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2000년 전 이 구석기로… 거대신전 만든 ‘신앙의 힘’[강인욱 세상만사의 기원]
직경 300m 사원에 세계가 깜짝… 20t짜리 T자형 돌 200여개 세워져
화살촉-돌칼만 발견돼 ‘불가사의’
사원 만들려 모여 농사 기술 발전… 곡물 이용한 맥주 제조도 확인돼
기존 학설 ‘농경→종교’ 순서 뒤집혀
튀르키예 동남부에 위치한 괴베클리 유적은 높이 15m에 직경 300m 정도의 규모이다. 사원 안에 20t(톤)에 달하는 높이 5∼6m의 T자형 돌 200여 개가 세워진 사원이다. 각각의 돌에는 높은 예술 수준의 환상적인 동물이 새겨져 있었다. 현재까지 4개의 원형으로 만든 사원이 발견되었고, 그 주변에 20여 개가 땅속에 묻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주변에서 대형 도시나 별다른 무덤은 발견되지 않았고 구석기시대부터 사용한 쪼아 만든 석기들만 발견되었다. 이 유적의 연대가 약 1만2000년 전임이 밝혀지면서 세계 고고학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과연 빙하기가 끝나 가는 시점에 이러한 고도의 문명이 가능할까라는 의문들이 제기되었고, 지난 30여 년간 다양한 연구를 통해 고고학계의 공인을 받았다. 그 결과 2018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지정되었다.
괴베클리에서는 아직 수렵과 채집을 하는 구석기시대의 생활습관을 지닌 사람들이 일정한 때가 되면 모여서 거대한 기념물을 세워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잔치를 했다. 그런데 각각의 사원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 그래서 하늘의 별을 관측하여 건설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인정받고 있다.
놀라움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최근에는 괴베클리 근처에서 그보다 더 빠른 시기에 만든 카라한 테페도 발견되었다. 카라한 테페는 다소 원시적인 조각상과 기둥돌을 만든 모양의 사원으로 약 1만3000년 전에 만든 것이다. 괴베클리와 마찬가지로 선진적인 도구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고 구석기시대의 일반적인 화살촉과 돌칼만이 발견되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문명’의 요소는 구석기시대가 끝나갈 무렵에 이미 등장했고 그 최초의 흔적은 사원이었다. 괴베클리 유적은 거대하지만 정작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삶은 그렇게 화려하지 않았다. 괴베클리에 이 거대한 사원을 만든 사람들은 그에 어울리는 거대한 마을은 없었다. 사원 주변에서 작은 집들이 발견되었지만, 아마 사원을 만들고 예배를 드리기 위한 듯 그 규모는 작았다. 당시는 빙하기가 끝나 가는 때라서 아직 제대로 된 마을이 등장하기 전이었다. 구석기시대의 습관대로 사람들은 사냥을 하며 사방을 돌아다니다가 시간을 정해서 함께 모인 것이다.
빙하기가 끝날 무렵에 뜬금없이 거대한 건축물이 등장한 탓에 외계인들이 만들었을 것이라는 음모론이 인터넷상에서 제법 퍼져 있다. 하지만 지난 30여 년간 고고학자의 발굴에도 음모론을 뒷받침할 어떠한 증거는 없었다. 사실 괴베클리에 등장한 기술의 단초는 이미 그 이전부터 있었다. 협력하여 거대한 돌을 옮기는 기술은 매머드와 같은 거대한 동물을 사냥할 때 습득되었고, 원형으로 돌을 쌓아서 집을 만드는 기술은 그 이전 시대부터 있었다. 핍진한 동물의 표현도 이미 4만∼5만 년 전의 구석기시대 여러 동굴 벽화에도 보인다. 구석기시대 이미 가지고 있던 여러 기술과 예술이 괴베클리에서 폭발적으로 응집된 데에는 바뀐 기후환경도 한몫을 했다. 빙하기 때에는 서로 기술이나 예술의 교류가 어려웠다. 하지만 기후가 바뀌어서 사람들은 외부에 기념물을 건설하며 각자가 가진 다양한 역량을 한데 모아 발휘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된 셈이다.
아무리 기본 기술이 있다고 해도 T자형의 높이 5∼6m 구조물을 만들려면 전문적인 기술자가 필요하다. 괴베클리를 만들 당시에는 국가가 없었으니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기술자들이 오로지 신앙심으로 뭉쳐서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푸코의 진자’에 등장하며 음모론의 주요 대상이 된 길드조직 프리메이슨은 ‘자유로운 석공의 모임(free masonry)’에서 유래했다. 물론 지금 알려진 프리메이슨은 16세기에 조직된 것이지만, 괴베클리의 발굴로 실제 자유로운 석공 집단의 역사는 1만2000년 이전일 가능성도 커졌다.
이제까지 고고학자들은 농사를 짓고 마을을 이루면서 거대한 건축물, 사원 등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괴베클리의 발견으로 순서가 정반대인 것이 밝혀졌다. 사람들은 종교적인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서 모여야 했다. 사원을 만들기 위해 건축술이 발달하고 사제들이 지휘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몇 개월간 일하려면 많은 식량과 잔치에 쓸 맥주가 필요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괴베클리의 사람들은 야생 곡물을 이용하여 맥주를 만들었음이 밝혀졌다. 공사가 대형화되며 더 많은 곡물이 필요하면서 농사가 빠르게 발달했다. 거대한 종교 건축물을 만들기 위한 과정의 부산물로 집약적인 농사, 거대한 사회 그리고 문명이 태동한 셈이다.
이 변혁의 시대에 사람들은 함께 종교적인 건축물을 만들면서 그 스트레스를 이겨냈다. 괴베클리에서 거대한 돌로 만든 사원을 만든 데 반해 같은 시기 동북아시아에서는 암각화가 사원의 역할을 했다. 하바롭스크 근처의 아무르강변에 위치한 시카치알리안의 암각화 유적도 1만2000년 전에 만들기 시작했다. 여기에도 괴베클리처럼 다양한 인면상과 뱀이나 동물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얼핏 보면 실용적이지 않아 보이지만 이러한 사원을 만들기 위해 기술은 발달했고 사람들의 정기적인 모임은 새로운 정보 교환의 장이 되었다.
괴베클리는 본격적으로 신석기시대의 대형 마을이 등장하는 약 9000년 전까지 사용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괴베클리 사원의 곳곳에 일부러 흙을 부어서 묻었다.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어 살면서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괴베클리의 사원을 만들던 실력은 계속 인류와 함께했으니 괴베클리 이후 6000년이 지난 후에 등장한 우리에게 친숙한 슈메르와 이집트 같은 고대문명의 단초를 열었다. 지금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당대 최고의 기술과 예술은 성당이나 사원 같은 종교건축물에 반영되니, 괴베클리의 전통은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셈이다. 하지만 당시와 달리 최근 우리 주변에서 종교와 사원은 화합 대신에 분쟁의 중심에 서 있다.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가 그러하고 중동의 분쟁 중심에는 종교 갈등이 있었다.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도 적지 않다. 분쟁과 갈등을 없애고 사람들을 단결시켜 빙하기가 끝나는 시점의 큰 변혁을 이겨낸 1만2000년 전 세계 최초의 사원이 지금 우리에게 진정한 종교의 모습은 무엇인지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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