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달항아리… 40년 그려도 그림 모르겠네요”

박동미 기자 2024. 7. 16.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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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 청주서 특별전 강익중
장모님‘아는게 뭔가’질책서
거대한 한글 프로젝트 시작
10m 높이의 전시장 벽면엔
‘내가 아는 것’ 3000자 채워
“예술도 삶도 모르는것 투성이
즐겁게 작업한 건 최근 10년
붓을 놓을 때를 아는 게 중요”
강익중 작가가 창작활동 40년 회고전시를 위해 ‘무심천’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 강 작가는 붓과 맨손, 맨발까지 활용해 이 그림을 완성했다. 강익중스튜디오 제공

“잘 그린 그림도 망친 그림도 없어요. 그저 그리는 ‘순간’만이 남습니다. 인생도 그렇죠. 작은 순간이 모여 삶이 되고, 지금이 있을 뿐입니다.”

거대한 한글 벽 프로젝트와 달항아리 시리즈, 10만 점에 이르는 ‘3인치 그림’ 등으로 잘 알려진 강익중 작가는 창작활동 40년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40’이란 숫자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겠다는 뜻. 의지이면서 확고한 철학이다. 뉴욕을 기반으로 세계 무대에서 활동 중인 강 작가는 지난 13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뒤돌면 과거이고, 앞을 보면 미래다. 모든 시간은 하나로 이어져 있기에 최소한의 ‘선후(先後)’만 구분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지난 5일 청주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된 작가와의 대화 직후 강익중 작가에게 사인을 받기 위해 늘어선 관람객들. 강익중스튜디오·이앤아트 제공

강 작가는 이달 4일 개막한 청주시립미술관의 ‘청주 가는 길:강익중’전을 위해 최근 방한했다. 청주가 고향인 강 작가의 40년 예술 세계를 결산하는 특별전이다. 그의 시간 관념대로 후(後)를 위해 선(先)을 흘려보내는 것. 10m 높이의 전시장 벽면엔 강 작가의 전매특허인 한글 작품 ‘내가 아는 것’의 3000자가 가득 채워졌다. 작가가 국내서 선보이는 설치물로는 최대 규모다. 또, 청주의 무심천과 우암산을 재해석한 회화도 선보이며, 손바닥만 한 캔버스에 그린 ‘3인치 회화’까지 총 60여 점이 9월 26일까지 전시된다. 역점은 역시 ‘한글 벽’. 그는 “거대한 공간을 이겨보려다가, 결국 지고 말았다”며 웃었다. “자연스럽게 공간에 스며들었어요. 그래야 작업도 즐겁고, 작품은 진심이 되죠.”

한글 프로젝트의 시작은 젊은 날 ‘자네 아는 게 뭔가’ 하고 장모가 자주 하던 질책이었다. 그래서 ‘아는 것’을 하나둘 적어 나가다 보니, ‘강익중 월드’의 핵심이 됐다. 그는 “그렇게 탐구해도 그림도, 예술도, 인생도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 사실만 유일하다”고 덧붙였다.

강 작가는 세상이 자신을 작가로, 화가로, 예술가로 부르지만 스스로는 확신이 안 선다고도 했다. “일이 없어도 그리는 게 좋고 계속 그리는 사람이 진정한 의미에서 화가가 아닐까요. 저는 떠밀려서 그리는 때가 많았거든요.” 그는 “‘해야만 한다’는 집념으로 고통스럽게 그린 시간이 더 길었다”면서 “몰입의 즐거움을 깨닫고,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그릴 수 있게 된 건 최근 10여 년인 것 같다”고 고백했다. “물론 고통의 세월이 쌓였기에 지금이 있는 거겠지만요.”

화가가 아니면 자신을 어떻게 정의할까. “가끔은 내가 뉴욕 동네 한량처럼 느껴진다”며 웃었다. 40년 내공은 ‘무거움’이 아닌 ‘가벼움’이었다. 그의 예술이 가벼워졌다는 것이 아니라, 집착을 벗어난 예술에의 태도가 말이다. 강 작가는 “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건 붓을 언제 놓을지를 아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림이 전부이자 구원이 되는 것은, 자신으로부터 거리를 두지 못하기 때문에 위험하죠. 빠지는 건 쉬워요, 빠져나오는 일이 어려운 법이죠.”

강 작가는 오는 9월 미국 뉴욕한국문화원에 20m가 넘는 세계 최대 한글 벽을 선보인다. 10월에는 이집트 미술 축제 ‘포에버 이즈 나우’에 한국 작가 최초로 초청돼 ‘한글 신전’을 세운다. 한글과 이집트 상형 문자 등으로 ‘아리랑’ 가사를 새겨 넣는다. 통일, 실향민 등 한반도 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을 작업에 반영해 온 작가는 “통일이 되면 아리랑이 애국가를 대체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또, “아리랑은 한글 문자로서, 단어를 내뱉는 순간 ‘현재’ 그 자체가 되는 시간성의 상징이기도 하다”고 부연했다. ‘한글 신전’에는 어린이들이 그린 ‘3인치 회화’도 설치된다. 그는 “이 벽은 장벽이 아니라 연결을 위한 벽이다. 피라미드는 과거, 아리랑은 현재, 아이들은 미래를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진정한 화가가 아니라고, 가끔은 한량이고 떠밀려 그린다고 자신을 낮추지만 작업의 규모와 지향점은 대가의 그것이니 ‘반전’이다. 아니, 그래서 ‘대가’인 걸지도. 강 작가는 1000년 뒤를 내다보며 예술에 천착한 백남준, 우주를 통찰한 김환기를 가장 큰 ‘스승’으로 여긴다고 했다. 그는 “기회와 유혹을 분간하라”고 조언한, 김환기 아내 김향안의 말로 자신의 예술론을 대신했다. “나의 작업과 작품이 민족과 세계, 역사에 좋은 것인지 아닌지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셨죠. 여기에 저는 하나 더 생각합니다. 지금 하는 일이 재밌는지, 그 앞에 진정 솔직한지…. 그것이 예술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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