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36주 낙태 브이로그' 살인죄 적용 가능할까?
박수진 기자 2024. 7. 15. 17:30
뉴스토리
<낙태죄 폐지 후 방치된 임신중지>
취재후기③
낙태죄>
지난 금요일 새벽, 야근 중이었던 기자는 한 통의 제보 메일을 받았다. "유튜브에 36주 차 태아 낙태 브이로그가 올라왔어요. 낙태 기사 쓰셨길래 제보합니다. 끔찍합니다." 기자만 받은 제보가 아니었다. 이미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SNS에는 36주에 임신중지를 했다는 여성의 영상이 화제가 됐고,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관련 인터넷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자신을 20대라고 밝힌 한 여성은 임신 36주 차에 임신중절수술을 받았다며 그 과정을 영상에 담았다. 영상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 여성은 900만 원을 지급하고 제왕절개 방식으로 임신중지를 했다. 36주는 임신 9개월, 만삭에 가까운 주수다. ‘태아 살인’이라는 지적과 ‘영상 자체가 조작됐다’는 논란이 함께 불거졌다.
그리고 오늘(15일), 보건복지부가 경찰에 이 여성과 수술을 해준 의사에 대해 수사 의뢰 진정을 넣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들을 살인죄로 처벌할 수 있을지 경찰에 사실 관계를 확인해달라는 내용이다.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를 한 여성과 의사를 처벌하던 낙태죄(형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후 대체 입법이 되지 않으면서, 임신 24주 이후의 낙태를 금지하는 모자보건법 14조는 사실상 ‘식물화’ 됐다. 복지부가 살인죄로 수사 의뢰를 한 이유다.
결론부터 말하면 쉽지 않다. 이 여성이 실존 인물이고, 실제로 임신 36주에 임신 중절 수술을 받았다고 전제를 해도 살인죄가 적용되려면 제왕절개로 낙태를 했을 당시 아이가 ‘살아있었다는 증거’가 필요하다.
후기 임신중지, 대체로 임신 30주 이후 임신중절수술을 받게 되면 흡입술이나 소파술로는 낙태가 되기가 어려워 제왕절개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경우 태아가 사망한 채로 배출이 돼야한다. 살아서 나오게 되면 출산이고, 이후에 어떤 방법을 이용해 사망에 이르게 하면 살인이다. ‘출산 당시 살아있었다’는 수술 당사자 또는 의료진의 진술, 또는 이 현장이 담긴 영상이나 녹취 등이 증거가 있어야 한다.
복지부는 이번 수사 의뢰 진정을 하면서 살인죄로 실형을 받았던 서울의 한 산부인과 사례를 참고했다고 밝혔다. 당시 사건은 2019년 서울의 한 산부인과 운영자가 임신 34주 차 산모의 임신 중절 수술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태아가 살아서 태어날 것을 알고도 제왕절개를 했고, 이후 아이를 물에 넣어 질식사시킨 후 사체를 의료폐기물과 함께 소각한 사건이다. 병원 운영자는 징역 3년을, 수술을 보조한 산부인과 실장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애초 이 사건이 경찰 수사로 이어지고 살인죄 적용까지 가능했던 건, 수술을 받은 당사자 측과 수술에 참가했던 의료진 중 일부의 직접적 진술이 결정적이었다. 이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산부인과 관계자는 “수술을 받은 환자와 병원이 갈등이 있었고, 수술에 참가한 의료진 사이에서도 이해관계가 달랐다고 알고 있다. 그 과정에서 증거가 나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기 전, 그러니까 낙태가 ‘불법’이었던 시절 당시 왕왕 불법 낙태 수술에 대한 내용이 사회에 알려지는 경우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병원 내부의 이해관계 또는 갈등으로 인한 정보 유출에 따른 것이 많았다고 한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이해 당사자들이 서로 입을 닫아버리면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36주 낙태는 처음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뉴스토리 방송과 지난 취재파일에서도 밝혔듯 30주 이상 후기 임신중지를 해주는 병원으로 명성을 얻어온 일부 산부인과들이 있고, 기자가 확보한 자료에는 38주, 39주에 수천만 원을 내고 임신중지를 한 사례들도 여럿 포함돼 있다. 한 산부인과의 이른바 ‘낙태 가격표’에는 40주도 포함돼 있었다.
▶ [취재파일] 어느 산부인과의 '낙태 가격표'…40주도 있었다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7717282]
정부도 이런 사례를 알고 있다. 기자도 취재 과정에서 여러 행태를 정부에 알렸다. 하지만 무력한 답만 돌아왔다. 후기 임신중지 자체에 대해선 낙태죄가 폐지됐으니 처벌의 대상이 아니란 이유로, 일부 산부인과에서 비용을 비싸게 받으며 위험한 수술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선 비급여 의료행위라 관리의 대상이 아니란 이유였다. 이 사안을 두 달 가까이 취재해 온 기자로서 ‘36주 낙태 브이로그’에 대한 정부의 수사 의뢰가 당황스러웠던 이유다.
주무부처는 법무부(형법)와 보건복지부(모자보건법)다. 두 부처는 2020년 형법,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하지만 21대 국회의 논의는 지지부진했고 결국 정부 개정안을 비롯한 관련 법안 모두 폐기됐다.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이었던 한 의원실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민감한 사안이기도 하지만 이 법안을 통과시키면 누구든 처벌 대상이 돼야한단 부담도 있었다. 그렇다보니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은 점도 솔직히 있다”고 털어놨다.
