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우리가 지켜주자” 뭉치는 美보수… 사흘간 ‘트럼프 대관식’

밀워키/이민석 특파원 2024. 7. 16.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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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밀워키 전대 현장 가보니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위스콘신주 밀워키 파이서브 포럼. 이 건물로 들어가는 길목 곳곳엔 철제 펜스가 설치돼 있었고, 무장 경찰들이 주변을 순찰했다. /이민석 특파원

“적(敵)들이 더는 우리를 탄압하도록 두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는 이번 사건으로 더 강해졌습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의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암살 시도가 발생한 다음 날인 14일 오후 위스콘신주(州) 밀워키에서 만난 플로리다 주민 에드나 아이리스(75)씨는 ‘적’을 거듭 언급하며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미 동북부 오대호(五大湖) 인근 도시 밀워키가 세계적 관심을 받는 일은 거의 없지만 이번 주는 다르다. 펜실베이니아주 대선 유세 현장에서 총격이 발생하고 트럼프가 극적으로 생존한 이틀 뒤, ‘공화당 전당대회’라는 초대형 정치 행사가 열리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15~18일 밀워키에서 11월 열릴 대선의 후보를 공식 선출한다. 경선 과정에 압도적 지지를 받은 트럼프가 일찌감치 후보로 확정된 상황이라 형식적 행사가 될 전망이었지만, 총격 사건으로 인해 전당대회가 트럼프의 극적인 ‘대관식’처럼 치러질 가능성이 커졌다. 공화당은 전당대회를 통해 총격에도 끄떡없는 트럼프의 건재함을 과시하면서 지난달 대선 첫 TV 토론 완승 기세를 몰아 ‘트럼프 대세론’을 공고히 하겠다는 전략이다.

전당대회 행사장 -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리기 하루 전날인 14일 위스콘신주(州) 밀워키 행사장. 미소를 짓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얼굴과 성조기 이미지를 전광판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AFP 연합뉴스

전당대회 공식 개막 하루 전 밀워키는 이미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란 뜻의 트럼프 선거 구호)의 도시로 변한 모습이었다. 전날 병원에서 퇴원한 트럼프는 이날 오후 6시 전용기를 타고 밀워키 공항에 도착했다. 그는 부축 없이 계단을 성큼성큼 걸어 내려가다 잠시 멈추고는 두 번에 걸쳐 오른손 주먹을 들어 올려 흔들었다. 전일 오른쪽 귀를 관통한 총격 후 몸을 숙였다가 부활하듯 일어서며 취했던 동작을 재연했다. 그의 ‘굳게 쥔 주먹’은 약 4개월 남은 대선 레이스 내내 ‘강한 트럼프’를 상징하는 동작으로 지지자들을 결집할 전망이다. 트럼프는 14일 공개된 워싱턴이그재미너·뉴욕포스트 인터뷰에서 “이(피격 사건)는 우리나라를 하나로 모을 기회다. 나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졌다”고 했다. 애초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진흙탕 싸움’에 몰두하는 후보 중 하나였다면 피격 이후엔 국가 전체를 거론하고 국민을 논하는, 대통령 같은 태도를 보인 것이다.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위스콘신주 밀워키 파이서브 포럼 앞에서 14일 비밀경호국 요원 등이 건물을 입장하려는 기자들을 상대로 보안 검사를 하고 있다. /이민석 특파원

미 전역에서 온 공화당 대의원들이 주로 묵는 밀워키 한 호텔엔 지지자 수십명이 식당에 모여 있었다. 이들은 전날 피격 상황을 반복해 틀어주는 TV를 보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미시간주에서 왔다는 데이비드 미첼(52)씨는 “트럼프가 살아남은 건 이번 선거에서 무조건 승리한다는 신의 뜻”이라며 “이제 지지자들이 뭉쳐 제대로 투표를 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피격 사건은 여러 건의 기소와 재판을 겪으며 ‘그들이 우리를 탄압한다’는 프레임을 만들어온 트럼프 측의 서사를 완성해 주었다”라고 했다. ‘그들’이란 민주당, 공화당 내 반(反)트럼프 인사들, 언론과 기술 기업, 트럼프를 기소한 검사 등 트럼프의 재선에 방해가 되는 불특정 정적(政敵) 모두를 뜻한다고 NYT는 전했다.

이날 트럼프와 그의 측근들은 잇따라 ‘단결’과 ‘통합’의 메시지를 내놨다. 평소 트럼프 진영에서 접하기 어려운 표현들이다. 트럼프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우리가 단결해 악이 승리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평소 대외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아 온 트럼프의 배우자 멜라니아 여사도 성명을 내고 “용기와 상식을 일으켜 우리는 하나로 뭉쳐야 한다”고 했다. 차남 에릭 트럼프도 “미국이여 단합하라(UNITE AMERICA)!”란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전날 극적인 ‘총격 생존 드라마’를 바탕으로 강성 지지층의 결속은 물론 이번 대선 결과를 좌우할 중도층 표심(票心)도 함께 노리겠다는 의도로 분석됐다.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위스콘신주 밀워키의 한 호텔에서 만난 플로리다주 대의원 에드나 아이리스(오른쪽·75)씨. /이민석 특파원

당 경선 과정에 막판까지 트럼프와 경쟁하면서 대립했던 니키 헤일리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도 총격 직후 전당대회 연사로 나서기로 하면서 당 내부는 더욱 결집하는 모양새다. 트럼프와 거리를 둬왔던 헤일리는 당초 이번 행사에 초대받지 않았다고 했었다. 하지만 중도 지지층이 두꺼운 헤일리가 본격 트럼프 지원에 나서기로 하면서 트럼프의 외연 확장이 이뤄지고 대세론이 굳어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TV 토론 열세로 ‘인지력 저하’ 논란과 함께 민주당 안팎에서 후보 퇴진 요구를 받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은 수세에 몰린 모습이다. 바이든은 트럼프 피격 이후 세 차례나 대국민 연설을 하면서 ‘국민 통합’ 메시지를 발표했다. 이날 오후 8시에도 백악관에서 약 6분 동안 대국민 담화를 하고 “미 국민 모두 이 사건에서 한 발짝 물러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야 한다”고 했다. “정치적 의견 대립은 인간 본성의 일부지만 정치가 ‘킬링 필드(서로 죽이는 곳)’가 돼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바이든의 연쇄 담화를 두고 미 정가에선 “피격 사건 이후 트럼프 대세론이 거세지는 상황을 차단하고 현직 대통령으로서의 상황 관리 면모를 내세우기 위한 차원”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공화당 전당대회

정당 최대의 축제이자 당의 미래와 정책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행사.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4년마다 공화당전국위원회(RNC) 주관으로 열린다. 전국서 모인 대의원들이 본선에 나갈 대통령·부통령 후보를 공식 지명하고, 국내 각종 현안과 관련된 당의 정강 정책도 논의한다. 마지막 날엔 후보 지명자가 후보 수락 연설을 한다. 전당대회는 야당이 먼저 개최하고, 여당이 나중에 하는 것이 관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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