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통합" 외친 바이든·트럼프…미국 정치 분열은 깊어진다

김희정 기자 2024. 7. 15.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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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온 나라, 심지어 온 세계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기회다."

'죽었다 살아난' 남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밀워키에 도착해 비행기 계단을 내려가며 특유의 주먹 휘두르기를 재현했다. 하루 전 펜실베이니아 유세 현장에서 피격을 당한 직후에도 강렬히 치켜올린 그 주먹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 유세 현장의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은지 하루 만에 14일(현지시간) 밀워키 미첼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로이터=뉴스1
트럼프는 이날 보수매체 워싱턴 이그재미너에 "나는 군중에게서 눈을 떼는 일이 거의 없다. 그(피격) 순간 눈을 돌리지 않았다면, 글쎄, 우리가 오늘 이야기하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것은 온 나라, 심지어 온 세계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기회다. 연설은 많이 다를 것이다. 이틀 전과는 많이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뭉쳐야 할 때"… 바이든 "정치적 과열 진정해야"
1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아이젠하워 행정부 건물 TV 화면에 버틀러 열린 집회에서 공화당 대선후보이자 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암살 시도에 대한 뉴스 보도가 나오고 있다. /로이터=뉴스1
트럼프는 피격 직후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에 "어느 때보다 뭉쳐야 할 때"라며 통합을 강조한 바 있다. 트럼프가 승인한 것으로 알려진 피격 사건 피해자(사망자 1명·부상자 2명) 모금 캠페인에는 4만5000여명이 참여해 하루 만에 300만달러가 넘게 모였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피격 이후 하루 사이 3번의 대국민 연설을 하며 평화와 단결을 촉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유세장에서 암살시도가 가능했던 경위를 조사하도록 명령하고 미국에 폭력이 설 자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바이든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서로 다른 정책을 갖고 있지만 폭력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며 "우리는 차이를 총알이 아닌 투표함에서 해결한다"고 민주적 절차를 강조했다. 이어 "이 나라의 정치적 수사는 매우 격렬해졌다. 이제 진정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실제 바이든 캠프는 피격 사건 직후 트럼프 비난 광고를 중단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암살 시도와 관련해 대국민 연설을 갖고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통합이 가장 중요한 가치다"고 밝히고 있다. /AFPBBNews=뉴스1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질 바이든 영부인도 이날 오후 멜라니아 트럼프 전 영부인과 대화했다. 멜라니아는 이날 대국민 편지에서 저격범이 트럼프를 '정치기계'로 본 '괴물'이라며 가족으로서 트럼프를 향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멜라니아 역시 "서로 다른 의견, 정책, 정치적 게임이 사랑보다 열등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며 "좌-우, 빨간색과 파란색을 넘어 우리 모두는 더 나은 삶을 위해 함께 싸우겠다는 열정을 가진 가족에게서 왔다"고 밝혔다. 이어 "모든 정치인이 사랑하는 가족을 둔 남자 또는 여자라는 사실을 기억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새벽이 다시 왔다. 우리 다시 모이자. 지금"이라고 결집을 강조했다.
퍼지는 음모론… 유권자 67% "선거 이후 폭력 발생 우려"
그러나 두 대선 후보나 그 가족들의 바람과는 달리 오는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 사회는 어느 때보다 분열의 길을 걷고 있다. 로이터와 입소스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권자들은 정치적 폭력이 증가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 5월 조사에서 응답자 3명 중 2명은 선거 이후 폭력이 발생할 것을 우려한다고 답했다.

트루스소셜 등 SNS(소셜미디어)에서는 근거 없는 비방과 음모론이 피격 직후부터 번지고 있다. 공화당 일각에선 트럼프를 비난한 바이든의 정치캠페인이 암살 시도로 번진 것이라며 바이든을 향해 날을 세웠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민주당 전략가인 드미트리 메흘혼은 이번 총격 사건이 조작된 것이라고 일부 언론과 지지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가 공개 사과했다.

메흘혼은 "정치적 폭력이 또 다른 무고한 미국인의 생명을 앗아갔다는 사실에서 주의를 돌리게 한 것에 대해 사과드린다. 어떠한 경우에도 그러한 폭력을 비난하는 데 단결해야 한다. 다른 주제는 방해가 될 뿐"이라고 밝혔다. 메흘혼은 링크드인의 공동창립자이자 주로 민주당 후보자들에게 기부하는 억만장자 리드 호프만의 고문이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열린 집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오른쪽 귀에 총상을 입은 뒤 경호원들에 둘러 싸인 채 지지자들에게 손 인사를 하고 있다. 이에 현장에 있던 지지자들은 "USA"를 연호했다. /로이터=뉴스1

뉴욕타임스(NYT)는 지금의 미국이 정치 폭력으로 신음했던 1968년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1968년 미국은 인종 간 갈등이 임계점을 넘어 주요 대도시에서 대규모 인종폭동이 발생했고 흑인 민권운동의 지도자 마틴 루서 킹 목사와 민주당 대선 후보 로버트 케네디 전 상원의원이 암살자의 총을 맞고 숨졌다. 당시에는 인종 차별이 갈등의 주원인이었다면 최근에는 대부분 상대 정파에 대한 적대감이 발생 동기다.

2020년 바이든이 선거에서 이긴 후 2021년 1월 6일 발생한 의사당 습격 폭동이 대표적이다.

가렌 윈트뮤트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대부분의 미국인은 정치적 폭력에 반대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며 "폭력에 대한 불관용이 폭력 발생 가능성을 줄인다. 평범한 대다수가 공개적으로 폭력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김희정 기자 dontsigh@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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