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일어나봐”…누나를 잃은 뒤 동생은 쇄골을 만지며 울었다

류재민 2024. 7. 1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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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 얽힌 인연은 참 끈질기게 간다.

어쩌면 죽음을 공유하는 사이는 놓아 버리고 싶어도 절대 놓을 수 없는 운명이어서일 수도 있겠다.

서로 뭔가 할 말이 많은 것 같은데 두 사람의 갈등으로 번지려던 대화는 이윽고 죽음이라고는 전혀 계획에 없던 찬란한 과거로 향한다.

이렇게 시작하는 연극 '쇄골에 천사가 잠들고 있다'는 어떤 죽음을 공유하는, 죽음으로 얽힌 두 친구의 사연을 담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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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불의전차 제공

죽음으로 얽힌 인연은 참 끈질기게 간다. 마음속에 영원히 잊을 수 없기 때문일 수도, 삶이 서로 밀접하게 맞닿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쩌면 죽음을 공유하는 사이는 놓아 버리고 싶어도 절대 놓을 수 없는 운명이어서일 수도 있겠다.

2015년 7월. 일본 교토 우지강 근처의 한 집에 가장인 키리노 켄토의 장례식이 거행되고 있다. 켄토의 납관을 도운 신인 장례지도사는 사카모토 토루. 사무적인 관계 같지만 두 사람은 과거 스승과 제자였고 아들의 친구(친구의 아버지)였던 인연이 있는 사이다.

지쳐 마당으로 잠시 나온 토루 앞에 오랜 친구이자 10년 전에 실종된 켄토의 아들 키리노 요시오가 등장한다. 서로 뭔가 할 말이 많은 것 같은데 두 사람의 갈등으로 번지려던 대화는 이윽고 죽음이라고는 전혀 계획에 없던 찬란한 과거로 향한다.

이렇게 시작하는 연극 ‘쇄골에 천사가 잠들고 있다’는 어떤 죽음을 공유하는, 죽음으로 얽힌 두 친구의 사연을 담은 작품이다. 필명이 ‘핑크 저지인 3호’인 일본 작가가 썼고 2018년 제24회 일본극작가협회 신인상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초연했고 1년 만에 다시 돌아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극단 불의전차 제공

‘쇄골에 천사가 잠들고 있다’는 누군가 죽어간 일에 대해 산 사람들이 감당해가며 살아가는 이야기다. 죽음이 여러 차례 반복돼 슬픔의 감정이 넘실댈 것 같지만 의외로 분위기는 담담하다. 요란하게 감정을 터뜨려야 하는 일도 잔잔하게 인내하는 일본 특유의 감성이 짙게 밴 작품이다.

공연 초반 보여줬던 전개 방식 그대로 작품은 현재와 과거를 교차해가면서 과거에 있었던 죽음의 상처를 하나둘 꺼낸다. 요시오는 어느 날 누나 카즈에의 죽음을 겪게 되고 이로 인해 깊은 슬픔에 잠긴다. 작품의 제목에 나오는 쇄골은 연극의 제목으로 쓰기엔 어딘가 난감한 부위지만 요시오가 누나를 기억하는 공간으로 묘사되면서 비로소 그 의미가 와닿게 된다. 그간 원치 않게 생겼던 일들로 서로 응어리진 사이지만 토루가 “이 모든 게 끝나면 네 쇄골에 잠들어도 돼?”라고 묻는 대목에서 상처를 보듬는 마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슬픈 이야기지만 절제하며 조금씩 풀어헤치는 감정들이어서 슬픔의 여운이 더 진하게 남는 작품이다. 사랑과 우정, 용서, 화해, 이해와 같은 뻔하고 교훈적인 감정들을 뻔하지 않게 담아내 가슴 한구석을 먹먹하게 한다. 배경과 인물들의 이름이 외국 작품이라는 걸 일깨우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보편적인 정서가 녹아 있어 이질적이지 않게 다가온다. 오히려 한국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하는 등의 연출이 우리 작품처럼 다가오게 한다.

극단 불의전차 제공

시골집을 형상화한 무대는 변하지 않지만 소극장 작품치고는 상당히 많은 8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덕에 풍성한 이야기와 감정들이 빚어진다.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했고 소중했던 사람들은 안녕한지, 2시간이 채 안 되는 잔잔한 이야기에 다정한 안부를 묻게 된다. 다른 어떤 화려한 수단이나 기법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에 집중한, 연극다운 연극이 그리운 관객이라면 좋아할 작품이다.

21일까지. 토루는 김동준·김이담·안지환, 요시오는 유희제·도예준·김바다가 맡았다.

류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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