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공급 반토막, 매매·전세 다 뛴다… 文때 ‘패닉 바잉’ 재현 우려
수도권 주택 시장에서 공급 부족 우려가 커지면서 일부 실수요자 사이에서 ‘패닉 바잉’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상반기 서울 입주 물량이 작년의 절반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전셋값이 치솟고, 매매 가격까지 들썩이면서 일부 서울 지역 아파트 단지에선 2020~2021년 ‘미친 집값’ 수준을 상회하는 거래가 발생하기도 한다. 주택 인허가 물량 같은 선행지표가 고꾸라지면서 공급이 더 줄어들 것이란 불안감에 거액의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늘어 가계 대출이 급증했다. 여기에다 금리 인하 기대감이 아파트 매수 수요를 자극하면서 집값을 더 끌어올리는 ‘악순환 구조’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주택 공급은 충분하다”며 규제 일변도 정책을 고집한 문재인 정부 때와는 다른 양상이다. 현 정부는 규제 완화를 통한 대규모 주택 공급을 추진했지만, 공사비 급등과 건설 경기 침체로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 하지만 ‘공급 대란’발(發) 집값 불안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에 전문가들은 “정부가 확실한 공급 확대 시그널로 수요자를 안심시키고, 세제 혜택과 유동성 공급 등으로 민간 사업자가 주택 공급에 뛰어들 실질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15일 부동산R114가 집계한 올 상반기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5850가구로 작년 같은 기간(1만5080가구)보다 61.2% 줄었다. 주택 공급 선행지표인 서울 아파트 인허가 물량은 올해 1~5월 9300가구로 작년보다 34% 감소했다. 이런 탓에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60주 연속, 매매 가격은 16주 연속 상승세다. 지난주 서울 아파트 값 주간 상승률(0.24%)은 2018년 9월 이후 가장 높았다.
수도권 주택 시장이 ‘공급 부족’ ‘매매·전세 가격 동반 상승’ ‘금리 인하’ ‘수요 쏠림’ 등 4대 악재에 직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허가·착공·입주 물량 감소 영향으로 아파트 전셋값과 매매 가격이 동시에 오르고 있다. 여기에 금리 인하 기대감까지 더해져 서울에 ‘똘똘한 한 채’를 장만하려는 수요가 쏠리면서 아파트 거래량은 다달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지방에선 계속 미분양 물량이 쌓이는 것과 딴판이다.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이 급감한 탓에 일부 지역에선 ‘전세 품귀’ 현상이 나타날 조짐이다. 15일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이날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물건은 2만7120건으로, 2022년 6월(2만6914건) 이후 2년여 만에 가장 적다.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전용면적 84㎡는 2년 전엔 9억원대에 전세가 거래됐으나, 이달 들어 12억7000만~13억원에 계약이 체결되고 있다. 전셋값이 매매 가격에 영향으로 미치면서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한 6월 서울 아파트 값은 2021년 11월 이후 최대 상승 폭(0.56%)을 기록했다.
◇고꾸라진 아파트 공급 지표… LH 주도 공공 분양도 차질
이런 상황에서 주택 공급의 보루라 할 수 있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공공(公共) 주택 공급도 곳곳에서 차질을 빚으면서 공급 부족을 심화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3기 신도시 등 수도권 주요 택지에서 사전 청약을 받은 아파트 사업이 취소되거나 본청약 일정이 연기되고, LH의 신규 주택용지 판매도 부진한 상황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외부 변수 때문에 건설 경기가 침체한 영향이지만, 현 정부의 270만 가구 공급 계획은 실현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LH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공급계약이 해지된 공동주택 용지는 13필지, 금액으로는 1조원에 육박(9522억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상반기 해약 금액(1필지, 222억원)의 약 43배, 2023년 연간(5필지, 3749억원)의 2.5배에 달하는 규모다. 시행사나 건설사가 아파트를 지으려고 LH에서 땅을 분양받았다가 대금 납부가 밀려 계약이 해지된 사업장이 급증한 것이다.
이미 사전 청약까지 받은 공공 주택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것도 무주택 실수요자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현재 사전 청약을 받은 공공분양 단지 중 본청약이 진행되지 않은 곳은 82단지 4만3510가구에 달한다. 경기도 시흥거모 A6 블록(455가구) 신혼희망타운 본청약은 올해 12월에서 2026년 7월로 19개월이나 밀렸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정부가 부동산 시장에 주택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시그널을 주지 못하면, 서울과 수도권 주택 수요자의 불안감은 더 커질 것”이라고 했다.
◇불붙은 매수 심리… ‘패닉 바잉’ 재현되나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서울과 수도권으로만 주택 수요가 집중되는 것도 문제다. 미분양 해소가 시급한 지방과 달리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에선 집을 사려는 수요가 살아나면서 패닉 바잉이 기승을 부리던 2020~2021년 집값을 돌파한 단지도 나오고 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매수 심리가 살아난 상황에서 공급 지표가 고꾸라졌기 때문에 수도권은 상승장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수요 쏠림은 서울 아파트 거래량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올해 1~2월 2000건대를 유지했던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3월부터 서서히 증가하기 시작해 5월(5006건)에는 5000건을 넘어섰고, 6월엔 7000건 돌파가 확실시된다. 한국부동산원이 조사하는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이달 들어 기준선(100)을 넘어섰다. 2021년 11월 이후 2년 8개월 만으로 아파트를 사겠다는 사람이 팔려는 사람보다 많다는 뜻이다.
금리 인하 기대감은 수도권 주택 매수 수요에 불을 붙일 분위기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1일 “이제는 차선을 바꾸고 적절한 시기에 방향 전환을 준비하는 상황이 조성됐다”며 기준금리 인하를 시사했다. 최근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 3%대로 내리면서 6월에만 대출 잔액이 6조 3000억원 늘었다.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는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 일변도의 정책이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선망으로 이어지면서 서울 인기 주거지에 집을 장만하려는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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