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삽도 못 뜬 빗물터널…숨은 '물그릇' 찾아라
<앵커>
우리 사회가 비 피해 같은 여름철 재난에 얼마나 잘 대비하고 있는지, 짚어보는 순서입니다. 기후 위기 때문에 요즘 우리나라에는 과거에 잘 볼 수 없었던 극한 호우가 잦아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무섭게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 침수 피해를 막아줄 시설이 더 필요해졌습니다.
그 현황과 대책을 이현정 기자, 신용식 기자가 차례로 전하겠습니다.
<이현정 기자>
이곳은 과거 여름마다 비가 많이 오면 물에 잠겼던 곳인데, 지난 2010년엔 2천 가구 넘게 큰 침수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후 제가 서 있는 땅속, 깊은 곳을 지나는 대규모 빗물터널을 만들었고, 덕분에 최근 집중호우 때 이 지역만큼은 물난리를 겪지 않았습니다.
[박영숙/서울 양천구 시장 상인 : 비가 억수로 와서 여기가 이게 넘실넘실했잖아. 물이 막 잠기고, 그냥 다 떠내려가고. 요새는 그럴 일이 없죠, 잘해놨으니까.]
서울 양천구에 있는 신월 빗물터널입니다.
지난 2020년, 공사비 1천381억 원으로 7년 만에 준공됐는데, 지하 40m 밑에서 최대 32만 톤의 물을 받아 안양천으로 빼내고 있습니다.
도심 '물그릇' 역할로 비 피해를 줄이는 이런 '대심도 터널'은 국내에 이곳 딱 하나입니다.
서울시는 2년 전, 상습 침수 지역에 6개를 더 짓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공사비 문제로 아직 첫 삽도 못 떴습니다.
이르면 올 연말에나 강남역, 도림천, 광화문 세 곳부터 우선 착공합니다.
완공은 그로부터 4년 정도 뒤.
그러니 이 빗물터널들이 본격 가동될 오는 2029년 여름까진 마음 놓기 어렵단 얘기입니다.
당장 해당 지역의 건물 저층에 입주한 상인들은 가게 입구에 물막이판을 설치하는 등 자체 대비책에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장범규/서울 강남역 인근 상인 : 웬만한 건물들의 발전기 자체가 지하에 있어요. 지하가 잠겨버리면 자체에 전기가 다 안 되기 때문에. 일단은 뭐 하늘에 맡겨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신용식 기자>
제가 서 있는 이곳은 서울대공원입니다.
60년 전, 농사에 쓰기 위해 만들어졌던 이곳 저수지는 앞으로 많은 비를 저장하는 물그릇 역할을 하게 됩니다.
주변 농경지가 사라져 마땅한 쓰임이 없던 이 저수지엔 지난달, 수문이 새로 생겼습니다.
신형 수문으로 꼬박 일주일 걸리던 방류 시간을 반나절로 확 줄였는데, 평소 저수지를 비워뒀다가 폭우 때 빗물을 모아서 적절히 방류할 수 있게 바꾼 겁니다.
[송준섭/서울대공원 시설과 : (이 저수지는) 양재천, 탄천 한강으로 흐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재천, 탄천의 수위를 낮춰주는 효과가 있고요.]
빗물터널처럼 물그릇 역할을 맡길 수 있는 서울 시내 저수지나 호수는 모두 7곳.
저장할 수 있는 빗물이 46만 톤으로 추산되는데, 가동 중인 신월 빗물터널의 32만 톤보다도 많은 겁니다.
도심 건물 옥상을 물그릇으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도 있습니다.
이른바 '10cm 프로젝트'.
서울시가 개발한 이 '배수홈통'을 달아주면, 시간당 72mm 이상 극한호우 때도 최대 10cm 높이까지 빗물을 저장할 수 있습니다.
[이현구/서울시 치수정보기술팀장 : 건축물의 하중 부담이 있기 때문에 (저장한 빗물 높이가) 최대 10cm를 넘지 않도록 하고.]
서울시 조사 결과, 상습 침수 지역인 강남 일대의 경우, 약 4천800개 건물의 옥상에 설치 가능하고, 11만 톤의 물을 임시 저장하는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강남 지역 설치에 드는 예산은 10억 원 이내로 추산됩니다.
실효성을 더 따져봐야 하고, 건물주들 동의도 필요하지만, 빗물터널 추가 완공까지, 4년 공백기의 보완책으로 주목됩니다.
[이현구/서울시 치수정보기술팀장 : 대심도 터널이 완공되기 전까지 침수 피해를 혹시라도 좀 낮출 수 있지 않나.]
기후위기 탓에 전례를 찾기 어려운 비 피해도 갈수록 늘고 있는 현실에서, 가용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대비책 마련이 시급해 보입니다.
(영상취재 : 최준식·공진구, 영상편집 : 오영택·원형희, 디자인 : 이준호·장예은)
이현정 기자 aa@sbs.co.kr
신용식 기자 dinosi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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