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거래소 파산해도 예치금 보호받아… 시세조종 적발땐 형사처벌[10문10답]
이용자 가상자산의 80% 이상
인터넷 단절된 곳 보관 의무화
미공개정보 이용 등 부당거래땐
최대 무기징역 또는 2배 과징금
예치금 대비 가상자산 보호 취약
국내발행 코인 대거 상폐 우려도
거래소, 이상거래 상시 모니터링
거래량 비정상일 땐 당국에 통보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가상자산법)이 오는 19일부터 시행되면서 정부의 감독 사각지대에 있던 가상자산 시장이 제도권 안에 들어온다. 주식시장과 마찬가지로 시세조종을 하거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얻으면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이용자에 대한 보호조치도 강화된다. 가상자산거래소 예치금은 은행이 관리하게 되며 거래소가 파산해도 이용자는 이를 돌려받을 수 있다. 하지만 발행·유통·공시 등 업계 관련 내용은 법안에 포함되지 않아 규제 공백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다. 거래소 파산 시 정작 가상자산은 돌려받지 못한다는 맹점도 있다. 가상자산은 글로벌 시장에서 거래되는 데다, 거래 내역을 한 곳에 집중해서 보관하지 않고 여러 곳에 기록(분산원장)한다는 점에서 규제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상자산사업자(코인 거래소)에 대한 제도가 처음 시행되는 만큼 적지 않은 시장의 혼란이 예상된다. 가상자산법 시행에 따른 규제 변화와 시장 파장, 규제 문제점에 대해 짚어본다.
1. 어떤 법안인가
가상자산법은 가상자산 이용자를 보호하고 가상자산 시장의 건전한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지난해 7월 제정됐다. 이 법은 가상자산 시장의 급성장과 함께 ‘테라·루나 사태’, 글로벌 가상자산거래소 ‘FTX 파산’ 등을 계기로 가상자산 시장이 ‘무법지대’라는 문제의식이 제기된 것을 배경으로, 이용자 보호와 피해 예방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만들어졌다.
가상자산법은 우선 가상자산거래소 및 관련 서비스 제공자의 운영과 거래를 투명하게 관리함으로써 시장의 신뢰성을 제고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통해 가상자산 이용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투자자들이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해 불법행위로부터 투자자를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자금세탁, 사기 등 가상자산을 통한 불법행위를 예방하고, 건전한 가상자산 생태계를 조성해 기술적 발전을 지원, 혁신적 금융 서비스 제공을 장려하는 취지도 담겨 있다.
2.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가상자산법은 우선 가상자산의 정의와 가상자산에서 제외되는 대상을 명확히 규정했다. 법률은 가상자산을 ‘경제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서 전자적으로 거래 또는 이전될 수 있는 전자적 증표’로 정의했다. 법은 크게 △이용자의 자산 보호 △불공정거래 규제 △금융감독의 감독 및 제재 등 3가지를 골자로 한다. 먼저, 이용자가 투자하기 위한 예치금과 거래소에 예치된 코인에 대한 보호가 의무화된다. 기존 가상자산 이용자들은 거래하는 가상자산사업자가 파산하면 예치금을 보호받기 어려웠다. 하지만 가상자산법이 시행되면 사업자는 이용자의 예치금을 공신력 있는 기관인 은행에 예치·신탁해야 한다. 이에 따라 가상자산 이용자들은 설령 코인 거래소가 파산해도 은행으로부터 예치금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된다.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과 시세조종, 부정거래를 ‘불공정거래행위’로 규정했다. 불공정거래는 형사처벌(최대 무기징역)과 과징금(부당이득의 2배 혹은 40억 원 이하) 부과 대상이다. 이를 적발하기 위해 거래소는 상시적으로 이상 거래를 모니터링해야 한다. 가상자산의 가격이나 거래량이 비정상적으로 바뀌거나 가상자산의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풍문·보도가 있는 경우 금융 당국에 통보해야 한다.
가상자산사업자 이용자의 가상자산 중 70% 이상의 범위에서 금융위원회가 정하는 비율(80%) 이상을 인터넷과 분리해 보관하도록 했다. 예치금이나 가상자산이 중대 범죄행위로 발생한 범죄수익 등 불법 재산과 관련이 있는 경우 가상자산의 입출금을 차단할 수도 있다.
3. 문제점과 향후 대응 방안 및 한계점
가상자산법은 이용자가 가상자산거래소를 통해 사들인 가상자산이 예치금보다 보호 수준이 낮다는 맹점이 있다. 이용자 다수는 거래소와 연결된 은행을 통해 예치금을 거래소로 보낸 뒤 가상자산을 사고 이를 거래소에 맡기고 있다. 하지만 거래소가 파산하면 예치금처럼 맡겨진 가상자산을 이용자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 증권사의 경우 투자자가 투자한 주식을 예탁결제원에 별도로 보관해 보호한다.
