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자가 커뮤니티 비즈니스에서 배운 것
일하는 게 적성에 안 맞아 파이어족(20~30대에 열심히 돈을 모아 자립하는 조기은퇴자)이 되기로 결심한 29살 직장인은, 대표의 권유로 들어간 스타트업에 다니며 생각이 바뀌었다. 일하는 건 되게 재밌고, 이걸 계속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그렇게 6년 동안 유료 독서모임 ‘트레바리’에서 일하고, 최근 퇴사한 이육헌을 만났다. 그가 커뮤니티 비즈니스에서 배운 건 무엇일까?
“모두가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거든요. 근데 정작 나한테 좋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또 좋은 사람이 커뮤니티에서 뭔가를 얻어 갈 수 있어야 하는데,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한테 뭔가를 내주는 구조가 되면, 지속가능하지 않은 것 같아요.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끼리만 만나도 뭐가 잘 안 되고요. 이 문제를 어떻게 현명하게 풀 수 있을까? 그게 앞으로의 과제고, 그 판을 깔아주는 게 필요하겠죠?”
트레바리 직원이기 전에 그는 독서모임 멤버였다. “그땐 스스로를 정체화하기 어려워 회사와 브랜드에 자주 기댔던 것 같아요. 나 삼성전자 마케터야. 나 프라이탁 가방 메는 사람이야. 하지만 모임을 하면서 내가 실은 이미 여러 커뮤니티(서울시, 대한민국 등)에 소속돼 있구나 하고 느꼈어요. 나 서울 시민이구나, 대한민국 국민이었지.”
소비자로서 어떤 브랜드를 쓰는 건 나만의 경험이지만,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 ‘적’이 아닌 ‘책’으로 만나 가까워지는 경험은 개인주의자였던 그에게 공동체 감각을 깨워줬다. 하지만 직원이 되자 독서모임이 점점 재미없어졌다.
“저도 모르게 모든 사람을 판단하기 시작했어요. 저 파트너는 잘하고 있나? 이 클럽은 몇 점짜리지? 그게 제 일이다보니 어쩔 수 없지만 마음이 힘들더라고요. 그러다 오랜만에 클럽에 참여했어요. 최소 10명이 모여야 개설되는데 9명이길래 별생각 없이 신청했죠. 그런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때 느꼈어요. 커뮤니티는 열린 마음으로 참여할 때 가장 많은 걸 얻어 가는구나.”
제품과 다르게 커뮤니티는 살아 있는 생명과도 같아서, 잘 자라면 다행이지만 못 자라면 보살펴야 했고, 그러다 살아나기도 하지만 죽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니 완벽히 통제하기보단 알아서 잘 자랄 수 있게 도우며 그때그때 다른 해결책을 제시하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고성장기도 겪고 코로나19로 부침도 겪다가 흑자 전환에 성공했죠. 한숨 돌리다보니 문득 ‘내가 원하는 건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나한테 전력을 다해서 일할 시간이 엄청 많이 남은 것 같지는 않은데 이대로 쭉 가는 게 맞을까? 결국은 자신을 내던진 사람이 빨리 성장하는 것 같은데, 어쩌면 내가 원하는 것도 그런 게 아닐까. 꿈은 창업이지만 모르죠. 막상 해보니 창업자의 그릇은 아니었구나 깨달을 수도 있고요. 외로운 길이겠지만 창업한 모든 사람이 그 과정을 돌파한 거니까, 저도 돌파한다면 좀더 오랫동안 내 일이라는 걸 할 수 있지 않을까…, 일단 3개월 동안 아무 의사 결정을 하지 않는 게 목표예요. 가만히 있었을 때 어떤 생각은 가라앉지만, 어떤 생각은 여전히 둥둥 떠다니겠죠? 그것들을 좀 지켜보고 싶어요.”
자신이 다닌 회사를 사랑하는 육헌님이 참 좋아 보였다. 육헌님과 트레바리팀, 그리고 서로를 빛내주며 세상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모든 사람을 응원한다.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궁금한 건 당신> 저자
이육헌의 플레이리스트
❶정우성의 더파크
https://youtube.com/@thepark_woosung?si=CSm6FgE0IzJUFvyd
많은 사람이 더 큰 차와 더 넓은 집을 꿈꾼다.(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시간이 소중한 우리를 위한 취향 공동체 ‘더파크’는 다양한 취향과 가치관에 걸맞은 물건을 세심한 언어로 소개하고 그런 취향을 응원한다. 나를 알고 내게 맞는 물건을 들이는 것이 진정 귀하고 소중한 일이 아닐까.
❷SHW 생활인의 시계
https://youtube.com/@shw?si=tEuSvcDcDSVXm-sd
대량생산과 자동화·디지털 물결에도 하이엔드 시계 산업은 성장하고 있다. 꾸준히 이어져온 전통과 기술력, 그리고 품질은 공고한 브랜드를 만들고 사람들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것 같다. 이 채널은 뛰어난 영상 만듦새부터 시계라는 오브제를 대하는 철학에 이르기까지, 채널이 다루는 시계를 닮았다. 본받고 싶은 구석이 많다.
❸최성운의 사고실험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B7PYmHaa-5ogDTokhuc0LttJdxTDZr1I
삶으로 행동으로 무언가를 증명해낸 인물들이 나온다. 최성운 피디는 출연자가 그만의 이야기를 담담히 꺼낼 수 있도록 공부하고 질문한다. 평범하다면 평범한 포맷 위에 얹혀진 독창적인 콘텐츠의 조화가 아름답다.
*남플리, 남들의 플레이리스트: 김수진 컬처디렉터와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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