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견을 듣는다] "北 핵위협 대비, 우리도 우라늄농축 등 잠재적 핵능력 갖춰야"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가장 어려운 국제 환경에 놓여… '다중위기' 속 '능동적 복합외교' 절실
北 '2개 국가론' 동독처럼 체제 지키기 위한 것… 핵 개발 지속하는 한 남북관계는 내재적 제약
한일 관계, 과거사 관련 합의 뒤로 물러나면 안돼… 장기적으로 공동 역사 교과서 등 제작 필요
트럼프 재집권시 한일 주둔 미군 활용도 높아질 것… 다양한 시나리오 상정해 대비하는게 중요
[]에게 고견을 듣는다 신각수 前외교부 차관
"우리가 사는 2020년대는 '신냉전 시대'가 아니라 '포스트 탈냉전 시대'입니다. 미중 간 전략경쟁에 '거대 변화'(Mega Change)가 가세해 초불확실성, 초변동성, 초연결성, 다중위기가 국제정세를 혼돈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우리 평화와 번영의 발판이었던 자유주의 국제질서 기반이 약화되고 있는 어려운 전략 환경속에서 능동적 복합외교가 절실합니다."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인 신각수 전 외교부 차관의 말이다. 15일 디지털타임스 회의실에서 만난 신 전 차관은 국제질서의 변화와 대한민국 외교안보 정책이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해 전문가다운 혜안을 보여줬다. 그는 미중 전략경쟁과 '차가운 평화' 시대, 세계가 중층적 다극질서로 이행하면서 단층선에서 분쟁 발생 위험 고조가 고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러시아와 중국, 북한 등 권위주의 국가군의 도전에 잘 응전하면서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어떻게 유지할 것이냐가 우리 경제뿐만 아니라 안보외교 측면에서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또 "북한 김정은 정권의 '2개 국가론'은 과거 동독처럼 체제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북핵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선 잠재적 핵 능력을 갖춰야 하며 이를 위해선 한미 원자력협정에서도 허용돼 있는 우라늄농축에 대한 국가적인 논의를 당장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은 한미동맹이 흔들렸고 한일 관계는 최악이었으며, 한중 관계 정체와 남북관계 악화 등 사면초가였다며 한미동맹 강화와 한일 관계 복원 등 가치외교를 앞세운 윤석열 정부에 대해선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신각수 전 차관은 1955년 충북 영동 출생으로 1977년 외교부에 들어가 일본과장, 조약국장, 주유엔 차석대사, 주이스라엘·일본 대사, 1·2차관 등을 역임했다. 서울대에서 법학(국제법) 박사학위를 받았고 서강대·서울대 국제대학원, 울산대에서 강의했다. 한일관계 증진을 목적으로 설립된 세토포럼의 이사장을 10년간 역임했으며, 싱크탱크인 니어(NEAR)재단의 부이사장을 맡고 있다. 현재 북한인권시민연합·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씽크(THINK)·북한인권정보센터(NKDB) 등 북한 관련 비정부기구(NGO)에서 활동하고 있다.
대담 = 강현철 논설실장
-세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미·중 간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으로 국제 질서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신냉전 시대의 도래'라는 시각도 나오는데 현 세계를 어떻게 보십니까
"'신냉전' 용어를 사용하는 건 현실과 부합하지 않습니다. 냉전은 2차 대전 이후 동서 즉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과 소련·동구권이 진영을 만들어 대립하는 구도였습니다. 지금은 이런 냉전에서 벗어난 탈냉전 시대가 끝나가는 시기로, '미중 전략경쟁' 또는 '차가운 평화'(Cold Peace) 시대로 보는 게 적절합니다. 탈냉전 시대는 1990년대초 옛 소련이 망하면서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단극 질서의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던 그런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2001년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 군사 개입을 하고 승리는 거뒀지만 수렁에 빠져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을 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20년 했는데 2022년 8월에 철수를 했죠. 아프가니스탄 철수는 탈냉전 시기가 끝났다는 상징적 사건입니다. 이제는 '포스트 탈냉전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초불확실성이 쌓여 있고, 초변동성에 의해 움직이면서도 또 초연결성으로 네트워크화돼 있는 시대입니다. 또한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의 지위를 잃어버리고 중국과 전략경쟁이 본격화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미중 전략경쟁'의 시대라고 하든지 아니면 '차가운 평화'(Cold Peace) 시대라고 하고 싶습니다. 지금 미국과 중국의 전략경쟁은 이념경쟁이 아니에요. 중국의 싼 제품이 미국 시장에 들어가지 않으면 미국은 더 큰 인플레를 겪게 되고 경제가 견뎌낼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상호 의존하게 되는 거죠. 대립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 묶여 있다는 점은 변함이 없습니다."