금융 당국은 가상자산의 특성상 신탁 등으로 분리 보관이 어려워 현행법상 증권 수준의 보호체계를 갖추기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관련 문제가 지적되고 있는 만큼 보완 방안을 찾겠다고 밝히고 있다. 또 가상자산을 발행하는 ‘재단’을 직접 규제할 방법도 없다.
4. 가상자산거래소 코인 대거 상장 폐지될 것이라는데
가상자산법 시행으로 이른바 ‘김치코인’(국내 업체가 발행하거나, 국내에서 주로 거래되는 가상자산)이 대거 상장 폐지될 수 있다는 우려감도 커지고 있다. 앞으로 거래소들은 현재 상장(거래지원)한 600여 종목에 대해 분기마다 상장 유지 여부를 재심사하는 자율규제에 나서게 된다. 발행과 유통물량 등 기본적인 정보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김치코인들이 대거 상장 폐지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드는 것이다.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상장폐지 예상 종목’ 리스트가 돌면서 해당 ‘알트코인’(비트코인 외 가상자산) 가격이 떨어지기도 했다.
거래소들은 법 시행에 따른 재심사를 6개월 동안 순차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이 때문에 한순간 대거 상장 폐지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설령 대상이 되더라도 재심사 기간을 보장하는 등 이용자 보호조치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재심사마저도 통과를 못 하는 경우 정리 매매 기간을 부여해 거래지원을 종료한다.
5. 코인의 대표적인 투자 사기 피해
금융감독원 산하 ‘가상자산연계 투자사기 신고센터’에 접수된 대부분의 피해 사례는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온라인 접근 방식이 다수를 차지했다. 금감원이 올해 1∼4월 누적 2209건의 피해 사례(중복집계)를 유형별로 분석한 결과, 채팅방에서 특정 종목에 대해 매매 지시를 내리는 리딩방 사기(26.5%) 비중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미신고 거래소(18.9%), 피싱(17.7%), 유사수신(5.29%) 방식이 뒤를 이었다. 이 밖에 △대체불가능토큰(NFT·Non-Fungible Token) 경매 사기 △록업코인 판매(블록딜) 사기 등도 벌어지고 있다.
6. 록업코인 판매란
‘록업코인’ 판매 사기는 해외 가상자산거래소 시세보다 저렴하게 매수할 기회라며 록업 설정된 코인 투자를 권유받았으나, 록업 해제일에 가격이 폭락해 손실을 보는 사례다. ‘록업’은 가상자산이 일정 기간 시장에 유통되지 못하도록 묶어 놓는 것을 의미하며, 주식시장의 ‘보호예수 제도’와 유사하다. 실제 피해를 본 A 씨는 리딩방을 통해 알게 된 B 씨에게 해외 거래소에서 록업이 설정된 C 코인 매수를 권유받았다. B 씨는 “극비 사항”이라며 조만간 C 코인의 록업이 해제되고 국내 거래소에 상장되면 6개월 내 최소 400% 이상 수익이 발생할 것이라고 현혹했다. 하지만 C 코인의 국내 거래소 상장 소식은 들리지 않은 채 록업 해제일 이후 99% 이상 폭락해 A 씨는 투자금을 모두 잃었다. 록업 코인 사기꾼들은 급조한 코인을 해외의 낯선 거래소에 상장시킨 뒤 자전거래를 반복하며 특정 가격을 유지시킨다. 투자자에게는 이를 홍보하며 금전을 편취하고 록업 해제일 전에는 모든 물량을 쏟아내 가격을 100분의 1, 1000분의 1 수준으로 폭락시켜 버리는 수법을 사용한다. 금감원은 “국내 거래소는 신규 코인 상장 정보가 유출되거나 거래소 직원이 이를 활용해 직접 매매에 가담하는 경우 매우 강하게 조치하고 있고, 감독 당국도 관련 정보를 알 수 없다”며 “해외 거래소 상장 여부는 더더욱 알 수 없는 정보로 주의가 요구된다”고 밝혔다.
