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여름·가을·겨울…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순간을 담는다

김민 기자 2024. 7. 15.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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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립미술관 열린수장고 기획전
'임동식: 사계절의 선에서'展 18점 전시'
'자연 조우하는 작가 태도 관람 포인트'
대전시립미술관 열린수장고에서 오는 10월 6일까지 열리는 기획전 '임동식: 사계절의 선에서'의 홍보물. 대전시립미술관.

빗줄기가 억세게 쏟아지더니 잠깐 주춤하다. 숨죽였던 초록이 고개를 든다. 한여름 생동감이 곳곳에 즐비하다. 자연은 1년의 절반을 지나 이렇게 또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임동식' 기획전은 그래서 더욱 새롭게 다가온다.

대전시립미술관은 오는 10월 6일까지 미술관 열린수장고에서 기획전 '임동식: 사계절의 선에서'를 연다. 임동식은 자연과 늘 함께한 작가로, 그의 예술 세계를 자연적 시간 흐름에 맞춰 바라볼 수 있다. 미술관 소장품인 '본춘이와 화가 아저씨: 봄, 여름, 가을, 겨울'(2002), '자연예술가와 화가'(2005), '기억의 강'(1991-2008)을 포함해 지난해 새롭게 수집한 '향나무 저편 강원도 산토끼'(2021)까지 모두 18점의 작품이 선보인다. 임동식의 작업 궤적을 따라가며 작품에 녹아있는 자연을 조우하는 그의 태도에 귀 기울여 보길 바란다.

화가 임동식이 친구 우평남을 자연예술가로 인식하고 두 사람의 인생을 압축해 묘사한 작품. '자연예술가와 화가: 봄', 캔버스에 유채, 130.3×162.2㎝, 2005.
화가 임동식이 친구 우평남을 자연예술가로 인식하고 두 사람의 인생을 압축해 묘사한 작품. '자연예술가와 화가: 겨울', 캔버스에 유채, 130.3×162.2㎝, 2005.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임동식은 금강현대미술제와 야투(野投·야외현장미술연구회) 등 자연미술에 대한 선구적인 실천과 방향을 제시해왔다. '자연예술가와 화가: 봄, 여름, 가을, 겨울' 연작은 화가와 자연예술가의 미술행위를 수평구조적인 해석을 담아 제시한다. 화가인 임동식은 친구 우평남을 자연예술가로 인식하고 두 사람의 인생을 압축해 묘사한다. 성장기인 봄에는 청소년으로, 성숙기인 여름에는 청년의 모습으로 정면을 응시하더니 가을과 겨울에는 각각 중년과 노년의 무르익음과 쓸쓸함을 은유한다. 액자식 구성으로 표현된 작품 배경은 그들의 삶에서 축적된 이야기를 부분부분 드러낸다. 두 사람 뒤편에 병치된 그림 속의 시선이 점점 본인과 서로에게서 멀어져 타인과 자연으로 이동한다는 점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친구가 권유한 풍경: 봄, 여름, 가을, 겨울' 연작도 친구 우평남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우평남은 한때 붓을 잡지 못하고 주저하던 임동식에게 "나라면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겠다"며 사진을 촬영해 왔다. 임동식의 예술세계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은 시점이다. 해당 연작은 특정한 나무의 사방 풍경을 모두 담거나 계절의 변화, 비와 눈, 바람의 진로를 담아낸다. 자연예술가를 존중하는 마음은 보는 이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임동식 작가가 사람들의 기억을 바탕으로 떠올려 그린 충남 공주의 금강 풍경. '기억의 강', 캔버스에 유채, 132×320㎝, 1991-2008.

◇흐릿한 기억이 뚜렷한 풍경으로

이번 전시의 홍보물을 장식한 '기억의 강'은 충남 공주의 금강 풍경이다. 공주산성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강줄기와 수풀이 수려하고 장엄하다. 임동식은 숱한 개발로 주변 환경이 많이 변한 현재의 금강이 아닌 과거 금강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렸다고 밝혔다. 임동식은 오랫동안 작품을 곁에 두고 금강의 흐름을 떠올렸다. 무려 17년간 개작을 거듭했다. 백사장을 더 넓게 그렸다 지우기도 하고, 강 한가운데 돌출한 섬을 넣었다 빼기도 하면서 장고했다. 17년 만에 완성된 이 작업은 그 자체로 오랜 풍화를 견뎌낸 금강의 필치를 닮았다. 이제는 눈 감고 기억을 떠올리지 않으면 만나볼 수 없는 금강 풍경은 예술행위의 본질적인 물음과도 맞닿는다. 금강은 지난 1981년 임동식을 주축으로 창립된 '야투'의 근원지다. 오래 전 흐릿한 기억의 표상이자 그리움의 대상,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다.

임동식 작가가 군 복무한 강원 원주의 웅장한 자연을 회상해 그린 작품. '향나무 저편 강원도 산토끼', 캔버스에 유채, 182×227㎝, 2021.

◇눈 내린 산골마을 청년은 왜 토끼 흉내를 내나

임동식은 지난 2020년 '제5회 박수근미술상'을 수상한 뒤 군대 복역했던 강원 원주의 웅장한 자연을 회상한다. '향나무 저편 강원도 산토끼'는 강원지역의 자연을 어떻게 친밀하게 표현할지 고민하다 세상에 나왔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산토끼'는 실은 들짐승 토끼가 아니다. 손바닥 크기의 잎사귀를 두 귀에 갖다 댄 사람이다. 자칫 정적이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설경을 재치 있고 유쾌하게 풀어냈다. 곁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향나무까지 더해져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눈이 즐겁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쉼 없이 순환하는 계절의 순간순간 내밀한 변화를 건져 올리려는 임동식의 지극정성한 노력 덕분이다. 임동식은 자연 풍경에 특정한 상황을 결합해 평면적 작품에 시간과 운동, 연극적 행위 등을 효과적으로 구현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통을 허물고 새로운 것으로 교체되는 문명 파괴적인 성찰이 느껴진다.

임동식 작가가 독일 유학을 끝마치고 고향인 충남 공주로 돌아와 이웃집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린 작품. '본춘이와 화가아저씨: 봄, 여름, 가을, 겨울', 캔버스에 유채, 131×162㎝(4EA), 2002.

◇다시 고향, 이웃집 아이와 사계절

독일 유학을 끝내고 지난 1993년 귀국한 임동식은 충남 공주 원골 마을에서 손수 작업실을 짓고 화단을 가꿔 살았다. '본춘이와 화가아저씨: 봄, 여름, 가을, 겨울'도 이웃집 본춘이와 본인의 모습을 녹여낸 작품이다. 창밖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등지고 나란히 앉은 두 인물은 사계절이 지나도록 한결 같은 자세를 유지한다. 다만 꽃이 피는 봄과 녹음이 우거진 여름, 국화가 흐드러진 가을 그리고 눈 쌓인 겨울을 지나는 동안 소년은 키가 웃자라고 화가아저씨는 얼굴에 주름이 패인다. 태어나고 죽는 것, 계절이 오고가는 것, 소년이 자라는 것, 인간의 생로병사도 자연의 한 부분임을 새삼스레 경험한다. 실제로 이 작품은 처음 붓질한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작업이 이어졌다. 자연을 오래도록 관찰하고 사유하는 임동식 예술적 세계관이 고스란히 담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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