- 과거 냉전과는 전혀 다른 미중 전략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군요.
"그렇습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미중 전략경쟁에 의한 '지정학의 귀환' 와중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에 의한 가자 전쟁 등 단층대가 형성된 지역에선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입니다. 동아시아에서는 한반도 대만해협 남중국해 동중국해가 일종의 단층대입니다. 중동에서는 이스라엘과 레바논 헤즈볼라 간 전쟁 가능성 또한 상당히 높아지고 있습니다. 복합적인 '다중 위기'(Poly crisis)가 일어나는 거죠. 현 시대의 또다른 특징은 코로나19 팬데믹과 기후 위기 등 다양한 거대변화가 동시 진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기후변화 대처를 위한 녹색 에너지 전환은 '에너지 지정학'이라는 말이 있듯 지정학적으로 영향력이 큰 사안입니다. 석유나 석탄 가스 대신 탄소 중립적인 신재생에너지 즉 풍력 태양광 그리고 원자력 등으로 에너지 패러다임이 바뀌는 겁니다. 거기다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이 있습니다. AI는 경제뿐만이 아니라 군사적인 함의도 큽니다. 또 세계 인구가 감소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메가 체인지'가 동시에 복합적으로 일어난다는 측면에서 불안정하고 변동성이 높고 그러면서도 상호 연관된 양상이 '포스트 탈냉전 시대' 벽두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 '포스트 탈냉전 시대' 대한민국이 처한 국제 환경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1945년 독립해 한국전쟁을 겪고 1960년대 초반 경제개발을 시작해 산업화, 민주화, 세계화, 정보화까지 오는 동안 우리는 한미동맹과 자유주의 국제질서로부터 절대적인 헤택을 받았습니다. 경제력은 세계 10위권이고, 군사력 순위는 조금 더 위입니다. 인구 5000만명에 소득 3만달러 이상 되는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7개밖에 없어요. 이 7개국 중 개도국에서 상승한 나라는 대한민국뿐입니다. 그런데 이를 뒷받침했던 한미동맹에 의한 안보,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의한 경제가 흔들리고 있는 겁니다. 자유로운 국제질서는 이를 유지하는 동력이 있어야 하는데 미국의 신고립주의나 트럼프주의로 인해 그 동력이 떨어지는 거죠. 반면에 여기에 도전하는 중국과 러시아 등 소위 권위주의 세력들이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흔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가장 어려운 국제 환경 속에 놓인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 대한민국의 외교안보 정책은 어떤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경제규모 세계 10위권다운 '능동적 복합외교'가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어떤 내용인지요.
