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 스위퍼도, 게릿 콜 포심도 100% 그대로··· 피칭 머신의 진화, 트라젝트 아크는 야구를 어떻게 바꿔놓을까

심진용 기자 2024. 7. 16.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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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칭 머신의 최종 진화형(?)일 지도 모를 트라젝트 아크에서 공이 나오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라젝트 아크의 내부에서 ‘발사’를 기다리는 야구공들. AP연합뉴스


기술의 진화는 야구를 어디까지 바꿔놓을 수 있을까.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트라젝트 아크(Trajekt Arc)’라는 이름의 장비가 화제다. MLB에 첫선을 보인 지 불과 3년 만에 각 구단으로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트라젝트 아크, 피칭 머신의 최종 진화형?


트라젝트 아크는 간단히 말해 피칭 머신의 최종 진화판이라고 할 만한 장비다. 전면에 스크린을 설치해 투수들의 투구 영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기계에서 쏘아져 나오는 공도 실제 투수들이 던지는 그것과 똑같다. 호크아이를 통해 축적한 투구 추적 데이터를 사용한다. 구속은 물론 무브먼트, 회전수, 회전축을 실제 각 투수들의 투구 그대로 구현할 수 있다. 장비를 전후좌우로 움직여 투수판 밟는 위치나 익스텐션에 따른 차이까지 조절할 수 있다.

1896년 프린스턴 대학 수학 교수 찰스 하워드 힌튼이 화약을 이용한 원시적인 피칭 머신을 발명한 이래로 130년 동안 피칭 머신은 발전을 거듭했다. 최선 버전 중 하나인 ‘아이피치(iPitch)’ 같은 장비는 16명의 서로 다른 가상 투수가 던지는 140개의 구질을 재현한다. 트라젝트 아크는 이런 장비와 비교해도 한 차원 위다. 아이피치가 결국은 종류가 제한된 기성품을 제공한다면, 트라젝트 아크는 무제한의 맞춤상품을 제공하는 셈이다.

트라젝트 아크가 등장하자 타자들은 반색하고 나섰다. 뉴욕양키스 애런 저지는 지난 스프링캠프 기간 인터뷰에서 “트라젝트 아크를 통해 이미 꽤 많은 타석을 소화했다. 시뮬레이션 타격에 필요한 모든 게 이 장비 안에 있다”고 말했다. LA에인절스 윌리 칼훈은 지난 5월 양키스전 대타로 나와 적시타를 때려낸 뒤 트라젝트 아크에 공을 돌렸다. 칼훈은 경기 중반 대타로 나갈 것 같다고 직감했고, 홈구장 실내연습장으로 가서 트라젝트 아크 앞에 섰다. 양키스가 투입할 수 있는 모든 구원투수를 상대로 최대한 방망이를 많이 휘둘렀다. 칼훈은 “타석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어떻게 공이 들어오는지 알 수 있었다. 정말 멋진 장비”라고 했다.

투수들은 물론 분통을 터뜨린다. 양키스 좌완 불펜 케일럽 퍼거슨은 ESPN 인터뷰에서 “우리는 타자들을 똑같이 모방하는 그런 장비를 이용할 수가 없지 않으냐”며 “그런데 타자들이 내가 던지는 것과 똑같은 공을 상대할 수 있다면 그건 불공평하다”고 했다.

올 시즌 MLB 사무국이 경기 중에도 트라젝트 아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논란은 좀 더 커졌다. 과거 트라젝트 아크는 인터넷 회선이 연결돼야 사용 가능했다. MLB는 경기 중 인터넷 접속을 금지하고 있다. 그래서 경기가 시작되면 장비를 쓸 수 없었다. 그러나 올 시즌을 앞두고 오프라인으로도 장비를 사용할 수 있도록 개량하면서 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됐고, 사무국은 더이상 경기 중 트라젝트 아크 사용을 막을 근거를 찾지 못했다. 아이피치처럼 실제 투구와 가까운 공을 던지는 피칭 머신을 이미 각 구단이 경기 중에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트라젝트 아크 구동 영상. 트라젝트 스포츠


트라젝트 아크를 통해 뉴욕 양키스 게릿 콜의 투구를 구현하고 있다. 트라젝트 스포츠


“스트로먼의 공을 치려면 몇 번이나 상대해야 할까?”


