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세이] 에어컨의 대명사에 남긴 이름

송성수 부산대 교양교육원 교수·융합학부 과학기술혁신전공 겸직 2024. 7.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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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수 부산대 교양교육원 교수·융합학부 과학기술혁신전공 겸직

해마다 평균 최고기온이 경신되고 있다. 올해 여름은 가장 뜨거운 여름이자 가장 시원한 여름으로 전망되고 있다. 과거로부터 따지면 가장 뜨겁고, 미래를 고려하면 가장 시원하다고 한다. 푹푹 찌는 여름을 에어컨 없이 지낸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덕분에 윌리스 캐리어(Willis H. Carrier, 1876∼1950)는 여름만 되면 찬양받는 인물이 됐다. 캐리어를 세계 4대 성인(聖人)의 반열에 올려야 한다거나 캐리어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에어컨은 공기조화기로 번역되는 에어컨디셔너(air conditioner)의 줄임말이다. 기본적인 기능에는 온도의 조절, 습도의 조절, 공기의 순환과 환기, 공기의 정화 등이 있다. 다른 기능들은 이전부터 알려져 왔지만 습도조절의 기능은 1902년에 캐리어가 처음으로 추가했다. ‘에어컨’이란 용어는 1906년에 직물 기술자인 크래머가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캐리어는 1901년에 기계공학 전공으로 코넬 대학교를 졸업한 후 버펄로 제작사에 입사했다. 회사는 난방기와 송풍기를 제작하고 있었으며, 주 품목은 열풍 히터였다. 1902년에 버펄로 제작사는 한 출판사로부터 습기를 제거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해변에서 습기가 가득한 바람이 불어와 인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캐리어는 열풍 히터를 거꾸로 이용해 보자는 역발상의 해결책을 내놓았다. 뜨거운 수증기 대신 차가운 물로 코일 안을 채워 공기를 순환시키면 출판사 내부의 습기가 차가워진 코일에 맺혀 물방울로 변할 것이었다. 그는 1902년 7월 17일에 냉각코일시스템에 관한 설계도를 완성했고, 이를 바탕으로 버펄로 제작사는 세계 최초의 에어컨을 제작했다.

곧이어 캐리어는 안개가 자욱이 껴 있던 피츠버그역의 플랫폼에서 빛나는 통찰력을 얻었다. 그는 냉매를 스프레이처럼 분사하면 플랫폼과 같이 안개가 자욱해져서 온도가 낮아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캐리어는 1년 동안의 노력 끝에 분무형 에어컨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고, 1906년 1월 2일에 ‘공기취급 장치’로 특허를 받았다.

캐리어는 1915년에 ‘캐리어 엔지니어링’이라는 독립적인 회사를 차렸다. 그는 1922년에 원심형 냉장시스템을 개발했으며, 에어컨은 일반인들이 모이는 공간에도 적용될 수 있었다. 캐리어 엔지니어링은 허드슨 백화점, 리볼리 극장, 미 의회, 백악관 등에 에어컨을 설치했다. 에어컨이 설치된 건물의 가장 큰 홍보 문구는 ‘냉방 중’이었고,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에어컨 = 캐리어’라는 이미지가 심어졌다.

1930년에 캐리어 엔지니어링은 캐리어사로 거듭나면서 ‘세계로 나아가는 날씨 메이커’를 슬로건으로 채택했다. 캐리어 사는 1939년 뉴욕 박람회에서 ‘내일의 이글루’라는 전시관을 마련해 가정용 에어컨을 개척하고자 했다. 그러나 크기를 작게 하고 소음을 줄이며 가격을 낮춰야 하는 여러 과제가 산적해 있었다.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캐리어는 후일을 기약해야 했다. 급기야 캐리어는 심장병으로 3년 동안 투병하다가 1950년에 유명을 달리했다.

가정용 에어컨의 효시인 창문형 에어컨은 1948년에 처음 시판됐다. 1955년에는 건설업자 레빗이 주택의 기본사양 중 하나로 에어컨을 채택하면서 에어컨의 보급 속도가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1980년에는 모터의 회전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인버터 에어컨이 출시돼 에어컨의 대중화를 촉진했다.


에어컨 덕분에 사람들은 쾌적한 여름을 나고 있지만, 에어컨이 유발하는 환경 문제도 심각하다. 에어컨은 실내 공간을 냉각시키는 대가로 뜨거운 공기를 외부로 방출한다. 또한 에어컨은 엄청난 전기를 사용하는데,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높으면 그만큼 많은 양의 온실가스가 발생한다. 게다가 현재 사용 중인 냉매 자체가 강력한 온실가스에 해당한다. 더우니까 에어컨을 틀게 되지만 그 결과 지구는 더욱 더워지는 셈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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