임신 중지 관련 취재를 하면서 ‘어떻게든 이 문제가 좀 수면 위로 올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5년 전 헌재의 결정에 큰 의미를 부여했던 것과 달리 법과 제도는 멈춰있고, 언론도 진중한 논의의 장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 갑자기 등장한 ‘낙태 브이로그’는 침잠 중이던 안전한 임신중지에 대한 논의를 다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게 될까 아니면 반짝 화제가 됐다가 흐지부지 사라지는 가십 중 하나가 될까. 모두가 지켜봤으면 한다.
지난 금요일 새벽, 야근 중이었던 기자는 한 통의 제보 메일을 받았다. "유튜브에 36주 차 태아 낙태 브이로그가 올라왔어요. 낙태 기사 쓰셨길래 제보합니다. 끔찍합니다." 기자만 받은 제보가 아니었다. 이미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SNS에는 36주에 임신중지를 했다는 여성의 영상이 화제가 됐고,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관련 인터넷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자신을 20대라고 밝힌 한 여성은 임신 36주 차에 임신중절수술을 받았다며 그 과정을 영상에 담았다. 영상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 여성은 900만 원을 지급하고 제왕절개 방식으로 임신중지를 했다. 36주는 임신 9개월, 만삭에 가까운 주수다. ‘태아 살인’이라는 지적과 ‘영상 자체가 조작됐다’는 논란이 함께 불거졌다.
그리고 오늘(15일), 보건복지부가 경찰에 이 여성과 수술을 해준 의사에 대해 수사 의뢰 진정을 넣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들을 살인죄로 처벌할 수 있을지 경찰에 사실 관계를 확인해달라는 내용이다.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를 한 여성과 의사를 처벌하던 낙태죄(형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후 대체 입법이 되지 않으면서, 임신 24주 이후의 낙태를 금지하는 모자보건법 14조는 사실상 ‘식물화’ 됐다. 복지부가 살인죄로 수사 의뢰를 한 이유다.
살인죄 적용이 쉽지 않은 이유
후기 임신중지, 대체로 임신 30주 이후 임신중절수술을 받게 되면 흡입술이나 소파술로는 낙태가 되기가 어려워 제왕절개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경우 태아가 사망한 채로 배출이 돼야한다. 살아서 나오게 되면 출산이고, 이후에 어떤 방법을 이용해 사망에 이르게 하면 살인이다. ‘출산 당시 살아있었다’는 수술 당사자 또는 의료진의 진술, 또는 이 현장이 담긴 영상이나 녹취 등이 증거가 있어야 한다.
복지부는 이번 수사 의뢰 진정을 하면서 살인죄로 실형을 받았던 서울의 한 산부인과 사례를 참고했다고 밝혔다. 당시 사건은 2019년 서울의 한 산부인과 운영자가 임신 34주 차 산모의 임신 중절 수술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태아가 살아서 태어날 것을 알고도 제왕절개를 했고, 이후 아이를 물에 넣어 질식사시킨 후 사체를 의료폐기물과 함께 소각한 사건이다. 병원 운영자는 징역 3년을, 수술을 보조한 산부인과 실장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애초 이 사건이 경찰 수사로 이어지고 살인죄 적용까지 가능했던 건, 수술을 받은 당사자 측과 수술에 참가했던 의료진 중 일부의 직접적 진술이 결정적이었다. 이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산부인과 관계자는 “수술을 받은 환자와 병원이 갈등이 있었고, 수술에 참가한 의료진 사이에서도 이해관계가 달랐다고 알고 있다. 그 과정에서 증거가 나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기 전, 그러니까 낙태가 ‘불법’이었던 시절 당시 왕왕 불법 낙태 수술에 대한 내용이 사회에 알려지는 경우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병원 내부의 이해관계 또는 갈등으로 인한 정보 유출에 따른 것이 많았다고 한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이해 당사자들이 서로 입을 닫아버리면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입법 공백 핑계 속 관리·제도개선 ‘방치’…갑자기 수사의뢰?
▶ [취재파일] 어느 산부인과의 '낙태 가격표'…40주도 있었다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7717282]
정부도 이런 사례를 알고 있다. 기자도 취재 과정에서 여러 행태를 정부에 알렸다. 하지만 무력한 답만 돌아왔다. 후기 임신중지 자체에 대해선 낙태죄가 폐지됐으니 처벌의 대상이 아니란 이유로, 일부 산부인과에서 비용을 비싸게 받으며 위험한 수술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선 비급여 의료행위라 관리의 대상이 아니란 이유였다. 이 사안을 두 달 가까이 취재해 온 기자로서 ‘36주 낙태 브이로그’에 대한 정부의 수사 의뢰가 당황스러웠던 이유다.
주무부처는 법무부(형법)와 보건복지부(모자보건법)다. 두 부처는 2020년 형법,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하지만 21대 국회의 논의는 지지부진했고 결국 정부 개정안을 비롯한 관련 법안 모두 폐기됐다.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이었던 한 의원실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민감한 사안이기도 하지만 이 법안을 통과시키면 누구든 처벌 대상이 돼야한단 부담도 있었다. 그렇다보니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은 점도 솔직히 있다”고 털어놨다.
임신 중지 관련 취재를 하면서 ‘어떻게든 이 문제가 좀 수면 위로 올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5년 전 헌재의 결정에 큰 의미를 부여했던 것과 달리 법과 제도는 멈춰있고, 언론도 진중한 논의의 장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 갑자기 등장한 ‘낙태 브이로그’는 침잠 중이던 안전한 임신중지에 대한 논의를 다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게 될까 아니면 반짝 화제가 됐다가 흐지부지 사라지는 가십 중 하나가 될까. 모두가 지켜봤으면 한다.
박수진 기자 star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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