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내서 낮춘 공공요금, 現세대가 혜택 누리지만 부담은 자녀 세대가 진다”

방현철 기자 2024. 7. 16.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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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현철의 경제로 세상 읽기]
韓銀 물가보고서로 농식품부 장관과 논쟁한 이윤수 서강대 교수
지난 12일 서강대 게페르트 남덕우 경제관에서 만난 이윤수 서강대 교수가 한국의 물가 왜곡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이 교수는 한국은행과 함께 낸 '우리나라 물가수준의 특징 및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가 다른 선진국들보다 식료품·의류 등은 훨씬 비싸고, 전기, 도시가스 요금 등 공공요금은 너무 싸다고 지적했다. /전기병 기자

지난달 한국은행이 낸 ‘우리나라 물가수준의 특징 및 시사점’ 보고서가 논쟁 거리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 물가를 선진국과 비교하니 식료품·의류 등은 훨씬 비싸고, 전기·도시가스 등 공공요금은 너무 싸다는 내용이었다. 농산물 수입 규제와 공공요금 인상 억제로 물가 구조를 왜곡시킨 탓이라고 했다. 경제학계에선 “알아도 공개적으로 말하기 꺼리는 ‘불편한 진실’을 얘기했다”는 반응이 나온다. 하지만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이례적으로 “(한은 보고서는) 농업 분야의 특수성과 국가적 측면은 고려하지 않고 물가 중심으로만 단선적으로 본 것”이라며 반박에 나섰다. 이윤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은 외부 인사로는 유일하게 이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다. 12일 만난 이 교수는 “시장 원리로 보면 물가 왜곡을 바로잡아야 하고 실질 소득을 높이기 위해 생필품 가격을 낮추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서민을 위한다’는 정치권과 ‘어려운 농가를 보호해야 한다’는 농업계 목소리에 묻혀 이런 주장은 빛을 보기 어려웠다”고 했다.

- 왜 한은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나.

“2019년 국제통화기금(IMF) 방문학자로 있을 때 임금, 소득 상승에 고물가가 영향을 주는지 알아보다가 실제 한국 물가가 높은지 비교 연구를 시작했는데, 코로나로 연구 프로젝트가 중단됐다. 최근 인플레이션 이슈가 커지자 한은이 물가수준 비교 분석에 착수했고, 예전에 관련 연구를 해서 함께하게 됐다.”

- 물가수준을 연구한 이유는.

“생필품 가격이 높으면 결국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이 준다. 사람들은 물가수준보다는 전달 대비 가격 상승에 민감하다. 그런데 최근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물가수준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식당 가서 1만원 밑으로는 먹을 수 없다’ ‘장바구니에 똑같이 담았는데 전에 5만~6만원 나오던 게 8만~9만원 나온다’는 식이다. 해외여행을 다시 하고 해외 직접 구매가 늘면서 외국보다 우리나라 물가수준이 높다는 말도 나왔다.”

지난 12일 서강대 게페르트 남덕우 경제관에서 만난 이윤수 서강대 교수가 한국의 물가 왜곡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전기병 기자

◇ 선진국보다 높은 의식주 물가

- 한국 물가가 선진국보다 높은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의 소득 대비 물가수준을 비교하면 우리나라 물가수준은 OECD 평균 정도다. 하지만 품목별로 보면 얘기가 다르다. 과일, 채소 등 식료품과 의료, 구두 등이 훨씬 높고, 주거비도 서울이 다른 대도시보다 비쌌다. 의식주 물가는 OECD 평균이 100이라면 한국은 155 정도다. 즉, 한국이 선진국보다 55% 비싸다. 반면, 전기, 가스, 수도 등 공공요금은 OECD 평균의 73%밖에 안 된다. 물가 구조에 왜곡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 경제학에선 경쟁으로 가격이 같아진다고 한다.

“완전 경쟁에서는 ‘일물일가(一物一價)’라고 해서, 같은 물건 값은 어디서나 똑같아져야 한다. 관세나 무역 장벽이 없다면 운송비를 뺀 수입품 가격은 수출국 가격과 같아져야 한다. 하지만 일부 품목에서 우리나라 물가수준이 높다는 건 개방이 덜 돼 있다는 뜻이다. 과일, 채소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무역이 막혀 있어도 생산성이 높아서 싸게 만들 수 있다면 물가수준은 낮을 것이다. 즉,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나라에서 물가수준이 높은 품목은 생산성도 낮다는 것이다.”

- 물가수준 높은 게 왜 문제인가.

“실질 소득이 줄어 피부로 느끼는 생활수준이 낮아지게 된다. 경제학에선 ‘머니 이즈 뉴트럴(Money is neutral)’, 즉, ‘화폐는 중립이다’라고 해서 물가가 오르고 소득도 똑같이 오른다면 가격 표시만 바뀌지 사실상 달라지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그런데 물가수준은 올랐는데 소득이 안 오른다면 문제가 된다. 가계가 살 수 있는 몫이 줄어 실질 소득이 준다. 이는 저출생 등 각종 국가적 문제로 이어진다. 최근 OECD 통계를 보면 소득이 많은 나라일수록 아이를 많이 낳는다. 우리나라가 잘살게 됐는데도 저출생인 이유는 고비용으로 실질 소득이 적어서일 수 있다. 의식주에다 교육비 지출까지 고려하면, 자신을 위해 쓸 돈이 없는 것이다.”

◇ 물가수준 낮출 해법

- 싼 공공요금은 국민에게 좋지 않나.

