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 트럼프의 반유토피아 정책

여론독자부 2024. 7. 16. 05: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캐서린 람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서울경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최측근 보좌관들은 권위주의 혁명을 준비중이며 이를 실행에 옮길 2만 명의 충성스런 전사들을 모집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트럼프 자신은 이같은 프로젝트에 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

그의 거짓말에 속아선 안 된다. 보수 성향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은 장장 3년에 걸쳐 ‘프로젝트 2025’로 명명된 정권교체 작업을 준비해왔다. 헤리티지재단은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900쪽 분량의 ‘정책 바이블’을 작성했다. 총 30개 챕터로 구성된 문건은 차기 공화당 대통령이 제1차 수정헌법에 명기된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동성애 권리를 철폐하며, 종교(기독교)와 정치의 접촉면을 늘리고, 기후 및 환경 보호 정책을 폐기하는 한편 생식의료서비스와 건강관리서비스를 어떻게 축소할 것인지에 관한 상세한 계획을 제공한다. 정책 총서에는 연방정부의 권한을 상당 부분 제거하고 대통령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는 방안도 담겨 있다.

트럼프는 프로젝트 2025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트럼프는 최근 소셜 미디어에 올린 글에서 “프로젝트 2025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으며, 배후가 누구인지도 모른다”고 잡아뗐다.

말도 안 된다. 과거 트럼프가 임명한 수 백명의 전직 고위관리들과 보좌관들이 프로젝트 2025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전 백악관 예산관리국장이자 현 공화당전국위원회(RNC) 정책국장인 러셀 보트, 전 백악관 이민당담 수석보좌관인 스티븐 밀러 등이 섞여 있다. 또 트럼프의 최측근 보좌관이었던 존 매켄티는 최근 보수 진영의 팟캐스트를 통해 “프로젝트 2025의 여러 작업이 트럼프의 선거 캠페인에 통합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와 그의 선거 캠프가 헤리티지의 프로젝트와 거리를 두려는 이유는 무얼까? 부분적으로는 헤리티지재단 사장인 케빈 로버츠의 최근 발언이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로버츠는 트럼프의 참모인 스티븐 배넌의 팟캐스트 ‘워 룸’(War Room)에 출연해 “우리는 미국의 두 번째 혁명을 준비하는 과정에 있다”며 “좌파가 협력한다면 피를 흘리지 않는 무혈혁명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유혈사태를 시사하는 소름돋는 위협은 트럼프의 거리두기를 유발한 부분적인 이유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프로젝트 2025의 반유토피아적인 강령이다.

프로젝트 2025의 정책 아이디어 중에는 “포르노물을 불법화해야 하며 이를 제작하고 배포한 자들을 실형에 처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음란물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포르노 불법화는 대통령이 추진하기에는 위험한 범죄 캠페인처럼 보인다. 또 안식일을 국가 공휴일로 지정하자는 아이디어에서 엿볼 수 있듯 프로젝트 2025는 정부에 유대·기독교 가치를 불어넣을 것을 제안한다.

의료보험과 관련해 프로젝트 2025가 입안한 강령은 메디케이드 예산을 삭감하고, ‘LGBTQ+(성소수자) 평등권’을 장려하는 보건부서의 프로그램을 폐기하며, 연방식품의약국(FDA)에 낙태약 판매승인 번복을 지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후와 에너지 문제와 관련해서는 연구와 재생에너지 투자에 필요한 연방기금을 삭감하고 풍력과 태양광 발전을 위한 전력망 확대를 차단할 것을 건의한다. 인기없는 이민 관련 정책안 가운데는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밀입국한 서류 미비 이민자들의 강제추방을 막고 취업을 허가하는 DACA 프로그램 폐기안도 포함돼있다.

프로젝트 2025에 담긴 포괄적인 강령은 연방수사국(FBI)과 연방무역위원회(FCC)와 같은 독립적인 기관을 대통령이 장악하는 방법까지 제시한다. 이들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력을 손에 쥘 경우 트럼프는 국가권력을 이용해 이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적에게 벌을 주고 가까운 친구에게 상을 줄 수 있다.

아마도 프로젝트 2025에 관해 아무 것도 모른다는 트럼프의 주장은 세부내용을 모른다는 뜻일지 모른다. 맞는 얘기일 수 있다. 그는 정책안을 꼼꼼히 살펴보지 않는다. 그러나 백악관의 주인이었을 당시 행정부의 주요 결정을 측근들에게 일임했듯 재집권한다해도 트럼프는 그때와 똑같이 행동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프로젝트 2025의 문건에 담긴 악의적 내용을 몰랐다는 트럼프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에 상관없이 1기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작성한 정책 교본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이유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