"경제 발전과 안보에 가장 중요한 요소였던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기반이 원심력과 구심력으로 인해 흔들리고 있습니다. 중국이 급속히 부상하면서 공세적인 외교안보 정책을 구사, 수정주의 세력으로 기존 질서를 대체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과거 옛 소련의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죠. 이란 북한 베네수엘라 쿠바 시리아 등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교란하는 국가들끼리 연계도 강화되고 있습니다. '글로벌 사우스'라는 개도국과 신흥국들이 제3의 세력으로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는데 유엔 안보리나 총회에서 글로벌 사우스는 협조를 안합니다. 대표적인 게 인도죠. 서방에서 러시아를 제재하고 있는데 제재를 제일 많이 위반하고 있는 게 인도입니다. 세계가 '글로벌 사우스' '글로벌 노스' 등으로 분열되면서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떠받드는 힘 또한 분열되는 거죠. 국제 질서를 떠받들던 미국도 지쳤습니다. 트럼프가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는 국제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국제 공공재를 공급하는 일을 그만 두겠다는 겁니다. 그걸 안하면 이른 바 '킨들버거 함정'(Kindleberger Trap)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새롭게 부상한 국가가 기존 패권국을 대신해 국제 공공재를 제대로 공급하지 못할 때 위기가 발생하는 상황이죠.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패권을 가져온 1871년 이후 국제 공공재 공급을 안했기 때문에 1차 대전과 2차 대전으로 이어졌다는 게 킨들버거 함정입니다. 조셉 나이 하버드대 교수가 말한 것처럼 그게 지금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 거죠. 미국의 역할을 중국이 할 수 없습니다. 능력도 없고. 유럽도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간신히 극우 정권을 막은 상황입니다.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일본은 최근 경제가 회복되고 있습니다만 아직 완전히 회복됐다고 보기 어렵죠. 미국 유럽 일본 '3두 체제'가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유지해 왔는데 하나는 뒤로 물러서려 하고 나머지 둘은 힘이 없습니다.권위주의 국가군의 도전에 잘 응전하면서 포스트 탈냉전 시대에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어떻게 유지할 것이냐가 우리 경제뿐만 아니라 안보외교 측면에서 중요한 요소라고 봅니다."
- 윤석열 정부가 2년을 넘겼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가치 외교 등을 내세우고 활발하게 외교 활동을 벌이고 있는데요. 지난 2년여간의 외교안보 정책을 평가하신다면.
"전반적으로 긍정적입니다. 전임 정부 때 우리 외교안보는 사면초가였죠. 한미동맹이 흔들렸고 한일 관계는 최악이었으며, 한중 관계도 정체 상태였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중국은 큰 산, 우리는 작은 산이라고까지 했는데도 사드 사태는 해결이 안됐고, 대통령이 중국 가서 찬밥도 먹었습니다. 북핵 문제 해결도 진전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원인은 한반도 중심의 외교를 했기 때문입니다. 독일 슐츠 총리가 '시대적 전환'(Zeitwende)이라 했듯 포스트 탈냉전으로의 이행기 속에 복잡 다양한 요소들을 총체적으로 보고 불확실성에 따른 다양한 시나리오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상황인데 북한 문제에만 꽂혀 있다 보니 아무 것도 안된 겁니다. 윤석열 정부에 들어선 '글로벌 증추국가'라는 목표를 세우고 목표에 맞게끔 우리 외교의 기축인 한미동맹을 확고히 하고 한일 관계를 복원하고, 그 다음에 이를 기반으로 한중과 한러 관계도 관리하겠다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우리 외교의 지평을 한반도에서 동아시아와 인도태평양, 글로벌 차원으로 확대하기 시작했습니다. 북핵 확장 억제를 강화하기 위해 작년 4월 국빈 방문을 통해 워싱턴 선언을 이끌어내고, 지난 11일엔 한반도 핵억제 핵작전 지침 공동성명을 통해 동맹 관계를 핵전력 기반으로 격상했습니다. 한미일 삼각 협력체제의 약한 고리가 한일이었습니다. 작년 3월 한일 간 최대 현안이었던 강제동원 문제를 제3자 변제라는 해법을 통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어버리면서 한일 관계가 회복 궤도로 진입했습니다. 문 정부때 있었던 일본의 소부장 규제를 풀었고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도 원래대로 돌렸으며, 한일 간 고위급 경제대화가 재개되고 1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도 맺었습니다. 안보면에서도 우리가 북한 선박을 단속하면서 벌어졌던 광개토대왕함과 일본 P-1 초계기 간 갈등 문제가 최근 해결됐습니다.안보 협력을 활성화할 토대가 마련된 거죠.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윤석열 정부의 외교는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한중·한러 관계는 악화되지 않았습니까?
