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보디가드’ 정치

유정인 기자 2024. 7. 15.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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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더 된 일이다. 첫 정치부 출근을 앞두고 막막해할 때 선배가 말했다. “사람의 가장 저열한 욕망부터 가장 고귀한 욕망까지 볼 수 있는 곳이야.” 멋진 인수인계라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어렵다. 아무래도 타인의 근원적 욕망 같은 건 잘 안 보인다. 서로의 욕망을 자극하고 이를 지렛대 삼아 일을 꾀하는 동네라는 것 정도를 겨우 알겠다.

결국 눈에 보이는 말과 행동을 파고들 수밖에 없다. 정치 기사에는 종종 ‘명분 삼는다’는 표현이 나온다. ‘진짜’ 욕망은 감춘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 명분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다. 명분을 고민하고 깎아나가는 과정에서 정치인이 품을 수 있는 고귀한 욕망, 희생을 감수하고 지켜낼 무엇이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정치인들이 자기 발에 스스로 채울 족쇄를 정성껏 담금질하는 장면을 떠올려보고 있다.

22대 국회에선 유독 누군가를 지키는 데서 정치 행위의 명분을 찾는 이들이 많아 보인다. 주권자들 모르게 단체로 “‘○○○을 지켜라’에 들어갈 이름은?”이라는 문제라도 받은 것 같다.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들은 “거대 야당의 탄핵으로부터 대통령을 지키겠다”(원희룡 후보), “‘우리’ 대통령이다. 반드시 지켜야 한다”(나경원 후보)고 한다. 집중 공격을 받는 한동훈 후보가 “특정인을 지키려 정치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대통령 탄핵을 반드시 막겠다”고 강조하는 데선 다르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후보들은 어떤가. “이재명을 지키는 일이 민주당을 지키는 일”(강선우 후보)이라며 “이재명을 지킬 수 있는 강력한 수석 변호인”(전현희 후보)을 자처한다.

두 사람을 ‘지키는’ 일이 동일선상에 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한쪽은 헌법의 ‘수호자’이자 국정운영의 최고책임자로서 국민의 죽음에 대한 책임 여부를 밝혀야 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지키겠다’는 말 앞에 선명하게 누군가의 이름이 박히는 상황이 민망하기는 마찬가지다. 권력자를 지키려고 나선 것처럼 보이는 정치는 시민 다수의 마음을 움직이기 어렵다.

‘보디가드’ 정치의 폐해는 뚜렷하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의인화해 ‘산증인’ 대우를 해주고 싶다. 누군가를 지키는 것이 기준점으로 부각되면 무엇을 위한 수호인지는 잊힌다. 그러니 약자와 동행하겠다는 당에서 ‘외국인 최저임금은 깎겠다’(나 후보)는 차별적 정책이 언급되고, 헌법 수호의 책무를 저버린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개인적으로 미안한 마음”(한 후보)이라는 사과가 나오는 것이다. 진짜 따져봐야 할 것들도 묻힌다. 김건희 여사 문자로 논쟁하려면 주자들이 ‘그때는 (누구 때문이든) 무산됐지만 지금이라도 김 여사의 책임 있는 답변과 사과를 요구하겠다’는 입장은 대전제로 공표해야 한다. 전대 뒤 ‘포옹’으로 ‘댓글팀’ 등 불거진 의혹을 덮지 않겠다는 약속도 필요하다. 이런 논의가 빠진 지금의 논쟁은 어떻게 봐도 ‘고귀한 욕망’의 발로는 아니어 보인다.

허수경 시인은 “젊은 시인들과 젊은 노점상들과 젊은 노동자들에게 아부하는 사회”를 소망한다고 했다. 이런 소망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누군가의 이름보다는 ‘더 나은 명분’ ‘더 나은 욕망’을 말하는 정치인이 필요하다. 주권자는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다.

유정인 정치부 차장

유정인 정치부 차장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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