충전구역 상시 감시체계 유지·방송설비 설치·충전기 전원 수동제어 및 소방시설 연동제어 ▲충전구역 방화구획하거나 일반주차구역과 5m 이상 이격 등을 제안했다.
소방관 출신인 경기도의회 윤성근(국민의힘·평택4) 의원은 지난 2022년 '전기자동차 충전구역 화재 안정성 확보 방안' 정책토론회를 개최하고, 도의회 5분자유발언을 통해 전기차 충전시설 안전성 확보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윤성근 의원은 "지하 주차장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시설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면, 소방차 진입이 불가할 뿐만 아니라 리튬이온 배터리 특성상 진화를 할 수 없어서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는 설치기준 없어 안전 우선이 아닌, 사용자 설치 편의에 따라 지하 주차장에 충전기기가 설치됐기 때문에 지하 주차장 충전시설 화재 안전 설치 기준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우선 전기차 충전시설을 지하에 설치하지 않는 게 가장 좋다. 현재 상황에서는 충전시설에서 화재가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화재안전기술기준 같은 기준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공 교수는 "법적으로 정해진 기준이 아니더라도 기관이나 건물 관리 측에서 안전 마인드를 높여서 안전 장치를 설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정부와 지자체의 관심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iambh@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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