"외교안보의 축을 옮기면 비용이 들게 돼 있어요. 한중 관계나 한러 관계는 아무래도 경직되게 마련이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어려워졌지만, 중국과는 최근 한일중 3국 정상회담이 우리 주최로 열려 상당히 내용 있는 합의를 했습니다. 한일중 FTA(자유무역협정) 교섭을 재개한다든지 6개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화한다는 합의가 이뤄져 한중 고위급 소통의 물꼬가 트여졌습니다.다만 아쉬운 건 국민들과의 소통이 좀 부족합니다. 예를 들면 정치적 결단에 의해 한일 관계 복원 조치를 했는데, 국민들한테 이게 왜 필요하고 또 어떤 효과가 기대되고 앞으로 이렇게 할 것이라고 잘 설명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국내 정치가 양극화돼 어렵기는 하겠지만 외교는 초당적으로 해야 합니다. 야당과 외교 사안에 관해서는 협의를 강화하는 그런 노력을 한다면 국민들이 보기에도 훨씬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지난해 11월 9.19 군사합의 파기한 북한은 최근 오물 풍선 도발을 감행하는 등 도발을 멈추지 않는 상황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조선 반도 두개의 국가론'을 들고 나왔는데 현재의 남북 관계를 어떻게 보십니까?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지속하고 있는 한 남북관계는 내재적 제약이 있습니다. 북한이 남한과 대화나 접촉을 했던 건 남한으로부터 경제적 지원 때문입니다. 그런데 2017년 이후 유엔 안보리에 의한 제재가 강화되면서 인도적 지원을 제외하고는 남북 간의 경제적인 지원과 협력을 할 수가 없습니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남한의 효용 가치가 떨어진 거죠. 두번째는 북한이 2020년부터 3년간 코로나19로 인한 록다운을 하면서 폐해가 엄청 큽니다. 무역이 완전히 제로 상태로 갔었으니까요. 또한 자연재해가 많고 재해에 대한 대응 능력이 떨어집니다.핵을 개발해 소위 북한 체제의 정통성을 선전하는 데 도움은 됐지만 북한 주민의 굶주린 배를 채우지는 못한 거죠. 더더욱 문제는 북한 사회에 외부 정보가 유입되는 겁니다. 북한 정권은 거짓말에 의해 서있는 정권인데 진실이 들어오면 흔들리는 겁니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 평양문화어보호법, 청년교양보장법 등을 만들고 남한 가요를 들었다고 청년을 처형시켰다는 소식까지 들리죠. 경제 부진에 따른 체제 유지의 어려움, 외부 정보 유입에 따른 사회 통제의 어려움, 남한으로부터의 지원 기대 어려움 등을 고려하면 남북을 딱 잘라놓고 2개 국가론으로 하는 것이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되는 겁니다. 이는 과거 동독의 2개 국가론과 유사성이 있습니다. 동독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에 체제 수호의 관점에서 2개 국가론으로 전환합니다. 체제 경쟁의 성적표가 나왔거든요. 남북 간의 체제 경쟁도 끝났다고 봅니다. 2개 국가론은 북한 내부를 통제하고 남남 갈등을 유발하는 데 좋습니다. 북한은 체제 존속이 가장 큰 국가 존재 이유니 당분간 이런 2국가 체제론에 의해 남북 간 긴장 상태를 지속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미북 대화나 교섭이 재개됐을 때 좀 더 강한 위치(Position of Strength)의 입장에서 교섭할 수 있는 능력을 비축하기 위해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면서 도발을 지속하는 겁니다.올 11월 미 대선 결과와 내년 이후에 미국의 대북정책 방향 전환 가능성을 엿보고 그런 차원에서 남북 관계도 전개해 나갈 겁니다."
- 최근 북한과 러시아가 군사원조 조약을 맺었습니다. 북러 간 조약이 한반도에 미칠 영향을 어떻게 보십니까? 윤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해 "남북한 중 누가 더 중요하고 필요한지 잘 판단해야 한다"고 경고했는데 한러 간 관계를 어떻게 관리 가능할까요?
