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어봅시다]증오가 키운 `괴물` 강성팬덤… 테러는 극단 정치대결 산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유세 현장 총격 테러 사건의 원인이 증오를 부추기는 극단적 대결정치에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정치 팬덤과 분노에 의존해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도를 넘은 비난을 퍼붓는 것이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비단 미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여야가 극한 대치를 벌이고 있는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니다. 국회와 유튜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선 주류 팬덤과 다른 정치인에 대한 폭력·비하성 발언이 넘쳐나고 있다. 강력한 예방대책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여야는 14일 트럼프 전 대통령의 테러에 규탄하는 목소리를 내면서 재발방지를 촉구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회의에서 "국민의힘은 시민의 안정과 민주주의를 위협한 이번 총격 사건을 강력히 규탄한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정치테러와 폭력은 그 어떤 곳에서도 용납될 수 없다"고 밝혔다. 박찬대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도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철저히 대응해야 한다"며 "증오 정치, 정치 테러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국민의힘 합동연설회장에선 지지자들끼리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15일 국민의힘 대전·세종·충북·충남 합동연설회가 열린 천안종합운동장 유관순체육관에선 한동훈 대표 후보의 지지자와 다른 후보의 지지자 간 몸싸움이 벌어졌다. 한 후보의 연설이 시작되자 일부 참석자들은 "배신자, 꺼져라"라고 외쳤고, 심지어 한 참석자는 의자까지 집어던지려 했다. 이 과정에서 당직자들과 한 후보의 지지자들은 제지에 나서면서 충돌했다.
사실 이런 일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상대를 선의의 경쟁자가 아닌 '제거'의 대상으로 삼는 정치권 풍토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민주당은 그 동안 문재인 전 대통령의 강성 지지층인 '문빠'에서 이재명 전 대표의 '개딸'로 이어지는 팬덤 정치에 대한 비판을 받았지만, 이를 사실상 방관해왔다. 강성 지지층들은 내·외부를 가리지 않고 좌표를 찍어 과격한 언어로 자신과 뜻이 다른 정치인에 대한 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세력을 키우고 있는 한동훈 후보의 팬클럽도 팬덤으로 발전할 개연성이 있다.
검사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이나 한동훈 전 위원장의 강성 발언도 극단의 정치 상황을 초래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반국가세력 척결', '운동권 카르텔 청산' 등의 발언은 지지층들에게 상대를 적으로만 인식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이 정치 테러 위험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지자들이 양극단으로 나뉘면서 상대 진영을 향한 반감이 단순 비판을 넘어 물리적 폭력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인들도 막말이나 SNS를 통해 극단적인 팬덤 여론을 조성하기도 한다"며 "이런 것들을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정치의 감성화'를 지적했다. 신 교수는 "SNS에서 정치인들과 소통하면서 개인적 친밀감이 생기고, 이는 충성도와 팬덤으로 이어진다"며 "다만 이런 현상이 반대 입장에 있는 정치인을 악마화하는 문제도 생긴다"고 했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SNS나 인터넷의 발달에 따라 자신의 견해와 신념만 옳다고 여기는 '확증편향' 현상을 주목했다. 홍 교수는 "SNS등이 발달하면서 자신이 보고 듣고 싶어사는 것만 접하다보니 극단적인 확증 편향성이 늘고 있다"며 "이런 상황은 양극화와 극단적인 감성의 동조화 경향을 보인다"고 진단했다.
다만 미국에서 발생한 트럼프 총격 테러 사건을 보편적인 정치테러로 일반화하긴 어렵다고 봤다. 홍 교수는 "미국의 경우 총기를 휴대할 수 있기 때문에 암살 시도가 역사상 많이 있었다"면서도 "다만 행동으로 옮기는 것과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테러를 일상적인 정치 현상으로 보편화하긴 어렵다. 아주 특이한 현상이다"고 말했다.
김세희기자 saehee01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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