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가에 숨 불어넣는 보이지 않는 요정 '프롬프터' [최상호의 오페라 이야기]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한때 오페라극장에서 중요한 직업 중에 하나는 바로 프롬프터였다.
프롬프터는 오케스트라 피트 바로 위에 자리 잡은 상자에서 성악가들에게 첫 단어를 알려주는 이들이다.
이탈리아 오페라가 한창이던 18세기부터 존재하던 프롬프터는 이제 많은 극장에서 사라졌지만 그들의 역할은 성악가들에게 숨을 불어넣는 요정이자 전설로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프롬프터를 떠올리면 성악가들과 함께 긴장하며 그들의 뜨거운 입김과 침 세례를 받아야 하는 중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던 라이프치히극장의 프롬프터, 잉그리드가 생각난다. 어느 날 인사를 나누며 "보통 낮에는 뭐 하세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잉그리드는 "개인적인 시간을 내기 어려워서 요가를 배우고 싶어도 못해요"라고 했다. 오전에는 성악가들과 함께 4시간 정도 연습하고, 저녁 공연에 바로 투입되어 늦은 밤에 귀가하는 일이 일 년 내내 반복된다고 했다.
또 공연에 일어나는 수많은 변수로 인해 공연마다 신경이 곤두선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프롬프터는 첫 마디를 던져주는 것 뿐만 아니라 박자와 리듬을 놓치지 않게 도와준다. 대타 성악가가 올 때면 빠르게 성악가의 성향과 준비 정도, 긴장감, 호흡 등을 분석한다. 짧은 시간 동안에 엄청난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가 계속해서 프롬프터 상자를 떠나지 않았던 이유는 지독하게 긴 바그너 오페라도 견딜 수 있게 했던 몇 개의 커피콩과 성악가들에게서 "당신이 오늘 나를 20번이나 구해줬어요"라는 말 한마디 덕분이었다. 그녀는 다른 직업을 선택할 생각을 한 적이 없을 만큼 프롬프터가 멋진 직업이지만, 이런 종류의 일은 언제나 숨어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 않다면 많은 스태프, 성악가 등이 만들고자 한 무대 위 세계에 대한 배신일 것 같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수많은 청중 앞에서 어느 날은 러시아어로, 그 다음 날은 프랑스어로 노래한다고 상상해 보자. 한순간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가사가 기억나지 않고 음악은 무자비하게 흘러간다. 아찔한 상황에서 프롬프터가 던져주는 한 글자, 리듬, 박자는 말 그대로 공연에 다시 숨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
성악가들이 무대 위에서 안심하고 날아다닐 수 있게 하던 잉그리드가 27년 동안 해오던 상자 속 요정 역할에서 은퇴한다. 가끔은 성악가의 호흡이자 언어였던 그녀가 그리울 것 같다. 고마운 요정, 잉그리드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최상호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Copyright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최현욱, 장난감 자랑하다 전라노출…사진 빛삭
- 남편상 사강, 4년만 안방 복귀…고현정 동생
- "눈 떴는데 침대에 피가 흥건"..토니안, 정신과 증상 8가지 나타났다 고백 [헬스톡]
- 이재명 유죄에 비명계 뜬다…민주 균열 가속화
- '8번 이혼' 유퉁 "13세 딸 살해·성폭행 협박에 혀 굳어"
- "치마 야하다고"…엄지인, 얼마나 짧기에 MC 짤렸나
- 영주서 50대 경찰관 야산서 숨진채 발견…경찰 수사 착수
- "조카 소설, 타락의 극치" 한강의 목사 삼촌, 공개 편지
- "엄마하고 삼촌이랑 같이 침대에서 잤어" 위장이혼 요구한 아내, 알고보니...
- "딸이 너무 예뻐서 의심"…아내 불륜 확신한 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