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뒤로한 채 20년간 성찰… “우린 아직 더 사무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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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펴낸 박규리 시인의 첫 시집 '이 환장할 봄날에'(창비)에 수록된 '치자꽃 설화'는 여전히 독자들에게 애송시로 꼽힌다.
오랫동안 시단을 떠나 있던 박 시인이 그로부터 20년 만에 두 번째 시집 '사무치다'(나남)를 펴냈다.
박 시인은 다시 시를 쓰는 마음에 대해 "시 형식의 아름다움보다 온전한 진심을 쓰고 싶었다"며 그 방법이 "'선'에 닿기 위해 사무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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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美보다 온전한 진심 쓰고파
우리 모두 허무… 서로 보듬어야”
2004년 펴낸 박규리 시인의 첫 시집 ‘이 환장할 봄날에’(창비)에 수록된 ‘치자꽃 설화’는 여전히 독자들에게 애송시로 꼽힌다. 오랫동안 시단을 떠나 있던 박 시인이 그로부터 20년 만에 두 번째 시집 ‘사무치다’(나남)를 펴냈다. 박 시인은 최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시를 떠났던 것에 후회는 없지만 가장 사랑했던 것을 두고 온 사람으로서 항상 그리웠다”며 두 번째 시집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학교에서 시를 전공하지 않았던 박 시인에게 시를 가르쳐준 스승은 신경림, 정희성 시인이다. 신 시인의 추천으로 1995년 ‘민족예술’을 통해 등단했다. 등단을 준비하며 쓴 시를 묶기 위해 방문한 산사에서 박 시인은 인생이 뒤바뀌는 경험을 한다. 등단만을 바라며 씹어 삼키듯 책을 읽던 그는 자연의 고요가 주는 충격에 이끌려 8년간 공양주(스님을 모시며 절에서 봉사하는 사람)로 지냈다. “그때껏 쓴 시를 모두 지워버렸어요. 산사에서 보낸 시간 동안 쌓인 감정을 터뜨리듯 새로운 시를 써 등단 9년 만에 시집을 냈었죠.”
박 시인은 시집을 낸 뒤에도 문학의 길을 뒤로한 채 20년간 ‘선학(禪學)’을 배우고 가르쳤다. 선학이란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는 불성론을 토대로 정신의 본성(선)을 통찰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박 시인은 다시 시를 쓰는 마음에 대해 “시 형식의 아름다움보다 온전한 진심을 쓰고 싶었다”며 그 방법이 “‘선’에 닿기 위해 사무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인이 닿고자 하는 ‘선’이란 ‘공(空)’에서 시작한다. 비어 있다는 뜻의 공은 사람 안에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라 담긴 것이 시시각각 변한다는 것이다. 즉 항상의 것이 없다는 ‘무상(無常)’이다. 그러나 무상하다고 해서 모든 것이 무가치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금방 사라져버릴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한다. “너도 허무하고 나도 허무하죠. 그러나 그렇기에 너와 나는 다르지 않고 같기에 서로를 보듬을 수 있죠.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마음, ‘불이(不二)’가 제 모든 시의 공통점입니다.”
표제작 ‘사무치다’에서 화자는 ‘텅 빈 우주에 홀로 있는 것만 같은 슬픔이 뼈에 사무쳤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무침을 거부하거나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순간이 이끄는 대로 ‘마냥 열에 달떠 신음하고 가끔은 차갑게 식어 온몸을 떨었다’고 고백한다. ‘얼마나 더 사무쳐야 빛도 어둠도 없는 그곳에서 기어이 너와 하나 될 수 있을까.’ 이처럼 사무침을 통해서만 불이와 선에 다다를 수 있음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표제작 마지막 연의 ‘아직은 더, 더, 사무쳐야 한다고!’라는 구절은 화자에게 아직 나아갈 길이 남아 있다는 것처럼 읽힌다. 박 시인은 웃으며 “그래도 시집을 한 권은 더 내고 싶다”고 말했다. “기약하기는 어렵지만 조금 더 선에 가까워졌을 때는 지금과 다른 시가 제 안에서 터져 나올 거예요.”
지난 5월 타계한 스승 신 시인을 기리는 시 ‘낙타에 부쳐’도 수록됐다. 박 시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고인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 “신경림 선생님께서 매해 제 시를 다시 한 번 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제가 조금만, 조금만 더 서둘렀다면 좋았을 텐데요. 보고 싶어요.”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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