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혐오를 다시 생각한다
혐오의 시대를 살고 있다. 혐오의 대상이 사람이나 관계를 넘어 과학기술의 성과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낯설던 ‘케모포비아(chemophobia)’란 말이 우리 미디어에 등장한 지도 여러 해 지났다. 케모포비아는 화학물질에 대한 불합리한 공포(irrational fear of chemicals)로 정의된다. 그 본질을 들여다보면 ‘화학물질혐오’ 정도가 될 것 같다. 화학물질혐오는 화학물질의 위해성을 과도하게 또는 부정확하게 인식하기 때문에 생긴다.
실제로 화학물질을 두려워하고 기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 여러 연구들에서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으로 인해 ‘노케미라이프’나 ‘노케미족’ 같은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스마트폰의 폐해를 알지만 현명하게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화학물질도 첨단 과학기술의 성과물이다. 안전성에 대한 몰이해로 마냥 기피하는 것은 과학기술의 유용성을 낭비하는 것이다.
2017년에 생리대 유해 물질 파동(생리대 파동)이 있었다. 한 시민단체가 일회용 생리대에서 유해한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검출되었다고 발표하면서 큰 화제가 되었으나,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하여 종결된 건이다. 최근에 생리대 파동의 경제적 파급에 관한 연구가 발표되었다. 지목되었던 제품의 판매는 급감했지만, 생리대 전체 판매량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아마도 생리대는 필수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생리대 매출액은 40% 가까이 증가했다. ‘고급’, ‘천연’ 등의 이름을 단 고가 제품의 수요가 늘어난 까닭이다. 실제 안전성과는 무관하게, 화학물질에 대한 과도한 혐오가 불필요한 지출을 크게 늘린 것이다.
대형마트에 가면 유기농 코너가 있다. 유기농산물은 가격이 높지만 소비자에게 인기가 많다. 그런데도, 유기농산물이 그렇지 않은 농산물에 비해 영양학적으로 가치가 더 높다거나 독성학적으로 더 안전하다는 과학적 근거는 찾기 어렵다. 비슷한 예를 여타의 식품이나 화장품, 생활화학제품 등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제품의 선택에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보다는, ‘천연’, ‘자연’, ‘유기농’, ‘순수’, ‘화학물질 무첨가’ 등의 수사에 기대는 휴리스틱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화학물질혐오는 ‘안전’과 관련된 심리나 정신 보건상의 문제이다. 널리 알려진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욕구 단계에 따르면 안전에 대한 욕구(safety need)는 생리적 욕구(physiological need) 바로 위에 위치하는 기본적인 욕구이다. 이러한 본능적인 욕구는 결핍 욕구(deficiency need)에 해당하여 안전하다는 인식적 충족에 의해 해소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화학물질혐오를 극복할 수 있을까? 의견과 주장은 많지만, 연구로 입증된 사실은 많지 않다. 혐오나 공포는 본질적으로 무지나 몰이해에서 비롯된다. 마이클 시그리스트(Michael Siegrist)에 따르면 과학에 관한 이해가 낮은 이들이 화학물질혐오에 취약하며, 기본적인 독성학적 원리나 지식을 이해하게 함으로써 화학물질혐오를 해소할 수 있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화학물질 위해성에 관한 체계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전하는 것이 가장 잘 증명된 해결책이다. 이를 위해성 소통(risk communication)이라 한다. 국민이 얼마나 잘 체감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슈가 생길 때마다 여론의 뭇매를 맞는 식약처나 환경부가 위해성 소통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화학물질혐오가 작지 않은 경제적 파급력을 갖는다는 사실을 겨우 확인했다. 많은 일들이 남아 있다. 화학물질혐오가 생긴 원인과 과정,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 그리고 그의 사회, 경제적 영향을 파악해야 한다. 추정되는 바는 많지만 증명된 바는 별로 없다. 궁극적으로는 화학물질혐오의 해소 방안을 찾고 실천함으로써 불필요한 사회적 손실이나 비용을 줄여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연구와 조사가 필요한데, 이를 주도하거나 지원해야 할 주체는 아무래도 정부인 것 같다. 교육 과정 한 편에서, 교통법규나 생존수영, 응급처치와 심폐소생술, 자전거 타기와 함께, 화학물질의 유용성과 위해성을 가르칠 기회가 생기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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