"북러는 권위주의 국가군의 '교란의 축'(axis of disruption)의 일원으로 상호협력의 가치가 존재합니다. 우리 입장에선 러시아가 한반도 문제에서 방해자(spoiler) 역할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중국처럼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큰 것도 아닌데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변수가 생겼습니다. 북한은 러시아에 400만에서 500만발 정도의 포탄을 공급하고, 반대급부로 석유와 식량, 군사기술을 받으려고 합니다. 이게 단순한 상호이익을 고려한 '편의에 의한 결합'(Marriage of Convenience)인지,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NATO) 사무총장이 우려한 '전략적 결합'인지는 살펴봐야 합니다. 후자는 우리가 막아야 됩니다. 전략적 결합이 되면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 ICBM 기술, 잠수함 발사 미사일 SLBM 기술, 위성 감시 기술 등을 넘겨받을 수 있게 됩니다. 북한의 보유 핵탄두는 60 플러스 마이너스 알파라고 얘기하잖아요. 제일 우려스러운 상황은 북한이 미국 본토를 공격하고 미국이 반격했을 때 다시 공격할 수 있는 소위 '2차 공격능력'(second strike capability)을 갖게 되면 우리는 전략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한반도에 핵무력 충돌이 일어났을 때 미국이 서울을 지키기 위해 핵으로 대응할 것이냐는 그런 문제가 있지 않겠습니까? 핵이나 미사일 관련 기술이 북한으로 이전되게 되면 이는 핵 도미노를 불러 동사시아의 '게임 체인저'가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의 핵무장 논의가 급진전될 것이고 , 일본과 대만에도 영향을 미쳐 '핵 도미노 현상'을 가져올 거 아니겠어요? 북러가 전략적 협력 단계로 발전하지 않도록 한미동맹 또는 한미일 3각 협력체제, 한중 협의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북러 간 관계 발전으로 한반도에 있어서의 중국의 우선적인 지위가 약화되고, 미국이 더 개입하게 되면 중국 입장에선 불리합니다. 이런 점을 잘 활용해 전략적 협력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도록 해야죠. 우리도 갖고 있는 러시아에 대한 카드 등을 명확하게 소통함으로써 러시아가 그런 단계까지 가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고요."
- 대한민국도 자체 핵 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자체 핵무장은 주한미군 철수나 감축 등 한미동맹이 흔들리지 않는 한 비현실적입니다.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에 따라 개인적으로는 전술핵 재배치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나토와 같은 핵 공유 얘기도 나옵니다만 한미 간 나토형 핵 공유가 되려면 전술핵이 있어야 됩니다. 미국이 갖고 있는 전술핵을 운용할 때 우리가 참여하는 것도 나름 의미는 있겠지만, 나토형 핵 공유 체제를 도입하려면 전술핵 재배치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북한은 핵을 완전히 포기 안 할겁니다. 한반도에 전술핵이 있는 것이 교섭에 유리하고 억지력도 향상됩니다. 한미 동맹이 지금과는 다른 상태로 갔을 때에 대비해 잠재적인 핵 능력을 갖추는 걸 검토하고 국가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원전은 건설 계획분까지 포함하면 30개 안팎으로, 가동하려면 농축우라늄이 필요합니다. 우라늄 농축 시설 정도는 미리 준비해야 하고, 한미 원자력협정도 20%까지는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 하고 있죠, 농축우라늄은 산업용으로 꼭 필요한데 대부분은 러시아에서 수입해 쓰고 있어요. 공급망의 안전성을 위해서도 국가 전략상 심각하게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고 봅니다."
- 중국은 역사적으로 대한민국과 애증의 관계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대중 전략은 어떻게 가져가는 게 바람직할까요?
