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희의 정치사기] 돌고 도는 `폭력의 정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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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642년 고구려에서 연개소문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는 대목이다.
이 사료를 비롯한 당대 기록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현재 학계에서는 연개소문이 자기 가문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정변을 결행했다는 게 통설이다.
전근대 시대 정치에선 나와 다른 노선에 있는 사람을 이기기 위해선 폭력이 동반돼야 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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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대인이 왕과 함께 몰래 연개소문을 죽이고자 논의했는데, 일이 새나갔다. 이를 알아챈 개소문은 성 남쪽에 술과 안주를 성대히 차려 두고 대신을 초대한 뒤, 그들을 모두 살해했다. 대략 100여 명이었다. 이후 말을 달려 궁궐로 들어가 왕을 시해하고, 시신을 잘라 여러 토막으로 내고 도랑 안에 버렸다."(삼국사기, 권 제49열전 제9 개소문)
서기 642년 고구려에서 연개소문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는 대목이다. 이 사료를 비롯한 당대 기록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일각에선 신하로서 왕을 죽이고 1인자에 오른 그를 반역자로 비난한다.
반면 고구려의 자주성을 지키기 위해 당나라에 굴욕적인 사대정책을 펼친 영류왕을 제거할 수 밖에 없었다는 시각도 있다. 현재 학계에서는 연개소문이 자기 가문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정변을 결행했다는 게 통설이다.
다만 관통하는 논리는 하나다. 전근대 시대 정치에선 나와 다른 노선에 있는 사람을 이기기 위해선 폭력이 동반돼야 했다는 점이다. 혈족(血族)에 기반한 신분제가 공고했던 당시엔 이것이 일상이었다.
특히 왕조 교체기에는 더 극심했다. 려말선초 시기 고려 왕정을 복구하려는 구법파 사대부와 새 왕조를 개창하려는 신법파 사대부 간 권력쟁탈전이 대표적이다. 두 세력 사이엔 피 튀기는 암살과 보복이 잇따랐다. 왕도 예외가 없었다. 이 시기 우왕·창왕·공양왕 모두 신법파 사대부에 의해 처형됐다. 정치의 본령인 대화와 타협은 존재하지 않았다.
문제는 민주화가 된 현대 시대에도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펜실베이니아 유세현장에서 총격 테러를 당한 사건은 충격적이다. 총을 맞는 순간 고개를 조금 돌리는 바람에 치명상을 피했다는 목격담까지 나왔다. 용의자는 20세 백인 남성인 공화당원, 범행 동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테러는 지구촌 단위로 발생한다. 가장 가깝게는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월 부산 방문 중 60대 남성에게 목을 찔려 내경정맥이 9㎜ 손상되는 상처를 입은 바 있다. 17년 전인 2006년엔 박근혜 전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대표)이 50대 남성이 휘두른 커터칼에 11㎝ 길이의 오른쪽 뺨 자상을 입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테러의 원인을 '정치의 감성화'에서 찾고 있다. 밀레니엄 시대부터 활성화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증오의 언어와 극단적인 정쟁이 난무하고, 자기 진영만이 절대선으로 자리한다. 나와 정치적 성향이 다른 상대는 악마로 규정한다.
이 과정에서 여야 지지자 간 정서적 양극화는 더 심화된다. 이 전 대표와 박 전 대표를 습격한 가해자 둘 다 상대를 적으로 인식한 것으로 드러났다. 시대만 변했을 뿐, 반대 정치세력을 폭력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건 매한가지다.
정치인들도 이런 현상을 부추긴다. 다만 이전 시대 정치인들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이들은 직접 싸우지 않고 지지자들이 싸우도록 유도한다. 정치인들은 SNS 등을 통해 각종 막말과 극언을 남발하고, 이에 열광하는 강성 팬덤은 상대를 공격한다. 욕설과 성희롱 등 도를 넘는 문자테러도 자행한다. 최근엔 '단톡 괴롭힘'의 형태도 등장했다.
결국 예나 지금이나 해결책은 한가지다. 정치의 본령인 대화와 타협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나와 상대가 같아야 한다'는 모순적인 판단에서 벗어나야 한다.
살아온 환경과 경험이 다른 사람들이 같은 시각을 갖고 동일한 결론을 내리긴 쉽지 않다. 갈등 역시 서로의 생각을 강요하는 데서 나온다. 존경받은 성자도 모든 상황에서 옳을 수 없다.
보수든 진보든 듣기 싫은 말에도 귀를 기울이고, 반대쪽에 선 이들의 다른면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정치를 둘러싼 갈등이 조금씩 해소되고, 테러도 잦아들 수 있다. 정답은 O,X가 아니라 O와 X사이에 존재한다. 정치는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이다. 정치정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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