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씹’할 문자와 말아야 할 문자 [편집국장의 편지]

변진경 편집국장 2024. 7. 16.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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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읽씹(읽었으나 무시)'하는 문자메시지들이 있다.

대통령 부인이 보냈다고 하는 문자메시지 전문이 공개되고, 당대표 후보가 그걸 '읽씹'했느니 어쨌느니 논란이 벌어지는 난장판 앞에서 잠시 의식이 흐려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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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시사IN〉 제작을 진두지휘하는 편집국장이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우리 시대를 정직하게 기록하려는 편집국장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국민의힘 대표 후보들이 7월10일 부산 벡스코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제4차 전당대회 부산·울산·경남 합동연설회에서 손을 잡고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자주 ‘읽씹(읽었으나 무시)’하는 문자메시지들이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는데 처음에는 혹해서 메시지 전문을 꼼꼼히 읽기도 했다. ‘개미들의 희망, 초보자의 천국’ ‘손실나면 전액 배상 드립니다’ 같은 문장에는 금세 코웃음을 쳤지만 ‘잔액이 입금되었습니다’ ‘곧 사라지는 쿠폰이 있어요’라고 시작하는 메시지는 본능적으로 열어보게 되었다. ‘경제의 문을 여세요’ ‘주식시장은 나라 경제를 살리는 나라 경제의 조절제입니다’ 등의 기개 넘치는 문구에는 잠시 감탄도 했다. 그러다 어떤 피싱 문자 하나는 아닌 걸 알면서도 재차 삼차 걸려들어 핸드폰에 전송될 때마다 내 마음을 흔들어놨다. ‘*긴급*걱정돼서 문자 드렸어요.’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메시지’란 이 업계에서 일을 하면서 한시도 놓지 못한 연구 대상이자 도전 과제였다. 마음을 열지 않는 취재원의 인터뷰를 성사시키기 위해서, 길고 긴 ‘롱폼 저널리즘’ 기사를 읽다 지쳐 포기하려는 독자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싶어서, 한 사람이라도 우리 기사를 더 ‘클릭’했으면 하는 강태공의 심정으로 기사 제목을 달면서, 언론 윤리를 저버리지 않는 선에서 최선의 ‘낚시’를 해보려 애를 썼다.

그런 처지에서 핸드폰에 쇄도하는 진짜 ‘피싱’ 문자들을 하나씩 읽어 내려가다 보면 일종의 연대감 같은 것도 느껴졌다. ‘이런 문구는 어떻게 생각해내는 거지’ ‘아이디어 짜내려고 고생했겠네’ ‘‘걱정돼서 문자 드렸어요’ 같은 첫 문구를 고안해낼 줄 아는 사람은 필시 현대사회 인간의 고립감과 정서 결핍을 파고들 줄 아는 전문가가 틀림없다…!’

그러다 그것들 사이에 섞여서 답변 타이밍을 놓쳐버린, 지인이 보낸 소중한 안부 문자와 중요한 용건 메시지를 발견하고 나서는 이 피싱 문자 제작 일당들에 대한 일말의 감탄과 동지 의식을 거두어들였다. 게다가 이들은 순진한 사람들의 지갑과 계좌를 털려는 불법 사기꾼들이 아닌가.

여당 전당대회를 앞둔 시기, 온갖 말과 메시지들이 스팸 문자처럼 쏟아지고 있다. 대통령 부인이 보냈다고 하는 문자메시지 전문이 공개되고, 당대표 후보가 그걸 ‘읽씹’했느니 어쨌느니 논란이 벌어지는 난장판 앞에서 잠시 의식이 흐려지기도 한다. 흥미로운 문장과 자극적인 설전에 정신을 빼앗겨 관전하다 보면 어느새 진짜 중요한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문자 읽씹’이라는 손가락이 아니라 ‘대통령 부인의 금품수수와 국정 개입’이라는 달이 아닌가.

피싱 문자 주의보가 발령된 세상에서 송구스럽게도 부탁과 양해 말씀을 하나 덧붙이자면, 매월 구독료나 후원금을 신용카드로 자동결제하던 독자들에게 요새 〈시사IN〉이 수상해(?) 보일 수도 있는 문자를 발송하고 있다(35쪽 안내문 참조). 결제 시스템 변경에 따라 새 자동결제 등록을 안내하는 문자메시지다. ‘피싱 문자일까 봐 무서워 못 눌러보겠다’는 독자분들이 종종 계신데, “저희가 보낸 문자가 맞다”는 답을 드린다. 그 문자만은 부디 ‘읽씹’하지 말아주시길.

변진경 편집국장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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