"1992년 한중 수교 후 2010년쯤까지는 관계가 좋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한중 간 국력 차이가 별로 안 났어요. 지금은 국력차가 엄청 납니다. 중국 대외 정책의 변화, 객관적인 국력 차이에 의해 과거와는 다른 형태로 한중 관계가 재조정될 겁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특히 주변국에 대해서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외교, 조공외교의 수직적인 중화질서의 잔재가 남아 있죠. 우리가 그렇게 만든 측면도 있습니다. 이를 상호 존중과 공동의 이익을 통해 재조정하는 과정을 잘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서두르면 안됩니다.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도 얘기를 했습니다만 중국은 1세기 단위로 시간을 보는 유장한 역사관과 국제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대응하려면 우리도 최소한 10년, 20년을 봐야지 1~2년 짧은 기간을 가지고 중국과의 관계 설정을 하고 유지해가려고 하면 판판이 지게 돼 있습니다. 원칙을 지킬 건 지키고 세심하게 외교를 해야 합니다. 불필요한 레토릭으로 상대를 자극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생존을 위해, 발전과 번영을 위해 중국이 어떻게 바뀌고 있고 또 그 바뀌는 중국과 우리는 어떤 관계를 가져가야 되는가에 관해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대응해 나가야 비대칭적 관계를 보다 공정하고 안정되고 균형된 관계로 가져갈 수 있습니다."
- 북·중·러에 맞서려면 현실적으로 한·미·일 간 관계 강화 밖에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일본과의 역사적 관계에 따른 국민적 정서가 가장 걸림돌일 듯 싶습니다. 한·일 갈등의 근본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최근 한일 관계는 '잃어버린 10년'이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다르면서도 비슷한 국가입니다. 아시아에서 선진국 클럽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은 한국하고 일본밖에 없어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법치, 인권 존중 등의 가치도 공유합니다. 거기에다 한국과 일본은 전략적 이해가 비슷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 관계는 10년동안 굉장히 어려웠는데 원인은 과거사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과거사는 옛날과는 다릅니다. 옛날에는 우리가 피해자로서 일종의 도덕적 우위에서 일본을 공박하는 데 과거사가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일본이 가해자인데 피해자인 한국을 공박합니다. 일본은 한국이 1965년 청구권 협정을 위반한 게 약속 위반이고 국제법 위반이라는 거죠. 2015년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일 간 합의도 문재인 정부가 무력화했습니다. 알맹이라 할 수 있는 화해치유재단을 해산시켰죠. 46명의 위안부 할머니 가운데 35명이 1억원씩을 받았는데 해산했어요. 양국 간 합의를 어렵게 해놓고 약속을 깨니 우리가 도덕적 우위에 있던 것이 도덕적 열위로 뒤바뀐 겁니다.제가 일본에서 외교관 생활을 시작한 게 1983년입니다. 그때는 과거사 리스트가 많았습니다. 상당 부분 해결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2015년 합의에 의해 해결됐습니다. 강제동원 문제도 해결됐다고 봤는데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뒤집혀졌습니다. 그 사이에 정부는 1970년에 두번 보상을 했습니다. 피해자들이 모자라다고 해서 2007년에 6300억원을 들여 7만명에 다시 보상해줬습니다. 우리 정부는 2018년 이전에는 1965년 한일협정에 의해 강제동원 문제가 해결됐다고 봤다는 뜻이죠. 윤석열 대통령이 제3자 변제 방식에 의해 이 문제를 풀었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2015년 합의에 따라 미진한 게 있으면 해결하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불행했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게 하는 겁니다. 그러려면 역사 연구와 교육이 제대로 돼야 하는데 완전 방치돼 있습니다. 한일 간 역사를 공동 연구하고, 독일하고 폴란드처럼 역사 공동 교과서도 장기에 걸쳐 만드는 겁니다. 