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채를 휘감은 뱀과 X자 십자가를 든 성자[골프 트리비아]
로열트룬, 의사설립자 존경 의미로 뱀 넣어
안드레의 십자가, 스코틀랜드 국기에도 사용
지역을 상징하는 까마귀와 새를 묘사하기도
‘강한 만큼 기술을’···‘멀리 정확하게’ 경구도
뮤어필드는 클럽 이름 앞글자 필기체로 써
올해 디 오픈이 열리는 스코틀랜드 사우스에어셔 로열 트룬 골프클럽의 휘장을 보면 다섯 개의 골프채를 커다란 뱀이 혀를 날름거리며 감싸고 있다. ‘골프의 고향’으로 디 오픈이 5년마다 개최되는 세인트앤드루의 엠블럼에는 성자(聖者)가 X자로 교차된 십자가를 들고 있고 십자가의 연장선은 골프채로 이어진 모습이 표현돼 있다. 골프클럽의 로고에 뱀이나 성자가 들어간 사연은 뭘까.
뱀은 예부터 의학의 상징이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상징은 지팡이와 뱀이다. 지팡이를 감싸고 있는 뱀은 세계보건기구(WHO)의 로고에도 들어가 있다. 로열 트룬의 로고에 뱀이 들어간 것도 의학과 관련이 있다. 이 클럽의 설립을 주도한 인물은 의사인 존 하이엇 박사였다. 그에 대한 존경을 로고에 담았다. 로고 아래에는 ‘탐 아르테 쾀 마르테(TAM ARTE QUAM MARTE)’라고 적혀 있다. ‘강한 힘만큼 기술을’이라는 뜻이다. 로열 트룬에는 디 오픈 코스 중에서 가장 짧은 홀(8번 홀·123야드)과 가장 긴 홀(6번 홀·623야드)이 모두 있다. 힘과 기술이 모두 필요한 곳이다.
세인트앤드루스 링크스의 로고에 있는 성자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안드레(영어식 표기 앤드루)다. 4세기에 한 성직자가 안드레의 유골 일부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세상 끝을 향해 배를 타고 가다 난파를 당했는데 그곳이 스코틀랜드 파이프의 해안이었다. 결국 그곳의 도시에 안드레의 유골이 묻혔다. 그 도시 이름은 세인트앤드루스가 됐다. X자는 ‘안드레의 십자가’를 의미한다. 안드레는 복음을 전파하다 처형될 때 X자형 십자가에 묶였다. 스코틀랜드의 국기에 있는 X자도 안드레의 십자가다.
로열 트룬과 세인트앤드루스 외에도 디 오픈이 열리는 순회 코스의 로고 중에는 재밌는 사연을 담고 있는 것들이 있다. 2021년 디 오픈의 무대였던 로열 세인트조지스의 로고에는 말을 탄 기사가 용을 무찌르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기사는 성 조지(Saint George)를 표현한 것이다. 유럽의 전설에 따르면 사나운 용 한 마리가 도시를 파괴하는 악행을 저질렀다. 용은 도시를 장악하고 매일 양 두 마리를 바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양이 부족해지자 사람이 제물로 바쳐질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에는 왕의 외동딸 차례가 됐다. 이때 이곳을 지나던 성 조지가 용을 죽이고 왕의 외동딸과 도시를 구했다. 도시 사람들은 이 일을 계기로 모두 기독교인이 됐다. 현재 성 조지는 잉글랜드의 수호성인이다.
디 오픈의 가장 가혹한 테스트 무대로 여겨지는 커누스티의 엠블럼은 커다란 나무 위에 까마귀 세 마리가 날고 있는 그림이다. 코스가 있는 지역이 한때 까마귀 떼가 극성을 부리던 곳이어서 크로스 네스티로 불리다 나중에 커누스티로 바뀌었는데 이를 반영한 것이다.
지난해 디 오픈이 열렸던 로열 리버풀은 바닷가 바로 옆에 있다. 로고 한 가운데에는 해초 한 조각을 부리로 물고 있는 신비스런 새의 모습이 묘사돼 있다. 그 밑에는 골프에서 가장 어렵지만 모든 골퍼들이 항상 꿈꾸는 ‘FAR AND SURE(멀리 정확하게)’가 적혀 있다.
뮤어필드의 경우는 다른 곳과 달리 글자로만 구성돼 있다. 영문 ‘HCEG’를 필기체로 멋스럽게 쓴 것인데 이 코스를 본거지로 삼고 있는 ‘아너러블 컴퍼니 오브 에든버러 골퍼스(The Honourable Company of Edinburgh Golfers)’의 약자다. 1744년 결성된 아너러블 컴퍼니 오브 에든버러 골퍼스는 세계 최초로 13개의 골프규칙을 만든 클럽으로 유명하다.
그림이나 단어를 조합해 만든 로고는 회사나 단체의 정체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1860년 시작된 디 오픈이 160년 이상을 이어오면서 다양한 스토리를 써왔듯 대회가 열리는 코스에도 다양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알면 그만큼 재밌다.
김세영 기자 sygolf@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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