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읽기] 경쟁 중심 교육이 가져온 과도한 불안에 대하여
(서울=뉴스1) = 최근 개봉한 한 애니메이션 영화가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큰 공감을 얻고 있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인 여러 감정들 중 '불안'이에게서 남들보다 뒤처질 것 같아 불안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는 관람평들과 영화를 보며 공감의 눈물을 흘렸다는 후기들이 이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불안'이에게 공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대학입시 정책이나 사교육 문제에 관한 뉴스 기사에서 자주 발견되는 '불안'이라는 단어가 영화관람 후기들과 겹쳐 보이는 데서 그 이유를 찾아보려 한다.
우리는 인지적·정서적·사회적으로 급격한 발달이 이뤄지는 아동·청소년기 대부분을 교육받으며 보낸다.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있지만, 실제 우리의 교육을 지배하는 패러다임은 명확히 경쟁과 선발이다. 치열한 입시 경쟁에서 성공하기 위해 학생들은 끊임없이 다른 학생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남들보다 잘해야 하고 친구들을 이겨야 하는 목표를 외부에서 부여받고, 이를 마침내 자신의 목표로 내면화하기도 한다. 공교육의 장에서든 사교육의 장에서든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험한 세상 속 생존 원리라는 것을 배운다.
그동안 우리가 경쟁 중심 교육체제를 통해 얻었던 이득을 부정할 수는 없다. 경쟁에서 이겨낸 개인은 명문대 입학과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직업을 가질 수 있었고, 힘들지만 경쟁에서 어떻게든 버텨낸 개인은 일정 수준 이상의 인적자본을 갖춰 노동시장에서 어느 정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인적자본을 축적하여 국가는 압축적인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경쟁 중심 교육은 개인과 사회에 많은 상처와 부작용을 남겼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경쟁에서 생존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우리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불안이다. '남들보다 잘해야 하고', '남들보다 뒤처질까' 불안한 성장기를 보낸 학생들은 성인이 된 후 자녀 교육에서도 이 같은 불안에 이끌린다. 이뿐 아니라 경쟁 중심 교육에서 '남들보다 더 나은'이라는 기준을 학습한 탓에 우리 사회에 비교문화가 만연하게 되었고 이는 사회적 규범이 되어 또다시 불안을 가중시킨다.
실제로, 통계자료를 분석한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 학생과 학부모, 사회 구성원들의 경쟁으로 인한 불안 수준이 높음을 알 수 있다. OECD 학생 웰빙 보고서 결과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학생의 웰빙 수준과 특성'을 다룬 한국교육개발원의 이슈통계 2023년 7월호에 의하면,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업 관련 불안감 지수(0.10)는 OECD 평균(0.01)에 비해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또한 '공부를 할 때 매우 긴장된다'라는 문항에 약 42%의 학생들이 동의(그렇다 또는 매우 그렇다)했는데, 이는 OECD 평균(36.6%)보다 약간 높고, 일본(약 33%)과 핀란드(약 18%)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또한, 한국교육개발원의 2022년 제180차 KEDI 교육정책포럼 발표 자료, '국민에게 듣다, KEDI POLL 20년을 통해 살펴본 교육에 대한 국민인식 변화'에서 2001년과 2021년 한국교육개발원 교육 여론조사 결과를 비교했는데, 지난 20년간 학부모들이 사교육을 시키는 가장 큰 이유는 '남들이 하니까 심리적으로 불안하기 때문에'로 나타나 학부모들이 경쟁 속에서 느끼는 불안감이 자녀 교육을 이끌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2020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국의 사회적 불안과 사회보장 과제: 청·중년의 사회적 불안'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청년층과 중년층은 우리 사회가 불안하다고 인지했고, 사회불안의 5개 영역 중 특히 '경쟁/불평등' 영역에서 불안 수준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경쟁으로 인한 과도한 불안은 미래 교육의 관점에서 볼 때 창의성을 갖춘 인재 양성과 우리 사회의 혁신역량 강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긍정심리학 분야의 저명한 학자인 Fredrickson의 '확장 구축 이론(Broaden-and-build theory)'에 의하면,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부정정서가 지배적으로 기능하여 특정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는 생각과 행동의 범위를 좁히므로 단기적인 시각에서 재빨리 생존에 필요한 결정과 행동을 할 수 있다. 이것이 원시시대부터 인간이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반면, 사람의 생각과 행동의 범위가 좁아진다는 것은 새롭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생산하고 이를 실제 문제해결로 연결하기 어려움을 의미한다.
Fredrickson의 이론은 즐거움과 흥미, 만족감, 자긍심, 사랑과 같은 긍정정서가 풍부할 때 사람의 생각과 행동의 범위가 넓어져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생산하고, 주어진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며, 창의적인 사고와 행동이 증가한다고 주장한다. 이 이론을 통해 볼 때,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생존을 위한 불안이 만연한 경쟁 중심 교육체제에서는 창의성의 효과적인 계발은 사실상 요원하다. 따라서, 미래인재의 창의성을 계발하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혁신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학생 개개인의 고유성을 존중하고 흥미와 적성, 강점을 바탕으로 학습에 몰입할 수 있게 돕는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
현재 정부는 미래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으로 전환을 위해 다양한 전략을 수립·추진하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 사회 구성원들은 정부의 정책 방향에 동의하더라도, 오랜 기간 유지되어 온 개인 간 경쟁 중심 교육이 과연 개인의 고유성을 존중 및 계발하는 교육으로 실제 변화할 수 있을지 여전히 의구심을 갖는 상황이다. 이러한 불안과 의심은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이 교육 현장에서 체감되고 정책이 장기적으로 일관성 있게 추진될 때 비로소 조금씩 사그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새로운 교육에 대한 기대감, 학교에서 느껴지는 긍정적인 변화로 인한 즐거움과 만족감이 조금씩 커진다면, 지나친 경쟁주의와 비교문화를 바꾸고자 자발적으로 노력하는 개인이 많아지고, 집단 간 협력도 활발히 이뤄지지 않을까? 이를 위해 때로는 정부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도, 때로는 정책을 세심하게 모니터링하여 내실있는 정책이 되게 하는 22대 국회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해 본다.
/성문주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미래읽기 칼럼의 내용은 국회미래연구원 원고로 작성됐으며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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