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사장 “알바 쓰기 겁나, 아내와 교대 근무”…고금리에 내수 초토화

이희조 기자(love@mk.co.kr), 김시균 기자(sigyun38@mk.co.kr), 김규식 기자(dorabono@mk.co.kr), 한재범 기자(jbhan@mk.co.kr) 2024. 7. 15.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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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국세청 국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 신고를 한 사업자(개인·법인)는 98만6487명으로 전년(86만7292명) 대비 13.7% 증가했다. 증가폭은 11만 9195명으로 2006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최대 폭을 기록했다. 이날 서울 서대문구 한 대학가 앞 폐업 점포에 임대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24.7.15 [한주형 기자]
서울 은평구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이모씨(56)는 투잡을 뛰면서 생계를 꾸렸지만 매출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자 결국 가게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이씨는 “배달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가게를 운영했는데 이제는 배달 라이더를 전업으로 해야 할 것 같다”면서 “치킨집을 열면서 생긴 빚을 갚느라 당분간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 성남시에서 편의점을 운영 중인 60대 장모씨는 아내와 둘이 번갈아가며 장시간 근무를 하고 있다. 손님이 크게 줄어 각종 이자 갚기에도 벅찬 장씨에게 아르바이트생 고용까지 하는 것은 사치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장씨는 “경기가 어려워 매출도 늘어나지 않는 마당에 쉴 시간도 없어 삶의 질이 뚝 떨어진 상태”라며 “최저임금이 내년에 1만원대로 오르는 것이 결정되면서 심리적 부담은 더 커졌다”고 토로했다.

폐업을 고려하거나 실행에 옮기는 자영업자가 크게 늘어난 배경에는 고금리로 인한 내수 부진이 자리한다. 서민들이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아 매출이 부진한데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한계 상황에 내몰린 사업주들이 급증했다. 가게 문을 닫은 이후에도 이들의 형편은 녹록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이와 달리 정부는 경기진단에 꾸준히 ‘내수 회복 조짐’을 포함시키고 있다. 이에 정부가 현장과 괴리된 시각을 유지하며 지나치게 낙관적인 진단을 내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신고를 한 사업자(98만6487명)의 49%에 해당하는 48만2183명은 ‘사업 부진’을 폐업 사유로 꼽았다. 사업 부진으로 폐업한 사람은 전년(40만6225명)보다 7만5958명 늘었다. 역대 최대 증가 폭이다. 양도·양수(4만369명), 법인 전환(4685명)을 이유로 폐업을 결정한 이들도 있었지만, 사업 부진의 비중이 가장 컸다.

지난해 폐업은 소매업(27만6535명)에서 가장 많았고, 서비스업(21만7821명)과 음식업(15만8279명)이 뒤를 이었다. 모두 내수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분야라는 점을 고려하면 내수 부진이 자영업자의 폐업에 큰 영향을 줬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코로나19로 내수가 악화한 데 더해 고금리·고물가·고환율로 인한 악영향이 더해진 점이 폐업 급증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정부는 수출 실적이 좋아졌다는 이유로 경제 전망치를 올려잡았지만, 문제는 그 온기가 내수로 쉽게 옮겨가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정부는 이달 초 ‘2024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발표를 통해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전망치를 종전 2.2%에서 2.6%로 상향 조정했다.

정부는 공식적인 경기 진단 채널인 ‘최근 경제동향(그린북)’을 통해서도 낙관적인 시각을 보였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2일 그린북 7월호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물가 안정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제조업·수출 호조세에 내수 회복 조짐이 가세하며 경기 회복 흐름이 점차 확대되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그린북에서 ‘내수 회복 조짐’이 언급된 것은 지난 5월부터다.

하지만 정부의 진단은 국책연구기관의 평가와도 엇갈린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8일 발표한 ‘7월 경제동향’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높은 수출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내수 회복세는 가시화되지 못하면서 경기 개선세가 다소 미약한 모습”이라고 밝혔다. 내수 상황을 보는 시각이 정부와는 확연히 다르다.

다만 정부는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는 점을 고려해 최근 관련 대책을 발표했다. 배달료·임대료·전기료 부담 완화와 대출 만기 연장이 골자다.

하지만 현장 반응은 회의적이다. 안양에서 요식업을 하는 40대 김 모씨는 “포장지는 화려해 보여도 20만원가량 전기료 지원을 제외하면 살갗에 와닿는 게 없다”며 “주변에 폐업한 가게가 하나둘 늘고 있어 두려움에 밤잠을 설칠 때가 하루 이틀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대출 연체 공포도 퍼지고 있다. 서울에서 6년째 카페를 운영하는 30대 황 모씨는 “코로나19 기간 동안 영업이 제한돼 월세와 고정비용을 납부하지 못한 터라 적자가 눈덩이처럼 쌓였다”며 “이를 충당하기 위해 받은 소상공인 정책자금의 거치 기간이 끝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가게 문을 닫은 후 실업자로 전락한 자영업자도 늘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실업자 중 지난 1년 사이 자영업자로 일했던 사람은 월평균 2만6000명으로, 1년 전(2만1000명)보다 23.1% 증가했다. 폐업 후 구직에 나섰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이들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의미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비대면 생활 양식이 자리잡으면서 대면 사업을 지속해온 자영업자의 어려움은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이철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코로나19 이후에도 비대면 문화가 이어지는 등 전반적인 생활 양태가 변화했다”면서 “과거로 완전히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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