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 아니다, 그 앞에 서 있는 나를 담았다
전시장에서 첨벙첨벙 물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석양이 지는가 하면 검은 급류가 흐른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서정 추상화가 올리비에 드브레(1920~1999)의 ‘페르소나’는 강이었다. 1980년대 프랑스 투렌 지방을 흐르는 루아르강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모습을 화폭에 옮겼다. 강을 있는 그대로 그리지는 않았다. 오감을 통해 그의 마음에 새겨진 추상적인 색채와 이미지를 담아냈다. 그는 생전에 “나는 풍경화가가 아니다. 풍경 앞에 서 있는 내 안의 감정을 그린다”고 말했다. 그 덕에 실제 풍경보다 훨씬 더 감각적이고 흥미로운 작품들이 탄생했다.
경기도 수원시립미술관에서 10월 20일까지 올리비에 드브레 개인전이 열린다. 국내 첫 개인전으로 70여 점이 소개되는 대규모 전시다. 파리 출신 드브레는 초기에 건축을 공부하다가 파블로 피카소를 만난 뒤 입체주의에 관심을 갖는다. 2차 대전 시기 나치의 잔혹함을 주제로 한 날카로운 형태의 흑백 작품들에서 피카소의 영향이 드러난다. 전성기는 전후에 왔다. 당시 유럽의 서정 추상 경향을 대표하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루아르의 연보라’(1985) 등 길이 3m가 넘는 3점을 천장에 매단 ‘루아르의 방’ 코너가 특히 볼거리다. 강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묽은 안료가 캔버스를 흐르도록 하거나, 두껍게 물감 덩어리를 발라 거친 강물을 표현하기도 했다.
미국·멕시코·터키 등 이국에서 발견한 다양한 빛의 인상을 그린 작품들, 그가 만든 무대 배경과 의상으로 1997년 초연한 발레 작품 ‘사인’ 녹화 영상 등도 볼 수 있다. 작가의 아들 파트리스 드브레는 한국 전시를 기념해 9일 전시장을 방문했다. 그의 기억 속 아버지는 마음에 드는 풍경이 나타나면 언제든 바닥에 주저앉아 그림을 그렸다. 그는 “아버지가 생전에 한국에 여러 번 방문해 작업했고, 푸른 산과 바다가 공존하는 정말 놀랍도록 멋진 나라라고 말씀했다”며 “훌륭한 전시로 한국에 아버지를 소개할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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