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덕의우리건축톺아보기] 양산 예찬
건물 처마가 양산 역할 해와
지금은 처마 없는 집 많아져
나름의 기능 사라져 아쉬워
날씨가 덥다. 햇볕이 강렬하다.
다음으로 등장한 집은 신석기인들의 움집이다. 대여섯 명이 거주할 수 있는 땅을 네모지거나 둥글게 50㎝가량 파고 나뭇가지를 기둥처럼 가장자리에 꽂아 그 끝이 만나게 해 원추형이나 A형으로 만든 다음 그 위에 나무 껍질이나 마른풀을 엮어 하늘을 가렸다. 석기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청동기시대에도 대부분의 사람은 움집에서 살았다. 움집에는 벽체 없이 지붕만 있었다. 이때에도 하늘을 가리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바닥은 진흙으로 다져 막집보다 정성을 들였고 가운데는 역시 화덕을 두었다. 이때는 농사를 짓기 시작해 정착 생활을 했기에 좀 더 쾌적하고 영구적인 집을 추구했다. 서울시 강동구 암사동 신석기 유적에서 움집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후 벽체를 가진 집이 흙집이나 목조 혹은 석조 형태로 발전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는 물론 고려시대에도 서민들의 일반적인 주거 형태는 움집이었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조선시대 최고의 집을 살펴보자. 궁궐의 전각이나 사찰의 절집을 보면 집을 짓는 데 온 정성이 지붕에 맞추어졌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기본적인 기능은 선사시대 막집이나 움집과 다르지 않다. 경복궁 근정전이나 창덕궁 인정전은 각각 법전(法殿)이라 하여 임금이 신하들을 모아놓고 조회하는 궁궐의 으뜸 전각인데 그 권위를 지붕으로 표현했다. 지붕을 높고 넓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집을 이층으로 만들고 내부는 통으로 하여 천장을 높게 했다. 특히 처마 끝단을 최대한 바깥 기둥 맨 위를 연결하는 가로재보다 높고 멀리 보내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다. 궁궐의 전각이나 사찰의 대웅전 등 주요 건축물의 처마와 바깥 기둥 사이에 있는 화려한 짜임새는 모두 이를 위한 장치다. 그냥 멋으로 한 것이 아니라 처마 끝을 높고 멀리 보내려는 구조체다. 이 장치를 ‘공포’ 혹은 그냥 ‘포’라고 하는데 이들이 디자인적으로 멋있어 보인다면 그것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고 갈파한 미국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1856∼1924)을 떠올리면 된다.
이랬던 처마였는데, 요즘 짓는 집을 보면 처마 없는 집이 많다. 지붕 끝단이 벽과 거의 맞닿아 있다. 미니멀리즘의 영향으로 처마 없는 지붕이 유행이다. 예전의 권위를 내려놓고 ‘미니멀리즘의 멋’을 부리는 것까지는 좋은데 처마의 기능까지 내려놓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처마는 나름의 기능이 있다. 집이 남향일 때 적당히 내민 처마는 태양의 고도가 높은 여름에는 실내로 직사광선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고 태양의 고도가 낮은 겨울에는 실내로 햇볕이 들어오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처마는 마치 사람이 양산 쓴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와 여름철 실내 온도를 낮추어 쾌적한 공간을 만든다.
이렇게 볼 때, 한여름 햇볕을 가리는 양산은 구석기시대 막집이나 신석기시대 움집의 현대판 ‘모바일 버전’이다. 막집이나 움집이야 한곳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양산은 어디든 들고 다닐 수 있지 않은가. 더위를 피하는 데 남녀가 어찌 다를 수 있을까.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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