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전투에서 승리해도 전쟁에선 지고 있다
이스라엘, 가자 전쟁 목표 달성 요원
하마스는 귀환하고, 주민 지지 확장
북부에서는 헤즈볼라와의 전면전 어른
2022년 2월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에 이어 2023년 10월7일 일어난 팔레스타인 가자 전쟁은 끝나지 않으며 국제 사회를 냉전 이후 최대의 진영 대결과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은 러시아에 전례 없는 제재를 가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으나, 러시아에 전황이 유리하게 기울고 있다. 미국 등의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초토화했으나,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수렁에 빠지고 있다. 변곡점에 들어선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 전쟁의 실상을 점검한다.
“암살은 이스라엘방위군(IDF)이 가자지구 전역에서 지속적이고 변화무쌍하게 가하는 군사적 압박의 일환이다. 매일 수많은 하마스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핵심 군 지휘관인 무함마드 다이프 제거를 위해 자신들이 ‘인도주의 구역’으로 지정한 마와시 일대를 공습한 다음날인 14일 헤르지 할레비 이스라엘군 총사령관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할레비 사령관은 다이프가 사망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으며, 이 작전으로 숨진 민간인은 90명이 넘는다.
이스라엘은 가자 전쟁에서 덫에 걸리고 있다.
지난해 10월7일 가자전쟁 발발 이후 9개월 넘게 지났으나, 이스라엘이 전쟁 목표로 내걸었던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박멸은 요원하고, 막대한 피해를 입은 팔레스타인 주민 사이 하마스 지지는 확장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지난 10일 가자지구 최대 도시 가자시티 주민들에게 다시 소개령을 내렸다. 이스라엘군은 성명을 내어 하마스와 또 다른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 팔레스타인이슬람지하드(PIJ)에 대한 “대테러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며 주민들에게 다시 남쪽으로 대피하라고 요구했다.
이스라엘군은 전쟁 초기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를 대대적으로 침공해 주민 다수를 남쪽으로 소개하고 하마스 소탕 작전을 벌였다. 이스라엘은 당시 가자시티를 초토화하고 하마스를 몰아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하마스는 귀환했고, 이스라엘은 돌아온 주민들도 다시 몰아내고 있다.
앞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달 24일 가자지구에서 하마스와의 전투는 “격렬한 국면”이 거의 끝나서 병력을 헤즈볼라와 맞서기 위해 레바논과 접경한 북부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자지구에서 대규모 전투 국면의 종식을 선언한 것이 무색해졌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4만명의 병력을 투입해 가자지구 주민 230만명 중 80%를 난민으로 만들고, 3만8천명(민간인이 70%)을 죽이고, 적어도 7만톤의 폭탄을 퍼부었다. 2차 대전 때 영국 런던과 독일 드레스덴, 함부르크에 투하된 폭탄보다 많다. 빌딩의 절반 이상은 파괴됐고, 물·전기·연료를 차단해 주민들의 굶주림을 야기하는 작전도 벌여왔다.
가자 전쟁은 지난 4월부터 교착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전쟁 초기 북부에서 남부로 쓸고 내려가 가자 주민 120만명을 남단 라파흐에 몰아넣고는 최대 공격을 가하려 했다.
하지만, 민간인 피해를 우려하는 미국과 국제사회의 경고와 반발에 주춤해졌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이 전투에서는 승리하나, 전쟁에서는 지고 있다는 평가가 서방 언론에서도 지적되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4월 “이스라엘이 인질 석방과 하마스 파괴라는 전쟁의 두 목적을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 반면, 팔레스타인의 고난은 동맹국에서조차도 그(이스라엘) 지지를 갉아먹었다”고 평가했다.
