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모리 회장은 이타심으로 성공했죠"
양준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20년前 첫 독대… 2번 만나
발주·수주처 이익 먼저 살피고
본인보다 임직원 행복 우선시
正道 걸어도 적자없던 경영인"
일본에서 '경영의 신(神)'으로 불리는 고(故)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회장(1932~2022)이 65세 은퇴 후 '승려'가 됐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불교에 귀의했던 그는, 훗날 총리의 간곡한 부탁으로 2차 파산 직전의 일본항공(JAL) 회장직을 수락했고, 고작 8개월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하는 기적의 과업을 이뤘다. 본인 회사 교세라 창업 후 55년간 단 한 번의 적자도 없던 '경영의 신' 이나모리 회장의 강연 내용이 신간 '경영, 이나모리 가즈오 원점을 말하다'(21세기북스 펴냄)로 꿰매졌다.
이 책의 번역자는 양준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다. '이나모리 가즈오'를 한국에 처음 소개한 것도 그였고, 양 교수 손에서 2년간 이나모리 회장의 저서 약 20권이 한국어로 옷을 갈아입었다. '이나모리 정신'을 주제 삼아 양 교수를 15일 만났다.
"이나모리 회장과 2005년 처음 봤으니 그게 벌써 20년 전이에요. 그분의 첫마디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나는 공돌이(공대 출신을 낮잡아 부르는 은어)입니다'라고 하시더군요."
이나모리 회장이 자신을 '공돌이'로 낮춰 부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응용화학 전공이었던 이나모리 회장은 회계, 경영, 조직관리에 스스로 "무지하다"고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
"자신은 속칭 '공돌이'여서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경영 현장에서 '도덕적으로 옳은' 일만 추구했다는 거예요. 어린 시절 부모님께 야단맞으며 배웠던, 즉 사람으로서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일을 의식하며 회사를 꾸렸다는 거죠. 배운 지식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몸에 밴 지혜에서 이나모리 경영이 시작됐습니다. 그게 이번 책의 제목인 '원점(原點)'입니다."
돈을 버는 것, 그것은 사업자의 본능이다. 그러나 이나모리는 이기심 대신 이타심을 추구했다.
"참 재밌게도 이나모리 회장은 '이타심을 발휘한 기업이 오히려 잘됐다'고 확신했어요. 본인 회사보다 발주처, 수주처의 이익을 먼저 살피고, 사장은 본인보다 임직원 행복부터 우선시하는 거예요. 이건 상식에 반해 보이지만 이나모리 회장은 자기 철학이 옳았음을 직접 증명했습니다. 그의 회사 교세라는 이타심이라는 바위 위에 쌓아올려진 회사입니다."
양 교수가 이 책에서 꼽는 이나모리 경영철학의 또 다른 키워드는 '무아지경'이다.
교세라는 세라믹을 소재로 첨단 전자 부품을 만드는 기업으로 1959년 창업됐다. 도시바, 산요, 소니 등 굴지의 기업은 이 신생기업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숱한 실패를 경험한 이나모리 회장은 "결국 우리 제품을 사줄 곳은 미국"이라고 판단하고는 해외시장을 노크한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하게도 '화장실'이었다. "그때만 해도 일본 화장실은 재래식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이나모리 회장은 '미국을 가서 미국인을 설득하려면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몸에 체화해야 한다'며 지인 집 좌변기에 앉아보는 연습까지 했습니다. 이건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한 인간이 자기 목표에 가닿기 위해 과연 어디까지 집중했는가를 말해주는 결정적 대목이에요. 그게 이나모리식(式) 무아지경인 거죠. 교세라는 결국 미국 시장에 진출해 독점 계약을 맺습니다."
생전의 이나모리 회장을 양 교수는 두 번 만났다.
"언행이 정제되어 있었어요. 표현이 조심스럽지만 '종교지도자'에 가까운 인상이었습니다. 경영이란 과업을 통해 심연을 갈고닦은 사람의 눈빛, 그 간절한 내면의 음성을 이번 책으로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나모리 회장은 2022년 90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그의 책 스무 권의 책을 번역했으니, 국내에서 이나모리 회장을 정확하게 꿰뚫은 학자는 바로 양 교수일 것이다. 만약 이나모리 회장을 양 교수가 다시 독대한다면 꼭 묻고 싶은 마지막 질문은 뭘까.
"단 하나의 질문을 품고 있어요. 초일류 거대 기업이든 두 평짜리 소규모 점포든, 경영자의 관심사는 이윤의 극대화입니다. 즉 기업을 한다는 건 '가치의 증식'이죠. 그런데 이나모리 회장은 가치의 최대치 증식이란 본능을 억눌렀고, 그래서 더 크게 성공했습니다. '어떻게, 또 무엇이 계기가 돼서 그 본능을 최소화할 수 있으셨습니까?'를 묻고 싶어요. 대의명분과 정도(正道)를 걷고도 환대받는 경영, 그걸 꼭 묻고 싶습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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