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국대 ‘외인 코치 조건’ 논란이 실수? 그렇다면 더 큰 문제…실수도 말 못하는 경직된 협회 분위기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55)이 외국인 코치들의 면접을 위해 스페인 마드리드로 떠난 15일. 10년 만에 한국 축구 사령탑으로 돌아온 그의 한 마디는 혼란을 자아냈다.
홍 감독은 ‘외국인 코치 선임이 견제의 의미가 있는 게 사실이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외국인 코치는 내가 먼저 (감독직) 수락 조건에 넣은 것”이라며 “먼저 요청한 부분”라고 대답했는데, 이임생 기술총괄이사의 지난 5일 대표팀 감독직 내정 브리핑과 엇갈리는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이임생 이사는 당시 “홍 감독의 전술적인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유럽 코치를 최소 2명 요청하겠다고 했고, 홍 감독님도 받아들였다”고 말한 바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이임생 이사의 말 실수라고 해명했다. 준비된 원고를 바탕으로 진행한 브리핑 초반과 달리 중반부터는 질문에 즉흥적으로 대답을 하다보니 외국인 코치를 요청한 주체를 잘못 말했다는 설명이다.
협회의 한 관계자는 “브리핑이 진행될 때부터 내부적으로 의아했던 대목”이라면서 “이임생 이사가 ‘삼고초려’의 자세로 홍 감독을 설득했는데, 부탁하는 사람이 조건을 제시했다는 게 더 이상하다. 이임생 이사 본인에게 재차 확인해보니 예상대로였다”고 설명했다.
협회는 홍 감독이 2014 브라질 월드컵 당시 선수 발탁 기준으로 논란된 것을 우려해 외국인 코치 선임을 요구한 것이라는 보도도 사실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오히려 홍 감독이 구체적인 코치들의 역할을 제시한 것을 증거로 제시했다.
이 관계자는 “홍 감독이 요구한 지도자상은 명확했다”며 “이임생 이사가 거론한 것처럼 전술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필드 코치 1명과 선수들의 컨디션 조절과 훈련을 책임지는 피지컬 코치는 외국인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대표팀에서 비중이 늘어난 해외파들이 만족할 만한 훈련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홍 감독은 외국인 코치 선임과 관련해 적극적이었다. 협회가 수집한 후보군 뿐만 아니라 본인이 직접 주변의 도움으로 면담 대상자들을 선정했다. 홍 감독은 일주일간의 일정으로 스페인을 거쳐 포르투갈까지 이동해 코치들의 면면을 살필 계획이다.
홍 감독은 “현대 축구의 핵심은 분업이다. 코칭스태프의 역할을 세분화시키고 전문성을 끌어내는 게 내 몫이다”이라면서 “이 분들이 갖고 있는 축구에 대한 철확과 비전, 그리고 한국 축구에 대한 이해 등을 감독인 내가 직접 듣고 결정하려고 한다. 한국인 코치들과 관계를 조율해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이번 출장의 가장 큰 목적”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협회의 해명이 적시에 나오지 않으면서 오해를 키웠다는 점이다. 이임생 이사의 외국인 코치직 제안은 상처입은 팬심을 달래는 하나의 도구로 여겨졌는데, 그 제안이 사실 홍 감독에서 나온 것이라면 브리핑 직후 정정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은 ‘윗사람’의 실수조차 지적하지 못하는 경직된 조직 분위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힘을 얻는다. 실수조차 지적 못하면 ‘잘못’에 대해 내부에서 언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뜩이나 협회는 홍 감독을 선임하는 절차적 정당성 문제로 거센 질타를 받고 있다. 지난 5개월여간 100여명의 후보군을 놓고 고민하는 척을 했다는 비판이 아쉬울 수 있지만 사소한 사실 관계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는 난맥상을 지속적으로 노출한다면 당분간 팬심을 되찾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인천공항 |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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