잡혀간 인질 253명 중 109명은 지난해 11월 일주일간의 휴전 때 팔레스타인 수감자와의 맞교환으로 풀려났다. 이후 3명만 군사작전으로 풀려나고, 12명은 주검으로 발견됐다. 주검으로 발견된 이들 중 3명은 이스라엘군의 작전에 희생됐다. 남은 인질은 129명인데, 이스라엘은 이들 중 적어도 34명이 숨졌다고 추정한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지난 10일 의회에서 하마스 전투원의 60%가 죽거나 다쳤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 대원 사망자가 지난 4월 약 1만3천명 등 지금까지 1만4천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로버트 페이프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포린 어페어스’에 지난달 기고한 ‘하마스가 이기고 있다’라는 글에서 하마스는 건재하고, 주민의 지지를 확장했다는 평가를 한다. 하마스는 숨진 대원이 6천~8천명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미국 정보당국은 1만명 수준으로 본다. 하마스는 가자지구에서 여전히 1만5천명의 대원을 동원할 능력이 있고, 가자지구 하마스 터널의 80%가 여전히 가동되고 있다.
페이프 교수는 ‘하마스 승리’의 이유로 하마스가 대원들을 많이 잃었지만 여전히 대원들을 충원할 능력이 있고, 이런 능력의 배경에는 주민들 사이에서 확장되는 지지라고 분석한다. 팔레스타인정책조사연구센터(PSR)의 조사에 따르면, 하마스는 가자 전쟁을 촉발한 지난해 10월7일 이스라엘 기습공격 이후로 지지율이 갑절로 뛰었다. 이 공격 전인 지난해 6월에는 지지율이 20%로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통치하는 경쟁 정파인 파타흐와 비슷했는데, 1년 뒤인 지난 6월에는 40% 대 20%가 됐다. 지난 3월 조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의 73%가 하마스의 지난해 10월 공격이 정당했다고 믿고 있다. 심지어 주민의 53%는 이스라엘 민간인에 대한 공격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는 가자 전쟁 이후 주민들이 이스라엘로부터 받은 고통과 비극 때문이다. 가자 주민의 60%가 적어도 가족 중 1명을 잃었고, 75%는 가족 중에 부상자나 사망자가 있다.
이스라엘이 가자 전쟁에서 덫에 걸린 또 다른 이유는 종전 이후 계획, 출구전략이 없기 때문이다. 차히 하네그비 이스라엘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5월 말 “가자 전투는 2024년 내내 지속될 것”이라며 “최소 7개월 이상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데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전쟁이 끝나면 물러나야 할 뿐만 아니라, 전쟁을 끝낼 계획과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11월 초 미국 대선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서안지구를 통치하는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세력에 가자지구 통치를 맡기자고 하나, 네타냐후 총리와 극우 내각은 격렬히 반대하고 있다.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치안장관 등 극우 세력들은 가자지구를 완전 점령해 이스라엘의 영토로 만들자고 주장한다. 네타냐후는 이는 자신의 입장은 아니라고 주장하나,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현실을 그쪽으로 밀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 가자지구 주변 및 중앙을 관통하는 회랑에 너비 1㎞ 완충지대를 건설해, 항구적 군사 점령의 기반을 닦았다. 길이 약 40㎞에 폭 5~12㎞에 불과한 가자지구 주변과 중앙에 너비 1㎞의 완충지대 설치는 가자 주민에게는 영토의 대폭적 축소뿐 아니라 생활의 단절과 고립을 의미한다.
워싱턴의 중동연구소 에얄 루리파르데스 연구원은 “이스라엘의 주요 목표는 가자지구의 서안지구화”라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독립국의 영토가 될 서안지구의 60% 이상을 점령하고 조각내서,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조각난 땅에서 고립돼 생활하고 있다. 도하연구소의 하니 아와드는 이스라엘의 목표는 “팔레스타인 주민을 최대한 인종적 청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은 지금 가자지구에서 병력을 빼내서 레바논과 접경한 북부에 배치해, 레바논 시아파 무장 정파 헤즈볼라와의 전면전을 대비하고 있다고 이스라엘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가자 전쟁 초기에 국제사회의 비난을 돌리려고 헤즈볼라와의 충돌을 마다하지 않았으나, 이 충돌로 북부에서 자국민 10만명이 난민이 되는 사태에 직면했다. 이제 헤즈볼라와의 전면전도 이스라엘에는 피하기 힘든 덫이 되고 있다. 끝없는 가자 전쟁에 더한 헤즈볼라와의 확전이라는 ‘두 개의 덫’에 이스라엘은 걸려들고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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