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발달로 잃는 건…진심을 담아 일하고 뿌듯해하는 ‘인간’[인스피아]
콜센터 상담사 등 기술 발달로 설 자리 잃어가지만…실직 문제는 개인 책임으로 여겨지며 과소평가돼
생계이자, 보람이자, 자아실현인 ‘노동’…AI가 모든 걸 대체할 것이란 전망 속 불안에만 떨 순 없어
과도한 업무에 진절머리 내면서도 ‘성취감’ 느끼는 현대인들…일의 무엇을 대체할지 등 고찰 필요
독자님도 ‘미래에 인간의 노동은 정말로 인공지능(AI)과 로봇으로 대체될까?’라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보셨나요? 일론 머스크는 지난 5월 한 콘퍼런스에서 “(미래에) 아마 우리 중 누구도 직업을 갖지 못할 것”이라며 AI와 로봇이 모든 사람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죠.
그간 이런 전망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인간은 AI에 대체될 수 없다!”고 반박해왔습니다. 결국 1%의 차이를 만드는 ‘탁월성’은 인간에게만 있다는 차원에선데요. 다만 저는 이런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조금은 의아해지기도 했습니다. 왜 “대체될 것이다”라는 말에 “대체되지 않을 것이다”로만 반박하는지에 대해서요.
그 대신 저는 한 번쯤 다른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미래에 인간의 일은 대체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누구이며, 이를 통해 이익을 얻는 게 누구인가, 라는 질문이요. 고대 로마 정치가 키케로는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선 “쿠이 보노”(Cui bono·누가 이득을 보는가)라고 물어야 한다고 했죠. 이어 저는 반대로 손해를 보는 것은 누구인지, 그리고 그 손해는 구체적으로 무엇일지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주변의 친숙한 키오스크를 예로 들어볼 수 있을 텐데요. 우선, ‘고용주’ 입장에선 이익입니다. 주문을 받는 사람을 줄여 인건비를 크게 절감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손해도 발생합니다. ‘노동자’에게 자동화는 때로 업무 강도를 높이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최근 드라이브스루 매장에 AI 키오스크를 도입했다 철회한 맥도널드에선 아이스크림에 베이컨(?)이 추가되고, 막대한 양의 너깃이 주문되는 등 깜짝 놀랄 만한 소동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 뒤처리를 하는 것은 인간 직원이죠. 일자리가 계속 줄면서 늘어나는 ‘실직자’에게도 키오스크 도입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실직자의 증가는 결국 사회적 손실로도 이어집니다. 마지막으로 키오스크는 이를 능숙하게 쓰지 못하는 ‘소비자’를 주눅 들게 하고 번거롭게 할 수 있습니다.
만약 ‘AI가 모든 걸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에 깜짝 놀라고 불안해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레터에서 저는 그간 ‘대체될 것이냐 아니냐’의 차원에서 얘기해왔던 걸 두고, 대신 ‘우리는 무엇을 잃어왔으며, 또 잃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해찰해보고자 합니다.
누가 손해 보는가?: #노동자
우리에게 일은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을 통해 밥을 벌고, 자존감을 얻고 자아를 실현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누군가가 일자리를 잃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런 얘기가 새삼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그간 실직으로 인한 ‘손해’는 개인의 책임으로만 여겨지고 또 과소평가돼 왔습니다.
르포작가 한승태가 쓴 <어떤 동사의 멸종>의 부제는 ‘사라지는 직업들의 비망록’인데요. 미래 AI, 기계의 대체 가능성이 높은 4가지 직종을 저자가 직접 일을 하며 체험해본 내용을 적었습니다. 콜센터 상담원, 물류센터 까대기(대형 창고, 항구 등에서 무거운 짐을 옮기는 일), 주방 일, 미화노동 등 4개 직업입니다.
저는 책을 읽으며, 일에 담긴 2가지 중요한 가치를 새삼 곰곰 떠올려보게 되었습니다. 경제적 생존과 정신적 만족입니다.
우선 우리는 일을 통해 먹고살 수 있습니다. 콜센터 직원들은 수많은 ‘진상 손님’들의 모욕을 듣고도 삭여야만 합니다. 관리자는 분초 단위로 일거수일투족을 체크하기 때문에 화장실조차 마음대로 못 다녀올 정도죠. 저자는 콜센터에서 겪은 비통한 경험을 길게 서술한 뒤 “이런 지긋지긋한 직업이라면 차라리 없어지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화를 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챗봇 서비스로 ‘대체된’ 대형 은행 콜센터 직원 200명의 해고 소식과 이에 저항하는 시위 뉴스를 읽고서 생각을 바꿉니다. 저자는 “없어져도 상관없는 것에, 없어지는 게 오히려 나을 수도 있는 무언가 때문에, 사람들이 영하의 길거리에서 그것을 돌려달라고 소리치고 있을 리 없었다”고 말하죠.
