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 미국에서 ESS 시장 뚫어 1조 ‘잭팟’
"고속 성장을 기대했던 전기차와 배터리 시장의 일시적 성장세 둔화 등은 우리가 맞이한 새로운 위기다. 이러한 위기를 반드시 극복하고 도약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최윤호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이 7월 1일 경기 용인시 기흥 본사에서 열린 '54주년 창립기념식'에서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대응을 촉구하며 강조한 말이다. 전기차 시장이 캐즘을 맞이하면서 국내 이차전지 기업이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가운데 삼성SDI의 활약이 눈에 띈다. 최 사장의 발언이 있고 나흘 후 미국 최대 전력업체 넥스트에라에너지에 1조 원 상당의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배터리 납품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중국이 제패한 ESS 시장에 도전
그간 ESS 시장은 중국 기업이 주도해왔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ESS용 배터리 시장점유율은 중국 4개 기업의 비중이 70%를 넘어섰다(그래프1 참조). 중국 기업들은 값싼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무기 삼아 시장을 제패하고 있다. 삼성SDI의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기준 4.9%로 국내 기업 가운데 가장 높았지만, 시장점유율이 하락 추세를 이어간 만큼 위기감이 없지 않았다.
이번 계약으로 삼성SDI가 미국 ESS 시장에 본격 진출하면서 관련 판도에도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 삼성SDI는 6월 19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유럽 2024'에서 삼성배터리박스(SBB) 1.5를 처음 공개했다. SBB는 20피트의 컨테이너 박스에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배터리 셀과 모듈, 랙을 설치한 제품으로 전력망과 연결하면 바로 사용할 수 있다. 이번에 공개한 SBB 1.5는 내부 공간 효율화를 통해 단위 에너지 밀도를 기존 제품 대비 37% 향상시켜 5.26MWh의 용량을 구현했다. 넥스트에라에너지가 여러 경쟁업체 가운데 삼성SDI를 선택한 배경도 삼성SDI ESS용 배터리의 성능이 뛰어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다각화되는 배터리 포트폴리오
‘배터리 포트폴리오 다각화' 역시 삼성SDI의 강점으로 꼽힌다. 이번 계약으로 전기차용 배터리와 ESS용 배터리를 양축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이 정립되면서 전기차 캐즘에 좀 더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됐다. 더 나아가 삼성SDI는 ESS용 배터리 부문 역시 NCA 배터리와 LFP 배터리 투 트랙 전략에 따라 운영할 계획이다. 미국 정부가 2026년부터 LFP 배터리로 무장한 중국산 배터리의 수입 관세를 7.5%에서 25%로 높이기로 했는데, 같은 시기 ESS 라인업에 LFP 배터리를 추가하기로 한 것이다. 삼성SDI 관계자는 "그간 ESS용 배터리의 경우 NCA만 사용해왔으나, 고객 수요에 맞춰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자는 차원에서 투 트랙 전략으로 계획을 세우게 됐다"고 설명했다.
ESS용 배터리 시장은 꾸준한 성장이 전망된다. SNE리서치는 올해 ESS 시장이 전년 대비 27% 커진 400억 달러 (약 55조2000억 원)까지 성장하고, 2035년에는 800억 달러(약 110조3800억 원)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공지능(AI) 시대 도래로 전력 수요량이 급증하고, 태양광발전 증가에 따라 안정적인 전력 공급의 필요성이 커지는 점 역시 관련 시장에는 호재다. 최윤호 사장은 "초격차 기술 경쟁력으로 구현한 SBB 신제품 등 다양한 제품 라인업 출시와 AI 시대 가속화에 따른 적극적인 신규 시장 개척을 통해 글로벌 ESS 시장을 선도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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