트라젝트 아크는 ‘야구덕후’들의 흔한 논쟁에서 출발했다. 2014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조슈아 포프는 친구들과 야구를 가지고 한참을 떠들며 논쟁했다. 당시 토론토의 젊은 에이스로 부상하던 마커스 스트로먼을 상대로 자신들이 안타를 치려면 몇 번이나 공을 봐야 하느냐가 주제였다. 말하자면 ‘일반인이 프로 투수를 맞아 어떻게 해야 안타를 칠 수 있느냐’는 이야기다.

그렇게 논쟁하던 중에 포프는 트라젝트 아크의 기본적인 발상을 떠올렸다. 공과 사람 움직임을 추적하는 스탯캐스트 데이터가 이미 다 공개돼 있는데, 그 데이터를 실제 투구로 구현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다. 그는 그저 생각만으로 멈추지 않았다. 고교 3학년이던 그는 졸업 후 대학 기계공학과에 진학했다. 학교에 다니면서 설계를 시작했고, 졸업해인 2019년 친구와 함께 ‘트라젝트 스포츠’를 창업했다. 부모님의 차고를 작업장으로 쓰며 몇 차례 시행착오 끝에 지금과 비슷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2021년 봄 시카고 컵스가 트라젝트 아크를 처음 도입했고, 2022년 MLB 7개 팀으로 퍼졌다. 지금은 30개 구단 중 절반이 넘는 19개 팀이 이 장비를 쓴다. 일본프로야구(NPB) 3개 팀도 최근 고객이 됐다.

어쩌면 가까운 장래에 KBO에도 트라젝트 아크가 도입될지 모른다. 기술적으로 문제는 없다. MLB에서야 전 구단이 쓰는 호크아이 데이터를 쓰지만, KBO 대다수 구단이 쓰는 트랙맨 데이터와도 호환할 수 있다. 비용 역시 치명적인 문제는 아니다. MLB 구단들은 트라젝트 아크를 3년 약정으로 한 달 1만5000달러(약 2000만원) 대여료를 내고 쓴다. 아예 무시해도 좋을 금액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부담이 되는 액수도 아니다.

30개팀 MLB, 10개 구단 KBO··· 효과도 같을까


다만 공간은 문제가 될 수 있다. 트라젝트 아크는 무게가 700㎏ 가까이 나가는 육중한 장비다. 보통 피칭 머신처럼 편의대로 이리저리 옮겨가며 사용하기가 어렵다. 장비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투·포수간 거리 18.44m에 준하는 공간이 필요하다. 실제로 MLB 애리조나 구단의 경우 기껏 장비를 도입해 놓고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홈구장 체이스필드 안에 설치된 연습장 공간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다.

효용성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MLB의 경우 지난해부터 인터리그 경기 수가 틀어나면서, 한 시즌에 나머지 29개 팀 모두를 상대해야 한다. 인터리그 라이벌 팀과 1년에 4차례, 나머지 14개 팀과 3차례씩 맞대결한다. 그래서 1년에 1번 볼까 말까 한 투수가 수두룩하다. 이런 환경에서는 트라젝트 아크가 특히 빛을 발할 수 있다.

10개 구단이 매년 서로 16차례씩 맞붙는 KBO 리그는 사정이 다르다. 선수층 역시 MLB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차이가 난다. 트라젝트 아크가 필요할 만큼 생소함이 크지 않다. 국내 한 구단 단장은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한번 써보고 반납하는 식은 안되지 않겠느냐”며 “비용도 아예 무시할 만한 금액은 아니다. 투자 대비 효용을 따져봐야 한다. 시즌이 끝나면 한번 논의를 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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