일부 언론에서 ‘수백명이 대체되어 해고됐다는 소식’을 마치 옷에 붙은 보풀을 떼듯 전하곤 하지만, 기실 누군가들의 삶이 유지 불가능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AI 발전에 따라 사라지는 일자리만큼 새로운 일이 생겨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모두가 전혀 다른 분야의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어 정신적 만족과 관련해섭니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점은, 등장하는 노동자들이 단순히 ‘임금’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성취감’ ‘보람’을 위해서도 일에 매진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특히 저자가 한 물류센터에서 일을 하며 만난 50대 남성은 객관적으로 “우울증이 생기고도 남”을 굉장히 불행한 환경(건강 악화, 나이, 망한 사업)에 처해 있지만, 땀을 흠뻑 흘리고 나서 새벽에 나설 때 해 뜨는 모습을 보며 감격합니다. 이를 두고 저자는 ‘석구 형님의 아침 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이처럼 어떤 종류의 일자리는, 존재하는 것 그 자체로도 개인에게 재기의 발판이 될 수 있습니다.
빈민층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에서 조지 오웰은, 당시 극심했던 런던의 부랑자 문제를 가리켜 문제 해결의 핵심은 빈민 구휼이 아니라 한 사람이 먹고살기에 충분하며, 정신적 자립감과 자존감을 주는 일자리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필요한 건 그(부랑자)를 극빈하지 않게 하는 일인데 이것은 오직 그에게 일자리를 구해주는 것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고, 그것도 일을 위한 일이 아니라 경제적 이익을 누릴 수 있는 일을 주는 것이다.”
책 속 사람들은 일을 하면서 성취감과 보람, 만족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저자 역시 마찬가진데요. 빌딩 유리창을 청소할 때 “그렇게 힘들었기 때문에 청소의 쾌감이 유리칼을 쥔 두 손에 펄떡였다”며 “아저씨들이 그냥 내버려두라고 해도 내가 먼저 다시 닦겠다고 나서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탁월함’과는 별개로, 스스로 바닥부터 쌓고 또 갈고닦아온 작은 기술에 뿌듯해하고 자신이 일구어낸 작은 성과를 자랑스러워합니다. 거기서 살아갈 힘과 의지를 얻기도 합니다. 이런 노동의 뿌듯함은 비단 ‘노동자’에게만 이득이 될 리가 없습니다.
누가 손해 보는가?: #소비자
이어 소비자의 차원에서도 생각해봅니다. 저자는 ‘숙련을 통해 몸에 새긴 요령’을 자세하게 묘사하는데요. 예를 들어 유리를 닦을 때 어디서 유리를 닦느냐에 따라 비눗물 묻히는 양이나 칼질하는 방식을 섬세하게 바꾸는 요령 등입니다. 소비자 등 제3자 입장에서도 확실히 이처럼 숙련되고 능숙한 직원이 있는 건물에서는 쾌적하고 깨끗한 환경에서 머무를 수 있겠죠.
이런 숙련 노동은 비단 ‘주어진 최소한의 일’을 잘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사려 깊게 이용자들의 경험을 살피죠. 비록 돈 때문에 일을 하더라도 주어진 일 이상의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 우리를 단순히 ‘소비자’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 존중해주는 이들에게 우리는 사랑과 존경을 느끼곤 합니다. 그런데 과연 인간을 대체한 AI를 통해 우리가 사려 깊은 헌신과 배려를 느낄 수 있을까요?
어쩌면, 기계의 도입은 그나마 아주 조금 남은 소비자를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지대를 모조리 지워버리는 처사일 수 있습니다. 저자는 마트 콜센터 업무를 할 당시 마트에서 카드 할인 이벤트를 하며 할인 조건을 애매하게 제시하는 바람에 콜센터에 불만 전화가 빗발쳤던 경험을 소개하는데요. 이때 명백히 잘못은 회사에 있었지만 불만을 막는 건 오직 상담사의 역할이었습니다. “상담사는 땜장이다. 융통성 없는 업무 프로세스와 엉성한 홈페이지 시스템의 틈새를 상담사의 사과로 덕지덕지 발라 메꾼다. 그래서 대대적인 수리 없이 그냥저냥 굴러가게 만든다. (중략) 시스템상의 수많은 허점을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는 최종적으로 콜센터에서 치른다.”
책을 읽다보면 콜센터에 항의 전화를 하는 ‘진상 고객’들의 말이 틀리지만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올바른 정보와 안내를 받지 못해 답답해하고 회사에 대한 분노를 상담사들에게 표출할 뿐입니다. 정당한 불만을 제기하는 고객들도 있지만, 회사의 방침은 절대 보상을 하지 않고 적당히 화를 무마하는 방향일 뿐입니다. 이는 소비자를 한 명의 ‘인간’으로 보는 태도와는 거리가 멀죠.