“낮은 공공요금은 ‘서민을 위한다’는 정부와 정치권의 코스프레와 달리 부자를 위한 것이다. 싼 전기요금 혜택을 보는 계층은 저소득층보다 고소득층이다. 연구진이 따져 보니, 소득 상위 20% 계층이 낮은 공공요금으로 보는 혜택은 하위 20%의 2배 가까이 컸다. 에어컨과 전자제품을 더 많이 쓰는 부자들이 과소비가 커지고 혜택도 더 많이 본다. 효율적으로 생산해 가격을 낮췄다면 그나마 괜찮다. 하지만 지금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공기업이 막대한 빚을 내 가격을 낮게 유지하는데, 결국 국가 재정에 부담을 준다. 지금은 버티지만 언제까지 빚을 불리는 게 가능할지 문제다. 지금 공공요금을 낮춘 부담은 나중에 빚을 갚아야 할 미래세대가 진다는 점에서 세대 간 형평성 문제도 있다. 채권 금리 상승을 부추기기도 한다.”

- 농산물 수입 늘리면 그나마 남은 국내 농업 기반이 무너지지 않을까.

“대부분 농축산물 시장이 개방되고 있는데도, 특정 품목만 유난히 보호를 받고 있지 않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2000년대 초 FTA(자유무역협정) 체결 후 수입 과일이 늘면서 과일 가격 변동성이 줄었다. 포도 수입 개방 이후 포도 농가의 소득은 정체됐지만 샤인머스켓 등 고급화로 소득이 늘어난 경험이 있다. 농민 보호와 식량 안보는 중요한 이슈다. 그러나 싼 수입품으로 대다수의 소비자가 누리는 혜택도 균형감 있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올해는 사과가 '금사과'로 불릴 만큼 가격이 급등하기도 했다. 사과는 수입이 되지 않는다. /뉴스1

- 유통 비용도 높은데.

“농산물의 소비자가격 대비 유통비용은 1999년 39%에서 2022년 50%로 높아졌다. 비싼 농산물 가격이 농가가 아니라 유통업체 배를 불리는 건 아닌지 고민해 봐야 한다. 의류 가격이 비싼 것도 의류 유통이 백화점 등 고비용 유통 경로에 편중돼 있는 이유가 있다.”

- 경제 논리가 잘 통하지 않는데.

“소비자들은 가격이 조금 오른다고 해서 우르르 몰려가 정부나 정치권에 항의하지 않지만, 농가 등은 수입 확대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정치인들이 당장 표를 주는 사람과 자신들을 귀찮게 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는 일종의 ‘규제 포획’ 현상이 생긴다. 규제 포획은 이익 집단의 주장에 넘어가 규제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 그래도 해결책을 찾는다면.

“의식주는 공급 측면을 개선해야 한다. 의류, 식품은 유통 비용을 낮추는 노력이 우선 필요할 것 같다. 주거비는 사람들이 원하는 집의 공급을 늘려 낮춰야 한다. 최근 물가 상승률이 2%대로 안정화됐으니 공공요금 정상화 추진도 필요하다.”

“물가 왜곡은 한은이 금리 올려서 잡을 수 있는 게 아냐”

이윤수 교수는 의식주 물가가 선진국보다 높은 ‘물가 왜곡’은 높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때 금리를 올려 대응하는 통화정책으로는 풀 수 없다고 했다.

―물가 왜곡을 통화정책으로 풀 수 있나.

“통화정책은 거시 정책으로 전반적인 시장 이자율에 영향을 미친다. 기본적으로 금리를 올려 대출 수요를 억제해 물가 상승률을 낮추는 것이다. 예컨대 빚을 내서 집을 많이 산다고 하면, 이자율을 높여 집을 사는 것에 대한 비용을 높여서 집을 사는 수요를 줄이는 것이다. 또 대출을 내서 자동차를 사는 걸 억제해 수요가 줄면 가격 상승 압력이 떨어지는 걸 기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물가수준이 높은 것은 구조적으로 생산과 공급이 제한적인 데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금리를 올려 수요를 억제한다고 해서 낮출 수 있다고 보기 힘들다.”

―그래도 고금리는 물가를 낮추지 않나.

“굳이 통화정책으로 억지로 물가수준을 낮추려고 한다면 금리를 높여야 할 것이다. 이때 고금리가 지속되는 것으로 인한 부담은 상대적으로 부채에 대한 부담이 큰 서민이 지게 될 수 있다. 높은 물가로 혜택을 보던 산업은 따로 있는데, 서민이 고통을 부담하게 돼서 형평성의 문제도 생긴다. 또 물가수준을 낮춘다는 것은 디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하락)을 불러와 경제를 침체로 이끌 수 있다.”

―물가수준을 타깃 하자는 논의도 있지 있나.

“인플레이션 목표제 대신에 디플레이션이 심할 때 쓸 수 있는 옵션으로 논의되던 ‘물가수준 목표제’가 있다. 물가 상승률이 아니라 물가수준을 안정화시키겠다는 것이다. 물가 상승률 목표가 2%인데, 그에 못 미친다면 아예 어떤 물가수준을 정하고 그 수준에 가기 위해 3% 상승 등도 용인하겠다는 뜻으로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최근 인플레이션 시대가 되면서 물가수준 목표제에 대한 논의가 잠잠해졌다.”

☞이윤수 교수는

이윤수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로체스터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에서 6년간 이코노미스트로 일했고, 2009년 국내로 들어와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 등에서 컨설턴트로 일했고,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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