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세아 ‘성공신화’ 계열사 적자에 ‘흔들’
김웅기 회장 리더십에도 ‘생채기’…글로벌세아 “올해 실적 개선될 것으로 기대”
(시사저널=이석 기자)
김웅기 글로벌세아그룹 회장은 섬유·패션 업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통한다. 1986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자본금 500만원으로 세아교역(현 글로벌세아)을 창업해 세계 최대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ODM(제조업자개발생산) 기업을 일궜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글로벌세아그룹의 자산과 매출은 각각 6조3729억원과 5조873억원이다. 재계 순위는 70위로 공정위가 지정한 대기업(공시대상기업집단)에도 2년 연속 포함됐다.
이에 대해 M&A(인수합병)를 통한 몸집 불리기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글로벌세아는 2007년 인디에프(옛 나산)를 시작으로 세아STX엔테크(옛 STX 플랜트 부문), 태림페이퍼, 발맥스기술, 쌍용건설 등을 줄줄이 인수했다. 그 결과 건설과 플랜트, 제지·포장, 식음료(F&B), 문화·예술 등을 아우르는 거대 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김 회장은 한발 더 나아갔다. 오는 2025년까지 연매출 10조원, 영업이익 1조원을 달성하는 '비전 2025'를 발표한 상태다.
M&A 통한 몸집 부풀리기 전략 '부메랑'으로
지난 38년간 순항하던 '김웅기호(號)'의 성공신화가 최근 흔들리고 있다. M&A를 통해 편입시킨 계열사들의 실적이 동반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아STX엔테크와 인디에프는 최근 몇 년간 매출 감소와 함께 영업적자를 이어오고 있다. 특히 세아STX엔테크의 영업적자가 계속되면서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발맥스기술도 지난해 매출이 소폭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적자로 전환됐다. 영업적자까지는 아니지만 태림페이퍼와 태림포장 역시 매출과 영업이익 역시 지난해 감소했다. 글로벌세아그룹 편입 직후 쌍용건설의 영업이익이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된 게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글로벌세아그룹 측은 "경영환경 변화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그룹 관계자는 "코로나 팬데믹과 전쟁 등의 여파로 건설 단가가 급등했지만 남부발전 등 한전 자회사들이 공사비를 증액해 주지 않아 세아STX엔테크의 손해가 컸다"면서 "현대삼호중공업과 포스코이앤씨, HJ중공업 등 한전 자회사들과 거래하는 업체들 모두 겪는 공통된 현상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계의 시각은 다르다. 이들은 글로벌세아 계열사들의 동반 추락을 두고 '승자의 저주'를 우려한다. 과도한 M&A로 인해 그룹의 체질이 약해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글로벌세아 계열사들의 실적 압박은 최근 주력 계열사인 세아상역과 지주회사 글로벌세아로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세아상역의 매출은 2조3397억원에서 1조8219억원으로 전년 대비 22.1% 감소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 감소 폭은 더 크다. 영업이익은 63.5%(1768억원→622억원), 순이익은 70.5%(1706억원→504억원)나 각각 감소했다.
문제는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도 계열사 대여금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세아상역이 계열사에 빌려준 돈은 1708억원에서 2608억원으로 52.7%나 증가했다. 이 중 절반인 1303억원이 지주회사인 글로벌세아에 대여한 돈이다. 지난해 글로벌세아가 매출 증가와 함께 1000억원대 영업이익을 냈음에도 당기순이익이 202억원 적자를 기록한 것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증권가는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몇 년간 M&A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글로벌세아의 차입금이 크게 증가했다. 지난해 이 회사가 지출한 이자비용만 1000억원을 웃돈다"면서 "그 후유증으로 1000억원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순이익은 적자로 전환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세아그룹 측도 이 같은 지적을 완전히 부인하지 않았다. 그룹 관계자는 "글로벌세아는 (100% 자회사인) 세아STX엔테크의 원활한 사업 진행을 위해 자금 대여와 함께 지급보증을 해왔다. 최근 공사비 원가가 크게 증가해 손실이 발생했지만 예전 보증 의무를 여전히 이행하고 있다"면서도 "세아STX엔테크는 최근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남부발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문제가 해결되면 올해는 영업 흑자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태림이나 인디에프 역시 지난해 실적이 다소 약화하거나 소규모 적자 상태지만 돌파구를 찾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한다. '재계의 승부사'로 불리는 김웅기 회장이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지 우선 주목된다.