7. NFT와 CBDC가 가상자산에서 제외된 이유
이번에 도입되는 가상자산법에서 일부 가상자산이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제외된 대상은 △전자채권 △모바일 상품권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 화폐(CBDC) △CBDC 연계 예금토큰 △NFT 등이다.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에서는 가상자산을 ‘경제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서 전자적으로 거래 또는 이전될 수 있는 전자적 증표’로 규정했는데, 가상자산법에서는 가상자산에서 제외되는 대상을 좀 더 명확히 한 것이다. NFT는 희소성을 갖는 디지털 자산을 대표하는 토큰을 뜻한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는 것은 다른 가상자산과 유사하지만, 기존의 가상자산과 달리 디지털 자산에 별도의 고유한 인식 값을 부여해 상호 교환이 불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금융당국은 NFT가 주로 수집 목적으로 거래되고 있어 금융 시스템에 미치는 리스크가 제한적이어서 가상자산의 범주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한다. 다만 형태는 NFT로 발행된다고 해도 고유성 없이 대량으로 발행돼 상호 간 ‘대체가 가능할 경우’에는 가상자산에 포함된다. NFT가 특정 재화나 서비스의 지급 수단으로 사용이 가능한 경우에도 가상자산의 범위에 포함된다.
CBDC는 중앙은행(Central Bank)과 디지털 화폐(Digital Currency)를 합친 용어로, 비트코인 등 민간 가상화폐와 달리 각국 중앙은행이 발행한 디지털 화폐를 뜻한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화폐라는 측면에서 가상자산의 범주에서는 제외됐다.
8. 해외의 가상자산 거래 사례
우리나라와 달리 해외에서는 가상자산의 공식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지난 1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가상자산의 하나인 비트코인에 대해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거래를 승인했다. 이어 영국, 호주, 캐나다, 스위스 등에서도 관련 상품들을 잇달아 허용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홍콩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에 대해 현물 ETF를 승인하기도 했다. 미국의 경우 비트코인 ETF가 승인된 1월 이후 비트코인 현물 ETF 10개 상품의 총자산이 500억 달러(약 66조7000억 원)에 육박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가장 큰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경우 상장 한 달여 만에 비트코인 ETF 자산이 100억 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홍콩의 비트코인 현물 ETF도 상장 한 달여 만에 660만 달러가 유입되는 등 활기를 띠었다.
9. 가상자산거래소들의 대응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들은 불공정거래행위를 감시하는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는 가상자산법 시행에 앞서 담당 부서를 신설하고 선제적으로 시스템을 준비해 왔다. 국내 거래소 최초로 도입한 ‘호가 정보 적재’ 시스템이 그중 하나다. 거래소가 보관해야 하는 거래 기록에는 가상자산명, 거래 일시, 거래 수량뿐 아니라 주문 접수 시점의 호가 정보가 포함돼야 불공정거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호가 정보를 적재해 이를 특정 주문 및 체결 상황과 비교할 수 있도록 했다. 업비트의 모니터링 시스템은 다양한 데이터 분석 도구를 갖춰 통합적인 시장 상황 분석이 가능하도록 했다. 빗썸은 이달 초부터 임직원의 비윤리적·위법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불공정거래 신고 포상제’를 운영한다. 기존의 ‘거래지원·가상자산 사기 관련 신고 채널’에서 한발 더 나아간 제도다. 빗썸 임직원이 △거래지원을 전제로 대가를 요구하는 행위 △미공개 중요정보를 누설하거나 이용하는 행위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행위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하는 행위 △이해관계자로부터 금품, 향응, 편의 등을 수수하는 행위 △회사 자산 및 정보를 부적절하게 사용하거나 이를 이용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행위 등이 신고 대상이다.
10. 법 시행에 따른 금융 당국 준비사항
가상자산법 시행에 따라 우선 금감원은 가상자산감독국과 가상자산조사국을 필두로 관리·감독 체계를 분주히 마련 중이다. 금감원은 가상자산 불공정거래 매매분석 플랫폼을 자체 구축했는데, 관련 플랫폼은 시세조종 내역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단순·반복 계산 작업을 자동화하고 혐의군 거래 분석, 매매재현, 통계 추출, 연계성 분석 등을 할 수 있다. 검찰과 가상자산 범죄와 관련해 수사 공조 의지를 다지고 있다.
관련 법안 도입을 진두지휘한 금융위원회는 2단계 입법안 마련에 분주하다. 1단계 격인 가상자산법이 가상자산 정의와 최소한의 투자자 보호와 관련한 내용을 담고 있다면, 2단계에선 가상자산 발행·유통, 불공정거래 등 시장에 대한 실질적 규제가 담길 예정이다. 유통과 발행 등 가상자산 관련 업무 세분화, 통합적 시장 감시 시스템 구축 등이 2단계 법안에 담겨야 할 사안들로 거론된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은 기존 자금세탁 등 특금법상 의무 위반 검사 업무를 계속 수행하게 된다. FIU 소속 가상자산검사과는 가상자산사업자에 대한 현장 검사를 나가 의무 위반이 발견되면 제재하고 있다.
신병남·박정경·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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