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종 칼럼] 차량 돌진, 고민 없는 미봉책

경기일보 2024. 7. 1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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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종 호원대 명예교수∙한국테러학회 회장

분당 서현역 사건과는 또 다른 문제였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가 재난과 각종 사건에 뒤늦게 움직이는 ‘뒷북 대응’이 판에 박은 듯 똑같다는 답답함은 서울시청역 인근에서 발생한 차량 인도 돌진 사태 현장을 살펴보면서 든 생각이다.

사고 직후 둘러본 역주행 사고 현장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인도에 턱이 없었다는 점이다. ‘만약 인도와 차도 사이에 턱이 있었다면 인명 피해는 훨씬 줄었을 텐데’라는 생각은 그동안 차량 돌진 위험을 수차례 경고했던, 나만의 생각이 아닌 현장에 있던 모두의 탄식이었다.

일반적으로 연석은 인도로 진입하려는 차량의 속도를 급격히 낮춰 보행자를 보호하지만 놀랍게도 사고 장소는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경계석인 연석의 높이가 3㎝에 불과했다.

낮은 연석은 시속 100㎞에 가까운 역주행 차량이 철제 방호울타리(가드레일)를 부수고 인도를 덮칠 때까지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다. 또 다른 장소는 문제가 없을까. 광화문광장과 홍대 앞 버스킹 거리도 찾아봤다.

광화문광장은 2009년 택시 난입 소동으로 석재 화분을 배치했으나 2022년 재개장 시에는 당시 안전 대책으로 세워둔 화분마저 모두 광장 한편에 치워져 있었고 간이 철제 울타리가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었다.

더구나 광장으로 통하는 횡단보도 9개소 중 차량 출입을 차단하는 ‘볼라드’(길가 말뚝)가 설치된 곳은 단 한 곳도 없어 이곳을 통해 차량이 광장으로 얼마든지 들어올 수 있는 상태였다. 도로와 광장 경계부에서도 약 17㎝의 경계석만 놓여 있는 실정이다. 대형 트럭 등의 차량이 광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는 어려웠다.

홍대입구역 인근 ‘레드 로드’ 버스킹 거리도 차량 돌진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곳은 각종 공연이 열리는 금·토·일요일 정오부터 오후 11시까지 ‘차 없는 거리’로 운영돼 차량 진입이 제한되지만 버젓이 차량이 활보하는 모습은 아찔했다.

볼라드의 재질과 간격도 제각각이다. 150여m의 인도에 단 두 개의 볼라드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가 하면 최대 4m까지 떨어진 볼라드도 볼 수 있었다. 대부분 승용차의 폭이 1.8m인 것을 감안하면 이 같은 볼라드는 효과가 없다. 차량 진입이 제한되는 시간대에 아예 이를 차단할 수 있는 자동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지금 미국과 유럽은 차량 돌진 테러가 잇따르면서 방어벽과 구조물을 광장을 비롯한 다중 운집 장소에 세우는 등 안전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10억유로를 조달하고 파리와 영국, 독일과 미국도 주요 도시에 차량 차단용 볼라드를 설치했다.

최근 라스베이거스는 500만달러(약 69억원)를 들여 1만5천파운드 무게의 차량이 시속 80㎞로 돌진해도 견딜 수 있는 700개의 장애물을 설치했다.

위기관리에서 가능성은 항상 미래 위험의 전조 현상이다. 유럽에서 자주 벌어지는 차량 돌진 테러가 결코 다른 나라의 일만은 아닐 수 있다. 사고 이후 내놓은 대책이 기껏 ‘배려 없는 고령운전 제한’뿐이라면 고민 없이 만들어낸 미봉책이라는 비난은 피하기 힘들 것이다.

급발진이 아니어도 우리 사회에 잠복한 많은 요인들이 언제 어느 때 우리를 덮치는 흉기로 변할지 상상해야 한다. 정치의 본령은 국민의 안전과 평화다. 비록 국가의 노력이 백방으로 이뤄져도 한 번의 잘못이 나라 전체를 멍들게 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끊임없는 살핌과 점검만이 우리 사회의 정초(定礎)를 올바르고 튼튼하게 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또다시 우리의 어느 거리가 처참한 아우성과 피로 얼룩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번 사태의 원인과 위험들을 보다 세심하게 살펴야 하는 것은 이번 사고가 우리에게 던져준 중요한 과제이며 교훈이다. 이번 참사는 오랫동안 우리 모두에게 아픔을 남길 것이다.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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