오너 2세들 '땅 짚고 헤엄치기식 경영' 뒷말
글로벌세아그룹을 둘러싼 이슈는 현재 이뿐만이 아니다. 김웅기 회장은 슬하에 아들이 없는 만큼 세 딸이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을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이 때문에 2세 경영을 염두에 두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에스투에이(옛 세아글로벌씨앤에스)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현재 미술품 위탁판매 사업을 하고 있다. 현재 김웅기 회장의 장녀 세연씨 등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데, 실적이 신통치 않다. 이 회사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실적을 처음 공시한 2021년부터 3년간 영업적자를 기록 중이다. 운영자금 상당 부분은 세아상역의 차입금에 의존하고 있다. 김 회장의 삼녀 세라씨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태범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 회사는 현재 글로벌세아의 강남 사옥 3곳에서 카페를 운영 중인데, 영업적자가 계속되면서 한때 계열사 대여금으로 생명을 연장해 왔다. 최근 사옥 매각으로 계열사 대여금을 정리했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2세 밀어주기' 논란이 적지 않았다.
물론 글로벌세아그룹 측은 "사실이 아니다"고 강변한다. 그룹 관계자는 "태범이 운영하는 카페 쉐누는 글로벌세아그룹 임직원들의 복지 차원에 운영되고 있다. 에스투에이 역시 마찬가지다. 그룹의 사회공헌과 벤처캐피털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그룹과 거래가 거의 없는 데다, 자금 지원 역시 회장님 개인 보증과 에스투에이 자체 담보로 이뤄지는 만큼 부당 지원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2세 지원 위해 그룹 임원 겸직도
하지만 이 같은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에스투에이는 현재 재고자산 등으로 이미 담보가 모두 제공된 상태다. 그럼에도 2023년 5월부터 10회에 걸쳐 540억원의 자금을 세아상역으로부터 차입하고, 만기를 연장했다. 태범의 경우 매출의 상당 부분을 계열사에 의존하고 있는 데다, 글로벌세아와 세아상역이 150억원 가까운 돈을 빌려주고 있다. 심지어 그룹 임원이 이 회사의 대표이사 등도 겸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태범의 경우 2019년까지 세아상역 CFO인 심철식 당시 경영지원총괄 전무(현재 부사장)가 대표를 겸직하다 2020년부터 이중오 세아상역 전무에게 물려줬다"면서 "심 부사장과 이 전무는 현재 김 회장 부인인 김수남 세아재단 이사장 등이 100% 지분을 보유한 에스엔에이시스템과 태범, 쌍용건설 등의 사내이사도 겸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세 회사 일감 몰아주기와 편법 승계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지금은 세아상역에 흡수 합병된 세아아인스가 대표적이다. 세아아인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는 이전까지 김 회장의 장녀 세연씨 등 특수관계자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오너 2세의 개인회사로 추측된다. 하지만 실적은 신통치 않았다. 2007년까지 영업적자를 기록하다가 2008년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했다. 주목되는 사실은 세아아인스의 수출 지역이 미국으로 주력회사인 세아상역과 겹친다는 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세아아인스는 2020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세아아인스빌딩을 442억원에 매입했는데, 세아상역이 494억원의 지급보증을 섰다.
회사가 성장궤도에 들어서자 세아아인스는 거액의 배당을 실시한다. 2015년에만 105억원을 배당했다. 배당률이 1050%에 이른다. 이듬해에도 40억원의 현금을 배당(배당률 400%)했다. 이 회사 지분을 상당 부분 보유하고 있는 오너 2세가 거액의 배당수익을 거두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세아상역은 2022년 세아아인스를 흡수 합병했다. 세아아인스 주주였던 세연씨 등은 주력 계열사인 세아상역의 지분 38.06%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주회사인 글로벌세아(61.94%)에 이어 2대주주로 등극한 것이다. 이후 세아상역은 매년 거액의 배당을 실시했다. 2022년부터 2년간 배당한 금액만 360억원에 이른다. 주요 주주인 2세들 역시 배당금을 받아 막대한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는 점에서 뒷말이 나오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재계에 만연해온 2세 편법승계의 전형적인 패턴이다. 세연씨가 오너의 자제가 아니었다면 이와 같이 계열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겠냐"고 꼬집었다. 오너 2세들이 지분 매각과 고배당을 통해 얻은 수익은 승계를 위한 핵심 회사 지분 매입에 사용될 수 있는 만큼, 상황에서 따라서는 편법 승계 논란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게 재계 및 법조계 안팎의 시각이다.
이와 관련해 글로벌세아그룹 관계자는 "세아상역과 세아아인스의 합병은 관련 법에 따라 적법하게 진행됐다"고 밝혔다. 그룹 관계자는 "세아아인스의 주거래처는 일본과 유럽이다. 세아상역과 거래처 자체가 다른 만큼 일감 몰아주기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면서 "합병 전 세아아인스의 성장에 대해서도 이미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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