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윤석열’의 미래를 예측했다
김태규 | 토요판부장
미국에 살고 있는 친구가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와서 최근에 연락이 닿았다. 그 친구의 질문으로 시작된 대화는 이랬다.
“누가 대통령 될 거 같아?” “미국? 트럼프가 되지 않을까.” “야, 그런 소리는 농담으로라도 하지 마. 미국 말고 한국 말이야.”
‘네가 정치부 취재 경험도 있으니 그래도 뭔가 예측이 되지 않겠냐’는 취지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 친구는 듣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지만 나는 이렇게 답했다. “진짜 모르겠어.”
답답해하는 친구에게 나는 우선 ‘다음 대선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한국 정치의 역동성을 감안하면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는 이유를 댔다. 이건 누구나 얘기할 수 있는 일반론이다. 더 중요한 이유를 덧붙였다. “희망이 개입되면 예측을 그르칠 수 있거든.”
기자 생활을 하면서 일희일비하지 않으려고 해왔다. 희망과 기대가 좌절됐을 때의 상처를 최소화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였다. ‘장사꾼’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 뒤 비판 세력을 탄압하며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부정부패가 수면 위에 드러난 뒤에도 ‘유신 공주’ 박근혜가 정권을 이어받은 사건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분노하면서 이를 연료 삼아 기사를 쓰고 또 써도 세상은 쉬이 바뀌지 않았다. 역사는 언제나 우상향으로 발전하지만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 뒤로 판단과 희망을 최대한 분리하려 했다. 정치부 근무 시절엔 보수적인 예측이 빗나가기 시작했다. 박근혜 집권 3년차였던 2016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1당을 차지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국정농단이 드러난 뒤 사람들이 하나둘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지만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내 감은 정치적으론 ‘똥촉’이었다.
하지만 ‘정치인 윤석열’에 대해서는 적중률이 높았다. ‘아마추어 윤석열’을 쉽게 보면 안 된다 생각했고 대통령 당선도 예측했다. 문재인 정부를 향했던 기대만큼 커진 실망감이, 혈혈단신으로 집권세력과 맞짱을 뜬 ‘윤석열 검사’를 대통령으로 세울 것 같았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 집권 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될 줄도 알았다.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보인 천박한 철학과 갈라치기 행태를 보고 내린 결론이었다. 경험칙에서 비롯된 예측이었지만 불행히도 빗나가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는 ‘내가 쟁취한 권력이니 내 맘대로 쓴다’고 요약할 수 있다. 이런 행태가 극단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해병대원 수사 외압 의혹이다. 수중수색 중 채 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숨지고 해병대 수사단이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자로 특정한 수사 결과를 경찰에 넘기려 하자 “이런 일로 사단장이 처벌받으면 사단장을 누가 하느냐”고 화를 내며 사건기록을 회수시켰다는 내용이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공범이 임 사단장 구명에 나선 정황까지 고려하면, 윤 대통령의 격노는 내 편을 지키려는 적극적인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자신의 사단에 의리로 보상했고 자신의 아내를 거부권으로 보호했다.
오는 19일은 채 상병 1주기가 되는 날이다. 늦었지만, 너무 늦었지만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규명을 누가 방해했는지 낱낱이 밝혀야 한다. 그게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다 짧은 생을 마감한 채 상병에게, 아들을 잃은 부모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경찰은 임 사단장 불기소 처분 결과를 채 상병 1주기가 임박한 지난 6일에야 발표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지난해 8월 수사 외압 사건 고발장을 접수하고도 아직도 수사 중이다. 수사 의지와 능력을 의심하게 하는 상황이다. 결국 사건의 진상은 특검으로 밝혀낼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이 두번이나 거부권을 행사한 채 상병 특검법은 재의결을 거쳐야 한다. 앞선 특검법 표결에서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찬성표를 던졌으니 재의결(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을 위해선 7표가 더 필요하다. 정치권에선 오는 23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누가 대표가 돼도 여당에서 그만큼의 이탈표가 발생하진 않을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아니길 바란다. 이건 예측에 대항하는 희망이다. 진실은 밝혀야 하고, 윤 대통령 본인이 말했듯 “엄연히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에게 딱딱 물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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