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힘 금지법’ 5년…‘직내괴’ ‘오피스 빌런’은 사라졌을까?

최유경 2024. 7. 16.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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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6일)은 근로기준법 제76조의 2,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딱 5년이 되는 날입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겪는 흔한 일, 그저 참고 넘겨야 하는 일, 대수롭지 않은 일로만 여겨졌던 '은밀한 괴롭힘'이 비로소 그 무게에 맞는 이름을 갖게 된 날이기도 합니다.

명명(命名)의 효과는 적지 않았습니다.직장 갑질, 직내괴, 오피스 빌런 등 직장생활의 괴로움을 꼬집는 용어가 어느덧 익숙하게 쓰이고 있고, 실제 직장 내 괴롭힘 경험률도 떨어진 거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5년의 시간 동안 법의 한계 또한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고용노동부는 법 시행 이후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했으나, 그 판단 기준을 놓고 당사자 간 갈등도 지속되고 있다며 합리적인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5년…신고는 늘고 있지만 60%는 "괴롭힘 줄었다"

사단법인 직장갑질119는 어제(1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5주년 토론회'를 열고, 노동계·경영계·고용노동부가 참석한 가운데 법의 명과 암을 함께 논의했습니다.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법 시행 직후인 2019년 3분기 직장인 1,000명 대상 설문에서 직장 내 괴롭힘 경험 응답은 44.5%에 달했으나, 2024년 2분기 응답은 32%로 12.5%p 감소한 거로 나타났습니다.

또, 직장인 10명 중 6명(60.6%)은 법 시행 이후 다니는 일터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실제 줄어들었다고 응답했다고 밝혔습니다.

실제 신고 건수 또한 매년 증가세입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관련 신고 건수는 2019년 2,130건, 2020년 5,823건, 2021년 7,774건, 2022년 8,961건, 지난해 1만 960건으로 꾸준히 늘었습니다.

여전히 직장 내 괴롭힘을 겪고도 신고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피해자들이 많겠지만, 법이 점차 자리를 잡아가면서 이전보다 그 문턱이 낮아지고 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 처리 완료 사건 중 기소율 0.78%…'기타 사건'이 절반 넘어

반면, 그 처리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전체 신고 건수 중 3만 8,732건의 처리가 완료됐는데, 신고자가 취하한 사건이 1만 1,998건에 달했고 '기타'가 2만 1,519건으로 절반을 넘었습니다.

기타 사건에는 ‘법 위반 없음’ 1만 1,301건과 5인 미만 사업장이거나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라는 이유 등으로 법 적용이 제외된 건, 불출석에 따른 조사 불능 건 등이 모두 포함됐습니다.

이 밖에 개선 지도가 4,005건, 과태료가 501건, 검찰 송치가 709건입니다. 검찰로 송치된 사건 중엔 302건이 기소로 이어져, 전체 처리 완료 사건 중 기소율은 0.78%에 불과합니다.


■ '지속성' '반복성' 주장하는 이유는?…"허위 신고 상당"·"입증 난도 높일 것"

이 때문일까요? 법 시행 5년 동안, 직장 내 괴롭힘 구성 요건에 '지속성'과 '반복성'을 추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현행법 조항이 너무 모호해 현장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는 겁니다.

고용노동부도 이 부분에 주목해 관련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제도 개선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김동희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근로기준정책팀장은 "괴롭힘 신고 건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는데, 취하하거나 법 위반 없음으로 처리되는 비중도 상당한 것을 보면 판단기준의 모호성으로 인한 허위, 과장 등의 신고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실제 법원에서는 법에는 명시돼있진 않지만 ▲가해자의 의도성, ▲행위의 지속·반복성, ▲손해의 객관성 등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추가해 판단하고 있으므로, 판결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객관적인 판단 기준을 명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김 팀장은 이른바 '을질'에 대한 우려도 전했습니다. "허위신고 등으로 피해를 입는 근로자들도 우울증, 불안감 등 고통을 겪고 있다"며 제도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사단법인 직장갑질119가 주최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5주년 토론회’에선 괴롭힘 구성 요건으로서의 ‘지속성’과 ‘반복성’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사진 제공: 직장갑질119)


반면, 김동현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현행법의 구성 요건이 모호한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요건 추가가 괴롭힘 인정의 문턱을 높이는 '역효과'를 불러올 거라고 우려했습니다.