이런 상황에서 AI로 바꾼다고 소비자에게 더 좋은 방향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기업과 소비자 간의 창구를 ‘더 단단한 벽’으로 만들어 사람들을 시무룩하게 만들고 제풀에 지쳐 쓰러지게 하는 것이죠.
대부분의 기업은 이윤 창출 및 효율화를 위해 AI를 도입하지, 본질적으로 고객을 인간으로 존중하는 서비스나 쓸데없는 재미를 위해서 막대한 돈을 들여 AI를 도입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일의 무엇이 대체될까?
마지막으로 저는, ‘어떤 일’이 대체될 것이냐보다는 ‘일의 어떤 부분이 대체될 것인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라져도 될지에 대해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김혜진의 소설 <9번의 일>은 26년 차 전기수리기술자(주인공)가 저성과자라는 이유로 좌천에 좌천을 거듭하며 비인간적인 ‘일’로 밀려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요.
소설 속 주인공은 좌천되어 인적 드문 공장지대에서 생전 처음 영업 담당으로 근무하게 되죠. 하지만 주인공은 좌절하지 않고, 어떻게든 일을 잘 해내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돈이 되지 않아도 쉬지 않고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택배 상자를 나르는 것을 거들기도 했죠.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건수’를 하나 발견합니다. 인근 공단의 외국인 노동자 숙소 와이파이가 끊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건데요. 그는 비싼 인터넷 상품을 강매하는 대신, 20여년간 갈고닦아온 수리기사로서의 노하우로 간단한 작업만으로 통신설비를 고쳐줍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그에게 “좋은 사람, 고마운 사람”이라며 아주 고마워했죠.
하지만 문제는 이런 ‘일’이 회사 입장에서는 수익이 되지 않고, 완전히 괜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그는 상관에게 호되게 호통을 들어야 했습니다.
“‘뭐 하러 그런 일까지 해주시냐고요. (중략) 업무 이외의 일은 하지 마시라고요.’ (중략) 그런 눈에 띄지도 않는 사소한 호의나 친절을 대단히 잘못된 것처럼 말했으므로 그는 점점 더 당혹스러워졌다.”
주인공이 일을 ‘잘’하려면, 공짜로 고쳐주는 대신 최대한 비싼 상품에 가입시켰어야겠죠. 주기적으로 고장이 나면 금상첨화겠고요. 여기서 미래에 AI가 출장 서비스를 ‘대체할 수 있느냐’는 둘째 치고, AI가 저런 일을 하도록 학습·디자인될 것인가의 문제가 있습니다.
맺음말
오늘 레터에서 살펴보았듯, 많은 사람은 마음을 담아 일하고 싶어 하고 마음을 담은 서비스를 받고 싶어 합니다. 현실의 노동은 대체로 진절머리 나는 일이지만, 우리 사회가 누군가의 노동과 나의 노동으로 촘촘하게 채워져 있는 한(버스를 타고 가는 것도, 택배를 받는 것도,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읽는 것도, 맛있는 빵을 사 먹는 것도 누군가의 노동과 맞닥뜨리는 것입니다) 이 노동의 조각들이 불만족스러우면, 결국 우리 사회는 모두가 화나는 일들로 잔뜩 채워지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앞으로 살아가며 마주칠 수많은 사람이 저를 주눅 들게 하고 무시하는 대신,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진심을 담아 대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어 그런 사람이 충분히 먹고살 수 있을 만큼, 자신의 일에 보람을 느낄 만한 임금과 대우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의 일 역시 가능하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무엇이 사람들을 이렇게 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요? 이게 기술로 해결이 가능한 종류의 문제일까요? 오히려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어오지 않았을까요? 이런 질문들은 아주 엉뚱한 질문일까요?
독자분들께서도 떠오르는 각자의 질문들로 나름의 해찰을 해보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여하튼 이런 이야기는 ‘AI에 의해 일이 몽땅 대체될 것인가’라는 위협적인 질문만으로는 완두콩만큼도 담지 못할 이야깃거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생성형 AI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이 기술이 어떻게 발전되고 적용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어떤 AI 기술의 경로도 불가피한 것은 없다.” -대런 아세모글루(경제학자·MIT 교수)
이 글은 인문교양 뉴스레터 <인스피아>에 실린 내용을 수정한 것입니다. 더 많은 글을 보고 싶으시다면 오른쪽 QR코드를 촬영하거나, 포털에 ‘인스피아’를 검색해서 구독해주세요.
김지원 기자 deepdeep@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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