또 하나 중요한 건 양국 간에 과거사 관련해 합의한 것은 뒤로 물러나면 안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한국도 일본도 물러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일본은 군함도를 유네스코에 등재할 때 강제동원 사실을 적시하겠다고 해놓고 안 했습니다. 무라야마 담화, 고노 담화도 이에 배치되는 발언이나 행동으로 종종 후퇴합니다.내년이 한일 국교 수립 60주년인데, 국교 수립전 20년을 합하면 80년입니다. 거의 1세기가 다 됐는데 과거에만 계속 머물면 될까요. 한국과 일본을 둘러싼 국제 환경은 굉장히 위험한 상황입니다. 과거에서 미래로 그리고 양자 관계에서 지역 문제나 글로벌로 나아가야 합니다. G7이 확대되면 한국도 들어가게 돼 있어요. 한일 간 협력해 지역 문제 해결하고 글로벌 이슈 예를 들면 세계 보건 이슈 같은 것를 이끌어가야 합니다. 한국과 일본은 아시아를 끌고 나갈 위치에 있는 국가입니다. ODA(공적개발원조)에 협력하고 유엔의 평화유지활동에 협력하고 AI(인공지능)에도 협력해야 합니다. 라인야후 문제가 나와서 조금 유감스럽지만 AI 시대 제일 중요한 게 정보입니다. 한국 5000만, 일본 1억2500만명 가지곤 택도 없습니다. 동남아 합하고 중동 합하고 해서 미국 AI 플랫폼, 중국 플랫폼에 대항할 수 있는 아시아 플랫폼을 만들어야 합니다. 과거사 문제에만 집착하면 젊은 세대들은 어떡합니까?"
- 피격 사건 이후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재집권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미국의 한반도 전략에도 큰 변화가 예상됩니다. 어떻게 하면 '트럼프 리스크'를 관리 가능하겠습니까?
"트럼프 1기 때 어려운 경험을 했죠. 싱가포르에서 미북 정상회담하고 기자회견하면서 우리와 아무 합의없이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중지를 선언한 것이라든지, 터무니없게 방위비 분담을 5배 늘려 요구하고, 주한미군 철수 얘기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2기가 된다고 하면 다만 유럽보다는 나을 것 같아요. 트럼프는 유럽이 나토에 공짜 승선(free ride)한다고 얘기하는데 그 기준이 방위비 GDP(국내총생산) 2% 부담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도 각성해 국방비를 늘리고 있어요. GDP 2% 이상 국가가 현 18개국입니다.독일 중심으로 유럽 주둔 미군 철군이 이슈입니다. 실제로 트럼프가 철군시켰었어요. 유럽이 많이 긴장하고 있고 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 경우는 조금 다른 게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대중 정책은 더 강경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대중 정책을 펴나가는 데 있어 한국과 일본에 있는 주한미군이나 주일미군이 도움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한미군 철수는 현실화되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한미간 방위비 분담 교섭이 진행중인데 연말이 되더라도 그게 그대로 트럼프에 의해 존중될 거라고 보지는 않아요. 다만 지난번처럼 터무니없이 요구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우리도 착실하게 방위비 협상을 해, 항목별로 미국이 한미 연합방위에 필요한 부분에서 충분한 소유가 인정이 되면 올려주면 됩니다. 더 큰 문제는 무역입니다. 대중무역보다 대미 무역이 더 커졌어요. 트럼프는 '거래적 외교'를 하기 때문에 거래에서 손해 보는 거는 못 참는 사람이거든요. 한 지표가 무역적자예요. 그런 차원에서 대응해야 합니다. 반도체(칩스법)와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른 배터리는 미국 진출 우리 기업이 지원을 많이 받습니다. 전기차는 미국 대선상 경합주들이 있는 소위 '러스트 벨트' 지역이 내연기관차 생산에 집중돼 확실하게 후퇴할 거라고 봅니다. 또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지원이 많이 줄어들 거예요. 그리고 미국 캐나다 멕시코 간 FTA(자유무역협)인 USMCA는 틀림없이 수정하자고 할 겁니다. 멕시코를 통한 중국의 우회 수출이 엄청나니까요. 이런 것에 대비해야 할 겁니다. 한미 간 이익의 균형 거래를 찾는 작업을 통해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 조치에 사전 대비해야 합니다."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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