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대통령님, 연금 개혁은요?”

이노성 기자 2024. 7. 15.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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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 모수개혁 접근, 정부 여당 거부로 물거품
올해 합의 처리도 불투명…미래세대에 죄지을 건가

윤석열 대통령은 인기가 없다. 국정 지지율은 잘해야 30%대다. 영부인은 늘 구설에 오른다. ‘명품백 수수’ ‘주가조작’ 의혹도 모자라 최근엔 ‘문자 폭탄’으로 집권당 전당대회를 초토화했다. 윤 대통령이 역사의 평가를 바꿀 기회는 아직 있다. 인기 없는 정책이라도 미래를 위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회원들이 지난 5월 국회에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정록 기자


10년 넘게 한 발도 못 나간 국민연금 개혁은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과제다. 교육·노동·의료 개혁은 이해당사자를 다 만족시키기 어려운 반면 연금 개혁은 여야 공감대가 형성돼 21대 국회 통과 기대가 컸다. 두 달 전 ‘다 된 밥’에 재 뿌린 건 정부 여당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2대 국회 추가 논의”를 요구하자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구조·모수개혁을 동시에 하지 않으면 쇼”라고 맞장구쳤다. 1년 가까이 진행된 국회 공론화는 허사가 됐다.

연금 개혁 방치는 응급 수술환자를 뺑뺑이 돌리는 것과 다름없다. 2055년이면 종잣돈이 모두 바닥 난다. 불과 30년 앞이다. 지금 30대는 못 받을 수도 있다. “평생 낸 보험료 날리거나 다 못 받는다”는 청년 불안을 근거 없는 괴담으로 치부할 수 없다.

연금 개혁은 모수개혁과 구조개혁으로 나뉜다. 모수개혁은 내는 돈(보험요율)과 받는 돈인 소득대체율의 숫자를 고치는 것이다. 21대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1998년부터 26년째 동결된 보험요율을 9%에서 13%로 4%포인트 인상하는데 합의했다. 소득대체율에선 이견이 있었다. 여당은 40% 현상유지를 주장하다 44%까지 양보했다. 50%를 고집하던 야당도 45%까지 낮췄다. 간격이 1%포인트로 좁혀지자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여당 안을 전격 수용했다. 정부 여당의 급제동은 뜻밖이었다.

21대 국회 주호영 연금개혁특별위원장(가운데)과 여야 간사인 국민의힘 유경준(오른쪽),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이 지난 5월 국회에서 연금개혁특별위원회 활동을 마치고 기자회견 하는 모습. 연합뉴스


구조개혁은 국민연금·기초연금과 공무원연금 같은 직역별 연금을 통합하는 것이다. 모수개혁보다 이해관계가 복잡해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 국회가 모수개혁부터 먼저 하자고 결론낸 것도 보험요율을 인상해놔야 구조개혁을 위한 여건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여당이 이걸 몰랐을까.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은 “갑자기 그게(구조개혁이) 중요해진다? 그러면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기본적 정당 기능을 회복 못했구나’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아쉬워했다. 국민의힘이 야당 제안을 거절한 배경에 수직적 당정관계가 있다는 뉘앙스다.

정부의 연금 개혁 의지가 강했던 것도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4대 변수(보험요율·소득대체율·첫지급 연령·연기금 수익률)를 조합한 24개 시나리오를 국회에 보냈다. 보험요율과 소득대체율 숫자는 명시하지 않은 ‘맹탕’이었다. 국회에 4개 안을 보낸 문재인 정부는 양반이었다. 정부는 또 연금 개혁 숙의 과정에서 ‘더 내고 더 받자’는 의견이 우세하자 “미래세대 부담만 가중시킨다”고 딴지 걸었다. “핑계만 댄다”는 시민사회 비판에도 대안은 내놓지 못했다.

정부 여당은 “22대 첫 정기국회(9월)에서 연금 개혁을 최우선 추진하겠다”고 한 약속했다. 가능할까. 21대 연금 개혁 여야 간사인 유경준(국민의힘)·김성주(민주당) 의원은 낙선했다. 22대 국회에서 발의된 연금 개혁 법률안 3건은 모두 야당 의원이 냈다. 여당은 전당대회만 쳐다보느라 연금개혁위원회 재가동 움직임조차 없다.

연금 개혁은 저출생·고령화 복합위기로 시급성이 더 커졌다. 국내 65세 이상 인구는 최근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전체 주민등록인구의 19.51%에 달한다. 내년 초고령사회(20%) 진입이 확실하다. 연금 낼 사람은 줄어드는데 받을 사람이 늘어나면 결론은 파산뿐이다.

연금이 바닥나면 빈곤 방어선도 무너진다. 2020년 노인 빈곤율은 40.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4.2%보다 3배 가까이 높다. 공적연금이 소멸하면 ‘폐지 줍는 노인’ 증가는 당연하다. 여야가 모수개혁만 합의했어도 보험요율은 26년 만에 인상되고 70→60→40%로 낮아지던 소득대체율이 최초로 오르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연금 개혁은 저항이 만만찮다. 더 내고 덜 받으라는 데 좋아할 사람 없다. 그래도 역대 정권은 꾸준히 개혁을 추진했다. 1차 연금 개혁을 했던 김대중 정부는 1998년 소득대체율을 60%로 낮추고 연금 받는 나이를 60세에서 65세로 늦춰 연금이 바닥나는 시기를 늦췄다. 노무현 정부는 2차 개혁을 통해 보험요율은 유지하고 소득대체율만 2028년까지 40%로 단계적으로 하향했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공무원연금법을 개정(연금액 삭감)했다.


윤석열 정부는 연금 개혁의 호기를 만났다. 우선 야당이 찬성한다. 올해는 전국 단위 선거가 없어 국가적 과제를 실현하기에도 적기다. 당장 내년 하반기부터 잠룡들의 대선 레이스가 펼쳐진다. 이듬해 6월에는 지방선거가 열린다. 지금은 전진할 때다. 우물쭈물하다 미래세대에 또 죄짓는다면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까. 두렵지 않은가.

이노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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