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노인은 느는데 일손이 없다[일본 노인일자리가 달라진다]

반기웅 기자 2024. 7. 15. 21:0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보람노동’
지난해 열린 댄스 경연대회에 참가한 고마에시 실버인재센터 회원들이 공연을 하고 있다. 고마에시 실버인재센터 제공
1980년 실버인재센터 도입
소득보다 사회 참여에 무게
경기 침체로 생계 어려워져
노인들, 취업 전선으로 이탈
2009년 이후 회원 수 감소세

일본 도쿄도 고마에시 주택가에 자리 잡은 ‘이노카타 오가와즈카 고분 공원’(猪方小川塚古墳公園). 7세기 전후 석실 고분이 있는 유적지로 규모는 작지만 방문객은 적지 않다.

온라인 방문 후기에는 ‘깨끗하고 손질이 제대로 돼 있다’ ‘정리가 잘된 공간’ 등 정갈한 고분에 대한 평가가 주를 이룬다.

“그 얘기 들을 때가 가장 기쁩니다. 이 일에 대한 보람을 느끼지요.” 잘 정돈된 고분 공원은 가모 가쓰요(79)의 작품이다. 일주일에 두 번 오전 9시 고분으로 출근해 1시간씩 청소를 한다. 시급은 시간당 1720엔으로 수입이 많진 않지만 그에게는 남다른 의미가 있는 일자리다.

가모는 “30년 식당일을 하다 그만두고 3년 전에 새로 찾은 일”이라며 “애착이 크고 잘하고 싶은 일”이라고 말했다.

가모가 맡은 고분 공원 관리일은 고마에시 실버인재센터에서 소개받은 일자리다. 실버인재센터는 일본 전역에 설치된 공익 사단법인으로 정부 지원을 받는 단체다. 관공서나 민간기업으로부터 일감을 받아 60세 이상 노인에게 연결해주는 일종의 일자리 소개소 역할을 한다.

일감을 의뢰한 곳에서 실버인재센터에 비용을 지불하면 수수료를 떼고 노인에게 급여(배분금)를 주는 구조다. 일할 의지가 있는 노인은 누구나 연간 회비(2000엔)를 내면 가입할 수 있다.

일본 실버인재센터 일자리는 주로 단기·임시직으로, 노동자성이 강한 일반 고용 일자리와 구분된다. 업종은 아파트·주차장 등의 설비 관리, 공원 청소·제초 작업과 같은 관리·청소 분야에 몰려 있다. 공원 청소와 등하교 교통지도 등 단순 업무가 대부분인 한국의 ‘공공형’ 노인 일자리와 유사하다. 옅은 노동자성·낮은 보수·단기직이라는 점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닮아 보이는 두 일자리는 취지와 목적에서 차이가 있다. 정부 재원으로 인건비를 지급하는 한국의 공공형 일자리는 노인 빈곤층의 소득보전을 위한 복지 정책에 가깝다.

반면 일본 실버인재센터 일자리는 노인에게 사회 참여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다. 노인들이 노동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그 자체로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일자리여서 일본에서는 ‘보람노동’으로 부른다.

1980년 일본 실버인재센터의 보람노동은 소득이 있는 고용과 자원봉사 활동을 접목한 새로운 노인 일자리 모델로 평가받았다.

고마에시는 보람노동 모델이 지역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고마에시는 특별한 몇몇 사례에 해당할 뿐 전국 실버인재센터 여건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당장 회원 수부터 줄고 있다. 실버인재센터 전체 회원 수는 2009년 79만1859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거듭 감소해 2022년 68만1739명으로 줄었다.

일본 노인들이 실버인재센터를 외면하는 배경은 오랜 불황으로 인한 경기 침체에 있다. 단기·저소득 일자리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노인들이 취업 전선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연금 고갈에 대한 불안감도 노인들을 정식 고용 시장으로 내몰고 있다.

실버인재센터 회원 이탈을 막기 위해 알선 일자리에 고용 성격을 강화하는 조치가 이어졌다. 2004년 ‘고령자고용안정법’ 개정을 통해 실버인재센터의 일반노동자 파견사업(실버파견사업)을 허용했고, 2016년에는 주 20시간 취업시간을 주 40시간으로 확대하고 월 10일 이내 노동일수 제한도 폐지했다. 하지만 잇따른 조치에도 회원 이탈 흐름은 지속됐다.

일손 부족이 심각해지자 일본 정부 역시 보람노동 대신 고령자의 정식 취업을 독려하고 있다. 2013년 고령자고용안정법 개정으로 65세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한편 2020년에는 70세까지 고용연장 노력을 의무화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박기훈 교수(서울사이버대 사회복지학)는 2021년 발표한 논문 ‘정년퇴직 후 노인의 노동 능력 활용’에서 “일본의 실버인재센터 사업이 노동적 성격이 강해지면서 노동경쟁력이 우수한 노인은 다른 곳을 택하고, 노동 능력이 약한 노인은 센터에서 일을 구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고령화로 노인인구가 증가하고 있음에도 실버인재센터 수는 오히려 감소하는 어정쩡한 상태”라고 평가했다.

고마에 | 반기웅 순회특파원 ba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