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의 무비홀릭]모성의 광기 ‘독친’
[2] 이런 통념을 180도 뒤집어, 모성은 어떤 법도 도덕도 윤리도 뛰어넘는 무시무시한 동물적 본능이다, 라는 불온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도 있어요. 봉준호 감독의 ‘마더’(2009년)가 그렇지요. 국민엄마 김혜자가 주연인 데다 제목마저 ‘마더’니, 그 누가 이런 전복적 스토리텔링을 예감이나 했겠어요? 부조리의 예술가 봉준호는 국민엄마가 아들(원빈)에 대한 사랑을 주체하지 못해 아들의 살인행각을 목격한 고물상 할아버지의 머리통을 멍키스패너로 깨부수는 상상초월 장면을 통해 모성 신화를 파괴해 버려요. 이 세상 수많은 여성을 ‘엄마’라는 이름으로 족쇄 채운 채 희생과 무임금노동과 금욕을 강요해 온 사회의 억압기제를 고발하지요.
[3] 모성이 갖는 통념을 아예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영화도 있어요. 장서희 주연의 ‘독친’(2023년)이지요. 독이 되는 부모라는 뜻의 영어 표현 ‘toxic parents’에서 가져온 신조어 ‘독친(毒親)’은 지나친 간섭으로 자식을 망치는 부모를 말해요. 진심이 넘치지만 예측 가능한 전개가 흠인 이 영화는 “모두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라는 주문(呪文)을 걸면서 여고생 딸이 결국 죽음에 이를 때까지 몰아세우는 엄마를 통해 모성의 광기를 꼬집어요. 자기 열등감과 트라우마를 메우려는 자기보상심리가 모성이란 이름의 숭고한 가면을 쓰는 순간을 담은 영화 속 공포는 하키 마스크를 쓴 살인마가 정글용 칼을 들고 설치는 ‘13일의 금요일’ 못잖아요.
이제 모성의 광기는 영화적으론 더 이상 새로운 주제도 못 되어서, 심지어 넷플릭스 영화 ‘마이 마더’(2019년)에선 미친 모성으로 얼룩진 인공지능 로봇까지 등장한다니까요. ‘마더’로 불리는 이 로봇은 미래 인류 재건 시설에서 인간 배아 하나를 골라 소녀로 성장시키면서 자식 같은 인간을 보호하려는 프로그램된 모성이 점차 사육본능, 지배본능으로 폭주하게 되어요. 대치동 ‘돼지맘’으로 쓸 수준을 한참 넘어선다니까요.
[4] 그래서 저는 요즘, 엄마란 이름으로 거세당한 여성성을 타오르는 불꽃으로 복원시킨다는 취지의 영화들에 유독 끌려요. ‘투 마더스’(2013년)를 보세요. 나오미 와츠와 로빈 라이트가 둘 다 싱글 맘인 단짝 친구로 나오는데, 둘은 잘생긴 청년 아들을 둔 엄마들이란 공통점도 있어요. 근데 글쎄, 이 엄마들이 미치도록 아름다운 해변에서 이웃해 살다 보니 자제력이 사라졌는지 무한 상상력이 샘솟았는지, 그만 상대 친구의 아들과 각기 연인으로 발전한다는 사해동포주의를 담은 작품이에요(아, 정론지 동아일보에 이런 저질스러운 이야기를 쓰고 나니 흰 와이셔츠에 잉크 한 방울 떨어뜨린 것 같은 쾌감이 지진해일처럼 밀려와요). 이 논란적 영화는 아들들 입장에선 뒤틀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엄마들 입장에선 모성과 여성성이 교차되는 딜레마적 상황을 담았다는 근사한 해석도 가능하지만, 반대로 두 아빠와 그 딸들의 이야기로 치환할 경우 너무 너무 너무 더럽고 지저분하게 느껴지는 걸로 봐선 명배우들로 위장한 ‘해변 치정 멜로’에 불과하단 확신이 들(면서도 자꾸 찾아보게 되)어요.
[5] 역시나, 최고의 모성은 ‘차이나타운’(2015년)에서 발견되어요. 오직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차이나타운에서 ‘엄마’라 불리는 여두목 김혜수는 버려진 아이 김고은을 자신에 버금가는 살인병기로 길러내며 후계자로 지목해요. 하지만 김고은이 남자(박보검)와 사랑에 빠지면서 하나의 인간이자 여성으로 변모하려 하자, ‘엄마’는 김고은의 가장 소중한 대상인 박보검을 잔혹하게 제거함으로써 김고은의 타깃이 되기를 자처하는 동시에 그녀가 살인본능을 되찾도록 만들지요. 결국 ‘엄마’는 유사(類似) 딸인 김고은의 칼에 자살 같은 죽음을 맞아요. 스스로를 자식의 먹잇감으로 내어주는 일만이 늙은 여왕벌에게 남은 숙명적인 선택지니까요. ‘엄마’는 늘 이렇게 몰아붙여요. “증명해 봐. 네가 아직 쓸모 있다는 증명.” 맞아요. 엄마가 자식을 다그치는 건 모두 그놈의 사랑 때문이랍니다. 하지만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고요. 공포영화가.
이승재 영화평론가·동아이지에듀 상무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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