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AI 인재 빼앗기지 않으려면

손진석 기자 2024. 7. 16.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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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유튜브에는 메타 인공지능(AI) 수석과학자 겸 뉴욕대 교수인 얀 르쾽(LeCun)의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알려주는 영상이 여럿 있다. ‘르쿤’보다는 ‘르쾽’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가 미국에서 활동하는 AI 거물이지만 원래 프랑스인이기 때문이다.

르쾽은 프랑스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토론토대 박사 후 과정에 들어간 이후 30년 넘게 북미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가 박사 학위를 딴 파리6대학은 ‘피에르와 마리 퀴리 대학교’라는 다른 명칭도 갖고 있었다. 폴란드 출신 퀴리 부인을 받아들여 과학을 발전시킨 프랑스가 이제는 미국으로 고급 인력이 유출되는 나라가 됐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세상은 르쾽과 함께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명예교수, 앤드루 응 스탠퍼드대 교수, 요슈아 벤지오 몬트리올대 교수를 ‘AI 4대 천왕’이라고 부른다. 공교롭게도 이들 가운데 북미에서 태어난 이는 하나도 없다. 넷 모두 유럽에서 대서양을 넘어갔다.

‘딥러닝의 아버지’라 불리는 제프리 힌턴은 영국인이다. 그는 인공 신경망을 연구해 에든버러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서식스대 교수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AI를 파고들기 위한 연구비 조달이 쉽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힌턴은 북미로 무대를 옮겨 ‘AI 선구자’로 활동했다. 실리콘밸리를 주된 활동 무대로 삼는 앤드루 응은 부모가 홍콩계인 영국인이며, 삼성전자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요슈아 벤지오는 프랑스 출신이다.

유럽 태생의 AI 거물들이 북미에서 활동하는 이유를 우리도 잘 들여다봐야 한다. 남의 이야기로만 치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럽은 모바일 산업에서 미국보다 뒤처진 터라 다음 단계인 AI 시대에는 더 뒷걸음질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거대한 자본시장을 통해 연구비가 쏟아지는 미국과 달리 유럽에서는 연구자들이 충분한 금전적 지원을 받기 어렵다.

‘AI 4대 천왕’은 대학에 몸담으면서도 빅테크 소속으로 일하거나 협업해 왔다. 산학 연계가 자유롭기 때문이다. 반면 대학의 규율이 엄격한 유럽에서는 미국식 겸업을 하기에는 제약이 있다.

버는 돈의 액수가 다르다는 것도 무시하지 못한다. 르쾽이 일하는 메타의 직원 중위 연봉은 38만달러(약 5억2500만원)에 달하며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다른 빅테크도 엇비슷한 수준이다. 수억 원대 연봉이 한국에서는 50대 대기업 임원에게 해당되는 얘기지만, 미국 빅테크에서는 평범한 30대 직원에게도 흔한 액수다.

AI 전문가를 북미에 빼앗긴 건 이미 우리에게도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AI 인재의 이동을 추적하는 시카고대 폴슨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친 AI 인재의 40%가 해외로 떠난다. 행선지는 대부분 미국이다. 프랑스가 르쾽을 빼앗기고 영국이 힌턴을 내줬듯 우리도 미래의 ‘AI 천재’를 이미 미국에 넘겨줬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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