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미국의 ‘총기 딜레마’
지난 13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쇠락한 공업도시 유세장에서 울려퍼진 총성이 역사를 바꿀 것인가. 총격이 스쳐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오는 18일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후보 지명을 수락하며 지지층이 더 결집될 게 분명하다. 반면 노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조 바이든 대통령에겐 민주당 후보 사퇴 압력이 더 강해질 것이다. 두 후보의 기운 차이가 대비되며 트럼프의 대선 승리가 더 유력해졌다는 시각이 많다. 다만 대선까지 남은 111일은 미국 정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긴 시간이다.
질문을 좁혀, 이번 일을 계기로 미국의 총기 규제론에 힘이 실릴 것인가. 그렇게 보기 어렵다. 총기와 관련해 미국은 외부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상한 나라이다. 현직 대통령이나 대선 후보 15명이 총기 암살 시도 대상이 됐고 에이브러햄 링컨, 존 F 케네디 등 현직 대통령 4명이 숨졌다. 대통령과 달리 다수 시민은 아무런 보호 없이 상시적 위험에 노출돼 있다. 지난해 미국 총기 사고 사망자는 4만2888명이다. 하지만 어떤 끔찍한 사건이 나도 총기 소유 권리는 거의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살아남았다.
미국 총기 권리는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州)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인민의 무기 소지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는 수정헌법 2조에 근거한다. 넓은 땅을 개척해야 했던 건국 초 정부가 개인을 보호해줄 수 없는 여건에서 총기는 개인이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필수였다. 그 후 230년 넘게 흐르며 미국 내 총기는 인구수와 비슷한 3억2600만여정이 풀렸으며, 미국인의 정체성을 이룬다.
그래도 자신이나 주변인이 피해자가 되면 신념을 바꿔 총기 반대론자가 되는 일이 종종 있다. 자연스러운 변화다. 트럼프는 어떨까. 그는 지난 5월 전미총기협회(NRA) 총회에서 바이든의 총기 규제에 맞서 싸우겠다고 했고, 대통령 재임 시 총기 권리 옹호 판결 이력을 가진 200여명을 연방판사로 임명했다. 이번 사건 후에도 공화당 내에선 ‘문제는 총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총기협회의 구호만 되풀이된다. 트럼프가 피 흘리며 퇴장하면서도 주먹을 들어 ‘싸우라’고 외친 걸 보면, 속으로야 어떻든, 총기 옹호론을 바꿀 것 같지 않다.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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