김 변호사는 "지속·반복성 요건을 법률상 요건으로 추가하게 될 경우 갈등의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기준을 획일적으로 만들어 결국 입증 난이도를 더욱 상향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김 변호사는 국제노동기구(ILO) 190호 '폭력과 괴롭힘 협약'에서도 '1회성인지 반복적인지와 무관하게'라는 문구를 넣어 괴롭힘을 정의하고 있는 점을 강조했는데요. (우리나라는 아직 이 협약을 비준하진 않았지만, 프랑스·독일·영국 등 주요 선진국은 최근 비준한 상태입니다.)

이에 대해, 한형진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과 사무관은 "ILO 협약은 현재 우리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과 많이 다르다"며 "바로 연결하는 건 쉽지 않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러면서 "지속·반복성과 관련해선 어느 한쪽 말만 듣고 제도를 개선할 순 없으므로 모든 부분을 감안해서 어느 방향이 적절한지, (요건으로) 넣는 게 맞는지 아닌지 전반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습니다.

■ 신고 처리 절차도 '모호'…"객관적 가이드라인 필요"

노동 전문가들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와 조사, 처리 과정에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2024.3.6. 직장갑질119 이메일 상담 사례
"제가 신고했던 목적은 첫 번째는 잘못한 사람들의 징계이며, 두 번째는 징계하지 않더라도 집단 따돌림이 잘못된 일이라는 걸 알게 해주고 싶으며, 셋째는 하루빨리 잘 지내고 싶다는 것이니 빠른 처리를 부탁드린다고 다시 한번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보름이 지나도록 조사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회사 분위기는 더욱 악화됐고, 업무적인 부분도 제대로 되지 않고 이제 조롱까지 당하고 있습니다."

문가람 노무법인오늘 고양지사 노무사는 크게 ▲사내 신고 창구, 처리 절차 수립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 없음 ▲신고 이후 처리 기한, 절차 등에 대한 안내 의무 없음 ▲조사와 관련한 세부 법규 없음 등을 문제로 지적했습니다.

개선 방안으로는 각 사업장에 신고담당자 지정과 처리 절차 수립 의무를 부과하고, 면밀한 연구 검토를 통해 객관적인 조사를 담보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조사가 지체되지 않도록 '사건 접수~처리 결과 통보'까지 소요되는 표준 기간이라도 제시하고, 결과를 통보할 의무도 부여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최혜인 금속노조 법률원 노무사는 작은 사업장의 경우 근로자와 사용자 모두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사건처리 제도'가 제시될 필요가 있다며, 사업장 내 자율적 해결을 우선시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괴롭힘 사건을 적절하게 처리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도록 사용자의 조사와 판단을 조력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조사와 판단 과정에 근로자를 참여시켜야 한다며, 피해자가 지정한 조사위원을 포함하거나 외부기관을 선임할 때 사용자가 대리하거나 자문한 기관을 선임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최 노무사는 고용노동부가 노동법과 노동인권 감수성 교육 등을 받은 '전문인력 지원서비스'를 운영하는 방안, 노동위원회 등 노동청 외 분쟁 조정 기구를 활용하는 방안도 함께 제안했습니다.

양진호 전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폭행 사건과 대한항공 조현아·조현민 자매의 ‘땅콩 회항’과 ‘물컵 갑질’ 사건, 그리고 아시아나항공 승무원들의 공연 논란 등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논의에 불을 붙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직장 내 괴롭힘 소식, 근로자를 극심한 고통으로 몰아넣는가 하면 때로는 죽음에까지 이르게 합니다. 이젠 '감정'이 아닌 '안전'의 문제로 봐야 합니다.

내일도 우리들의 출근이 두렵지 않기 위해, 법안 개정을 포함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래픽: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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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경 기자 (60@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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